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재미거리가 필요했는지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 낼 단순한 노동이 필요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완성시켜서 무력한 자아에 자신감을 보태고 싶었는지
자수를 놓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배웠던 것도 같은데
한 땀 한 땀 놓을 때마다
점점 완성이 되어 갈 때마다
오히려 첫 땀보다 어렵게 느껴졌다.
호기 있게 첫 땀을 놓던 마음이
이게 뭐라고 내가 이러고 있나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색 실로 채워지는 꽃잎들이 그럴싸해 보이다가도
얼기설기 너저분한 뒷면을 돌려보면 한숨이 나왔다.
제일 쉬운 '새틴 스티치'로만 꽃잎을 채우는데도
자꾸 핑크빛 실이 엉켜 뭉친다.
그러다가 문득 엉켜 뭉친 실 몽우리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엉킨 모양이 '새틴 스티치' 다음으로 도전해 보려던
'프렌치 노트 스티치'와 같다.
자수도 인생 같구나.
한 면을 채우는 짧은 시간에도 초심이 흔들리고,
너저분한 잘라냄과 매듭을 반복해야 하고,
폼나게 완성해 보려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며,
그리고도 우연에 의미를 부여하며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