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는내 인생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이다. 유머 없는 삶은 상상하기도싫다.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을 포착해 내는 감각과 삶에 대한 통찰을 갖춘 사람들은 대부분 유머러스하다. 힘들고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고 무구한 얼굴로 살아가는 것은, 내 삶의 지향이다. 유머만큼 사랑하는 다른 하나는‘재미’인데, 안타깝게도 재미있는 일들은 대개 무용하다. 재미를 찾아다니는 나 같은 사람들이 흔히 듣는 말이 있다. “돈도 안 되는 일을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니?”
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8년이 됐다. 출산 후 좋아하는 책을 한 줄도 읽지 못할 만큼 육아로 인해 심신이 지쳐있었다. 힘겨운 시간을 거치면서 깨달은 점은 행복은'발견'하는 것이고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내 손에 행복을 거저 쥐어주지는 않았다. 아이가 두 돌이 되었을 때독서모임을 만들었다. 지역 커뮤니티에 ‘독서모임 하실 분 연락 주세요.’라는 글을 올려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았다.
그저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시작한 일이었는데,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를 접하면서 생각의 지평이 조금씩 넓어졌다. 독서모임의 매력에 푹 빠져 한 때는 4개의 독서모임을 꾸린 적도 있었다. 책에 파묻혀 살던 그때 주위 사람들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역시 “돈도 안 되는 일을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독서모임 덕분에 도서관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책과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을 가득 채웠고, 지금 나는 사람들과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돈 안 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는 셈이다.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어른들이 모여 함께 아이를 키운다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한 어린이집 생활은 만만치가 않았다. 부모 교육, 회의, 소모임, 취미 모임, 대청소......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바빴다. 평일에는 근처에 사시는 친정엄마를 만날시간조차없었다. 어린이집에 푹 빠져 지내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대체 거기서 뭘 하는 거냐”라고 입을 모았다. 맞는 말이었다. 돈이 생기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돈보다도 귀한 사람들을 얻었다.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이들을 나이 마흔이 다 돼서 만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기에 우리는 서로를 더욱 소중하고 귀하게 여긴다. 언제나 환대하고,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진심을 다해박수를 쳐준다. 이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돈 안 되는 나의 어린이집 생활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
작년 봄, 도서관에서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평소 같으면 제대로 읽지 않았을 텐데 ‘마을방송 제작지원 사업 참가자 모집’이라는 글귀가 눈에 띄었다. 클릭해 보니 시(市)에서 마을방송 사업을 시작하는데, 유튜브와 팟캐스트를 만들어 갈 참여자를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팟캐스트 진행을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마을방송을 누가 듣겠냐는 가벼운 마음으로 재미 삼아, 경험 삼아 시작한 일이었지만 조회 수는 상상 외로 폭발적(?)이었다. 당연히 돈은 안 되는 일이다. 조회 수가 아무리 높아도 개인 채널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은 0원! 기획, 녹음, 편집을 거쳐야 하니 들이는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더구나못할 짓이다. 하지만 지금의 경험이 쌓여서 어떻게든 다시 쓰일 것을 알기에 시간이 아깝지 않다. 쓰임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하는 과정이 즐겁고 재미있으니그걸로 이미 충분하다.
십 년 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때도 나는 여전히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힘들지만 재미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다. 나에게 ‘재미’는 힘들어도 시작한 일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다. 돈도 안 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대가를 기대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일상이 의미 있고 풍성해진다. 나는 세월이 지나도평범한 매일을 즐기면서 재미있게 살고 싶다. 그때도 사람들은 돈도 안 되는 일을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