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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연 Jun 30. 2023

별일 없는 시작

별일 없는 시작으로 오전시간을 보낸다. 어제 못한 샤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유치원에 가지 못한 아이의 열 체크를 하며 열이 내렸는지 확인한다. 음악을 틀고, 강아지에게 밥을 주라고 큰 아이에게 부탁한다.

밥통에 밥이 없어서 쌀을 씻고 밥솥에 넣어 취사를 누른다. 밥이 다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어제 사온 책을 펼쳐본다. 작가의 위로가 가득 담긴 글들이 스며들어온다.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길래 이다지도 슬픔과 위로를 건네주는 걸까. 내 옆에 없는 사람들. 어디엔가 분명히 누군가에게 위로를, 처절함을, 괴로움을 쓰고 있을 그들을 상상한다. 고뇌하고, 사색하며, 생각하는 그들은 커피를 마실지도 모르고, 담배를 피울지도 모른다. 하얗게 빈 여백의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무엇을 써야 할지 첫 문장을 시도하려 노력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처럼 제목조차 아직 정하지 못한 존재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슬픔을 쓰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들의 슬픔을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내가 보는 이 문장처럼 이다지도 아득한 걸까. 우연히 찾아온 영감에 글을 쓰는 그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책을 읽다 보니 밥이 다 되었다는 울림이 들린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 아이들 식판에 아침밥을 차려준다. 나는 커피 두 잔만 마시면 밥이 안 먹고 싶어 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차려줘야 하는 이 강박함. 그것은 나의 의무이자 일과다. 그건 너무나도 당연해서 무언가를 말할 핑곗거리도 되지 않는다. 깨지지 않는 일상. 내일 내가 사라진 대도 오늘 아이들 밥을 챙겨줘야 하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일. 누군가는 이러한 일들이 지리멸렬하다고 했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지. 밥 먹어 얘들아. 나의 말에 두 아이가 달려온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생각한다. 지리멸렬한 것은, 어쩌면 아이에게 차려주는 밥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이 없는 일상이 지루한 걸지도 모른다. 그리운 청춘. 지나간 청춘을 자꾸 되새기는 일은 반짝이던 돌을 자꾸 만지는 것과 같다. 처음엔 반짝였던 돌이 자꾸 만지면 만질수록 닳아서 광택이 사라진다. 그런 식으로 청춘을 만지고 싶지는 않다. 빛나는 건 빛나는 채로 두고, 나는 지금을 살아가며 새로운 돌을 만들기로 한다. 또 다르게 빛날 나의 돌을. 동그랗고, 회색이고, 어쩌면 금이 가있으면서도 상처가 있을 돌을 만들어서 현재의 내가 가만히 청춘이라는 돌 옆에 놓기로 한다. 여전히,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나는 바꿀 화장품에 대한 테스트도 하러 가야 하고, 열이 나는 아이도 돌봐야 하고, 학교에서 오는 큰아이를 맞아줘야 하고, 일에 지친 남편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나 할 일이 많다.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받아들이며 내가 나를 돌보기도 해야 한다. 나는 샤워를 해야 하고, 빨래도 미리미리 해두어야 하고, 집안 정리도 조금씩 해둬야 한다. 잔뜩 쌓아 놓은 책도 읽어야 하고, 작가의 글을 느껴야 하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인덱스를 붙여야 한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이다지도 많은 일들을 하루 안에 매일 하고 있는 나는 정말로 바쁘다. 물론, 이렇게 글을 쓰는 시간도 확보해야 한다.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쉬는 일이고,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것은 의무로써 해야 할 행동이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를 한 번씩 쓰다듬어준다. 그러면, 가끔 나는 그 지리멸렬할지도 모를 일상이 아주 조금은 뭉그러지듯 행복해진다. 굳은 마음이 조금씩 말랑해진다. 작은 일상은, 너무나도 소중하다. 오늘의 마지막 6월의 시간이, 이렇게도 아끼고 싶어지는 날이다.



슬픔은 그 형태로 둔다. 작가의 슬픈 언어를 나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아련히 남겨진다. 남겨지는 감정이 휘발되지 않도록 유리병 안에 잘 넣어두고 싶다. 그리고 슬퍼질 때 다시 꺼내서 그 아련하게 남겨진 언어를 읽고 싶다. 왜 기쁜 건 슬픈 것보다 늘 가벼운 것들로 다가오는 걸까. 슬픈 건 왜 무게가 가득한 걸까. 위로는 어떻게 하는 걸까.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가면 나도 어쩌면 이 사람의 언어를 언젠가는 이해하게 될까.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가도 사라진다.


학교 잘 다녀와. 서로 손을 흔들며 큰아이와 나는 인사를 한다.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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