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윙, 윙윙!, 탕, 탕탕!

청각 에세이

by 산소쌤


윙, 윙윙!, 탕, 탕탕!


며칠 전 언니는 커튼을, 나는 제법 부피가 큰 겨울 요 홑청을 세탁하기 위해 집 근처 빨래방을 찾았다. 집에 있는 세탁기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빨래가 생길 때면 한 번씩 가는 곳이다. 보통은 세탁물을 돌려놓고 집에 돌아오거나, 볼일을 본 뒤 빨래가 다 끝날 즈음 다시 가서 가져오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손님이 아무도 없어 빨래방이 조용했다. 언니와 나는 둥근 탁자 세 개와 푹신한 의자가 있는 빨래방 카페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서 아늑함이 느껴졌다. 우리는 자동 커피 판매기로 뽑은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을 앞에 두고, 건조가 끝날 때까지 두 시간 넘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세탁기에서 나는 윙, 윙윙 소리만 잔잔하게 들리고, 창밖으로는 간간이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둥글게 회전하는 세탁물들을 바라보며, 문득 오래전 빨래하느라 고생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니, 엄마가 할머니 치매 때문에 하루걸러 하루 이불 빨래하셨던 거 기억나?” 내가 묻자, 언니는 커피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게, 요즘처럼 빨래방이 있었으면 엄마도 훨씬 덜 힘드셨을 텐데. 아버지가 손수레 끌고 빨래터에 가실 일도 없었을 거고…."

술에 취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비틀거리며 손수레를 끌다 넘어지는 아버지의 모습을 몇 번이나 본 언니는, 그게 너무 창피하다며 아버지가 빨래터에 오시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했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억 속 빨래터 이야기로 이어졌다.




어릴 적, 나는 언니와 함께 자주 엄마를 따라 마을 빨래터에 갔다. 위쪽에서 졸졸 흐르던 개울 물은 아래쪽의 웅덩이에 모여 넓은 빨래터를 이루었고, 넓적한 돌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놓여 있었다. 엄마와 동네 아주머니들은 각자 자리를 잡고 그 돌 위에 쪼그려 앉아 빨래하셨다. 빨래터에 앉아 있는 풍경은 마치 박수근 화백의 그림 속 ‘빨래터’ 장면 같았다. 엄마와 아주머니들은 손으로 물을 휘휘 저어 빨랫감을 적신 뒤, 비누를 고루 칠하고 문질렀다. 때로는 발로 꾹꾹 밟기도 하고, 뒤집어가며 힘껏 비비기를 반복했다. 맑던 물은 금세 하얀 비누 거품으로 뒤덮였다가, 이내 다시 투명한 물빛으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도 커다란 이불을 돌 위에 펼쳐 여러 차례 방망이로 ‘팡, 팡팡’하며 물에 젖은 천 위를 힘차게 내리쳤다. 그 소리는 얼마나 힘차고 세찼던지, 옆에 앉아 있던 내몸과 마음마저 움찔하고 떨렸다.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군 이불은 빨래하던 이웃 아주머니와 서로 마주 잡고 힘껏 비틀어 짰다. 이어서 ‘탁탁’ 소리를 내며 털어서 붉은 고무통에 담으면, 그날 빨래는 비로소 마무리되곤 했다. 그 순간, 엄마와 아주머니들의 얼굴엔 고단함을 씻어낸 듯한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어린 우리 자매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고, 빨래터에 따라가는 일이 언제나 신나고 즐거웠다.

큰 이불 빨래가 있는 날이면, 엄마는 혼자 들 수 없다며 아버지를 불렀다. 나중에야 그게 엄마의 간절한 부탁이었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의 날엔 엄마가 젖은 빨래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했고, 언니와 나는 작은 대야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걸음을 멈추고 가끔 뒤돌아보던 엄마의 얼굴엔 어쩐지 시험을 끝낸 날의 내 표정 같은 해방감이 스쳐 있었다.




나는 빨래터에서 엄마와 아주머니들의 표정을 쳐다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곳은 단지 빨래만 하는 곳이 아니었다. 이웃들의 삶이 오가는 이야기로 자연스레 엮이는 공간이었다. 듣기 거북한 이야기는 아이들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지만, 나는 이미 많은 것들 들었고, 생각과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삶의 복잡함과 인간관계, 말하는 것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 당시, 빨래터에 모였던 분들은 대부분 마흔쯤의 여인들이었다. 40대는 갱년기의 문턱에서, 자식 돌봄과 부모 봉양, 집안일까지 짊어진 채 바삐 살아야 하는 숨 가쁜 시기였다. 엄마도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시느라 며칠에 한 번씩 이불과 옷가지를 머리에 이고 빨래터를 오가셨으니, 아마도 그곳에서 마음속 깊이 쌓인 피로와 서러움을 함께 헹궈내셨을 것이다.

‘탕, 탕탕’ 울리던 빨랫방망이 소리는 단지 천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가 꾹꾹 눌러 삼킨 눈물과 한숨, 마음속 깊은 곳에 담아둔 말 못 할 감정들을 방망이에 실어 물속으로 흘려보내던 소리였다. 빨래터 또한 단순히 옷을 씻는 곳이 아니었다. 삶의 얼룩을 헹구고, 마음을 씻어내는 해우소였고, 마을 아낙네들이 고단한 일상을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던 작은 상담실이자 즐겁게 소통하는 빨래터 카페였다.




지금 나는 버튼 하나로 세탁기를 돌리고, 편안히 차를 마시며 ‘윙, 윙윙’ 부드럽게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참조용하고 편리한 소리인데, 이상하게도 그 소리는 예전에 엄마가 힘껏 방망이를 내리치며 내던 ‘탕, 탕탕’ 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윙윙' 소리가 고단했던 엄마의 소리를 떠올리게 하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두 소리는 분명히 다르다. 그런데도 이 ‘윙윙’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그 ‘탕탕’ 소리가 연결되어 들리는 듯하다. 편리함 속에 깃든 그리움!

그래서일까? 이 ‘윙윙’ 소리가 그냥 편하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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