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 궁리 끝에 국어 입시 과외를 공부하는 중인데, 국어 고전시가 지문 중에는 게으름에 대해 꽤나 교훈 있게 쓰인 글이 있었다. 화자는 게으름을 꾸짖으며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지 않느냐. 왜 네가 나와 함께하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떨어지라고 말이다. 게으름은 반박하며 이야기한다.
당신은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내가 있는 덕분에 그대가 공명의 뜻을 가지지 않고 자연에 머무르며 안빈낙도할 수 있는 거라고, 또 게으르니 사고를 치지 않고 평온히 살 수 있는 거라고. 화자는 게으름의 말을 듣고, 그와 영영 같이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도 그의 조상인 탓에 여기에 이렇게 게으르게 있는 것은 아닐까.
3킬로 달리기를 매일 , 하루도 쉬지 않고 또 헬스를 하루도 쉬지 않고 했어야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나 스스로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나라는 인간의 속성. 그건 바로 천성적인 게으름이다. 좋은 습관을 아무리 유지하고 있어도 하루 이틀만 손을 놓으면 그때부터는 끝이다. 좋은 습관은 죽도록 노력해야 유지되고 , 나쁜 습관은 잠깐 틈을 주면 스며든다. 난 인생을 살아내는 건 참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죽을 각오로 하루도 틈 없이 살아내야 겨우 평온한 행복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으름과 더 붙어 살아가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걸 끔찍이 싫어한다. 게으름에 파묻혀 있는 것 그걸 누군가에게 들키는 일 그걸 죽을 만큼 싫어한다. 그래서 난 군대에 들어와서 끝없이 이어지는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루틴은 하지만, 기분 좋을 때나 가능한 것이었고 언제나 아프거나 기분이 좋지 않거나 나쁜 일이 있거나 쉬고 싶을 때 언제나 게으름이 파고들어 더 이상 루틴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였다.
한두 번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경험은 그 이후에도 날 괴롭혔다.
내게서 앗아간 2년이란 시간은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저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시간들. 난 그 시간들이 이후의 잃어버린 2년을 벗어났을 때는 날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희망 하나는 있었다. 고난이든 불행이든 겪어본 이만이 더 잘 직면하고 이겨내기 때문이다.
족저근막염이라는 고약한 병에 걸려 , 모든 노력과 희망과 꾸준함을 잃었다. 그리고 한 번의 일탈로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잃었다. 내 패시브인 자격지심이 날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다시 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