후각 에세이
누구에게나 꺼내기 어려운 기억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수십 년 동안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마음속 깊이 숨겨둔 사건 하나가 내 안에 깊숙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애써 외면해 온 일이다.
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나는 학교 화장실이 너무 무서워 학교 뒷문 이웃집 재래식 화장실을 주로 이용했다. 그러나 어느 날, 낡은 나무판이 부서지며 화장실 입구에서 허리까지 똥통에 빠졌다. 여름 더위 속에 발효된 암모니아 냄새는 지독했다. 다행히 양쪽 팔은 두툼한 판자에 걸쳐 버티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이웃들이 몰려드는 장면은 치욕과 수치심 그 자체였다. 교문 지도를 서던 언니도 그곳에 있었지만, 나를 본 언니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내 동생이에요"라는 말 한마디가 없던 것이 차라리 나았다. 아는 척했으면 더 창피해서 울었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이 오셨고, 나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은 채 이웃집 마당 수돗가로 옮겨졌다. 선생님은 "괜찮아, 누구나 다 그럴 수 있어"를 반복하며 내 마음을 진정시켜 주셨다. 그 따뜻한 말씀은 지금도 기억된다. 엄마가 도착했을 때서야 안심되어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다.
엄마는 "똥독이 퍼지면 위험하다"며 집으로 오는 길에 시장에 들러 떡을 사 오셨다. 내 나이만큼 그 떡을 우리 집 화장실에서 먹어야 한다고 했다. 지독한 냄새가 가득한 그곳에서 나는 구역질이 나서 떡을 먹지 못했고, 언니와 동생이 대신 먹었다. 나는 수치심과 창피함으로 더욱 움츠러들었다.
언니와 동생이 놀린 기억이 없는 것을 보면, 엄마의 단호한 말씀이 있었을 것이다. 참으로 그 민간요법을 엄마에게 대체 누가 가르쳐준 것인지, 그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손자들이 읽고 있는 『똥 떡』 책에도 나와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웃기다. 나에게는 슬픈 기억이지만 이렇게 책으로 내용을 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 사건 이후 고등학교 때까지 화장실에 가는 것은 나에게 큰 과제였다. 최대한 참다가 아주 급해지면 가는 습관이 생겼다. 냄새에도 무척 예민해져서 엄마는 "너 코는 개 코냐?"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수치심 속에 있는 그 장면과 냄새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 냄새는 나의 후각 깊은 곳에, 내 감정의 저장소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된 나에게 화장실의 정의가 바뀌었다. '회복과 치유의 공간'이 된 것이다. 특히 교사로 학교 현장에 있을 때는 러시아워를 피해 한 시간 일찍 출근했다. 교무실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문을 닫고 앉아 있는 시간만큼은 단절과 안정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말이 필요 없고, 눈길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곳을 점차 좋아하게 되었다.
요즘 우리나라 화장실은 과거와 달리 위생적이고 향기가 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나는 집에서도 화장실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며 관리한다. 디퓨저를 고르고 향 좋은 비누를 골라 배치하고, 수건과 거울, 물건 하나까지 세심히 정리한다. 어느 날 남편은 "당신은 화장실에 병적으로 신경 쓰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 화장실에 유독 집착하는 나를 직면해 보며,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기억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후각은 뇌의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편도체와 해마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감정 기억을 강하게 유발하는 경로라고 한다. 과거의 화장실 냄새가 나에게 수치심을 불러오는 것이었기에 지금의 행동과 연관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일리가 있다.
'해우소'라는 말처럼, 화장실은 이제 단순히 생리적인 욕구를 해결하는 공간만은 아니다. 한때는 수치심과 악취가 머물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향기롭고 조용한 회복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유난히 집착하던 화장실 정리도 이제는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을 것 같다.
나는 오래도록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냄새의 기억을 꺼내 보았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은 "당신의 상처는 당신의 힘이 될 수 있다. 말할 수 있는 아픔은 이미 극복된 것이다"라고 했다. 누구든 과거의 상처와 수치심을 꼭꼭 숨길 필요는 없다. 때로는 솔직하게 꺼내어 쓰고, 말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도움이 된다.
이 글을 통해 오랫동안 몰래 숨겨두었던 기억을 꺼냈고, 그 기억은 나를 이해하고, 회복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한때는 수치와 불쾌함으로 얼룩졌던 그 냄새는, 이제는 더이상 나를 얽매지 않을 것이다. 그 냄새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그때의 감정은 충분히 이해받을 자격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그 순간을 숨기고 지나온 어린 시절, 혼자 가슴앓이 했던 나를 이제는 따뜻하게 보듬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