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글방에서 만난 발가락의 글입니다.
“첫 타자로 갔던 남자애와 우리 중 키가 제일 크고 건장해 보이는 남자애가 함께 출발했다. 투입된 두 명의 남자애는 한참을 그 손님 테이블에 서 있었다. 꽤 시간이 흘렀다. 그 테이블에서는 어떤 불만을 제기하는 것 같았고, 역시 음식 주문은 아직 안 한 상태인 것 같다. 두 남자애의 표정이 멀리서 봐도 좋지 않아 보인다. 경직되고 짜증이 살짝 올라온 모양새다. 거기에는 내 애인도 있었다. 애인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고 있는 나도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진짜 저것들 뭐야. 조용히 먹고 가지, 어디서 센 척이야.
보다 못한 내가 출발했다. 153의 키에 유니클로 흰 티와 파란 꽃무늬가 펄럭이는 고쟁이 바지 같은 걸 입고 크록스에 동물 장식을 달고서.”
발가락
사람이 들고 난 자리가 제일 더러워. 생명체 중에 사람이 제일 더러워.
쟁반 위에 잔뜩 쌓인 그릇에서 남은 음식을 버리며 주방이모가 말했다. 그 가득 찬 설거지 거리를 들고 온 나는 괜한 죄책감에 옆에서 조용히 이모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니까요. 실제로 여기 수락산 속 산장식당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 역시 사람은 왜 이렇게 더럽게 자리를 어질러 놓는가에 대해, 인간에 대한 진지한 의문이 들던 참이었다. 음식을 먹는 곳이 더러운가, 물놀이하는 곳이 더러운가, 그것도 아니라면 술을 먹는 곳이 유난히 더러운 것인가. 방학 동안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된 이 산장은 계곡을 메인으로 끼고 가건물 같은 것으로 둘러 설치된 야외 식당으로 여름 한 철 성수기를 노리며 반짝 열리는 곳이다. 사람들은 계곡에서 물놀이도 하고 닭볶음탕, 옻닭 같은 음식도 먹고 술도 마신다. 술을 질펀하게 마시는 공간은 항상 더러움과 함께 한다는 걸 다년간의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르던 바 아니었다. 근데 거기에 물놀이와 음식물이 함께 하니 손님들이 휩쓸고 간 자리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담배꽁초와 가래가 담긴 물그릇, 아기 기저귀는 돌돌 말려 식탁 위에 놓여 있고, 여기저기 튀어 있는 음식물들과 군데군데 흠뻑 젖어있는 자리들. 온갖 건더기들이 온갖 액체와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나와 동료들의 일은 서빙과 함께 테이블을 정리하는 일. 테이블을 정리할 때 쟁반과 고무양동이를 들고 가서는 짬은 짬통에 모아 담고, 그릇은 그릇대로 모아 담고, 쓰레기는 쓰레기에 모아 담아 주방으로 가져오는 것. 그리고 테이블은 새손님을 맞을 수 있도록 원상태로 복원하는 것. 각 테이블은 보통 길쭉하고 넓은 한상차림이기 때문에 치울 것도 많다. 거기다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는 일은 하나의 미니코스 여정과도 같다. 손님 테이블은 계곡을 중앙에 두고 그 옆과 사이사이에 넓은 바위나 지면 위에 설치된 평상에 상이 넓게 차려지는 구조다. 그래서 무거운 상을 들고는 물길을 피하고, 돌담들을 밟고 이리저리 건너서 주방이 있는 본거지(?)로 올라가는 형태다. 모든 길은 오르고 내리고 피하고 살피고 가는 여정으로 꾸려진다. 지루하지 않고 조금 신나는 기분이 들긴 한다. 그렇지만 위험한 여정임엔 분명하다. 주방이모들과 사장님 내외를 제외하고 내 또래의 동료 직원들은 다 남자다. 그 남자 중 한 명은 내 애인이고, 나머지도 같이 합숙하며 오빠고 동생이고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언제는 한 번 욕심을 내고 내 덩치에 넘치는 무게를 들고 오다가 몇 번 돌에서 미끄러진 적이 있다. 결과는 일단 아주아주 아프다. 이렇게 하다가 머리가 바위에 깨져 죽는 것인가. 하는 아찔한 상상이 들었다. 이후 나의 주 종목은 주문받기, 밑반찬 서빙, 테이블 닦고 세팅하기로 고정되었다. 그럼에도 피크타임에는 만석인 테이블과 더위를 피해 끝없이 몰려드는 대기 손님들로 나 역시 최전방에 종종 투입되어야 했다. 평소 홍일점으로 이런저런 배려를 받는다는 분위기에 내 존재는 이미 주방 이모들의 미운 콧털쯤 되는 터라 특히나 이모들 앞에서는 더 종종거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어야 했다. 때때로 이모들이 주방에서 나오면 발재간을 더욱 빠르게 놀리는 잔재주도 부린다.
음식 나왔다! 이모들의 장군 뺨치는 호령이 들릴 때 주변에 아무 직원이 없다면 내가 잽싸게 뛰어간다. 보글보글거리는 탕 냄비를 흐르지 않게 조심조심 들고 가며 온 신경은 내 발부리에 가 있다. 넘어지면 안 돼. 그리고 그 발에는 연보라색 크록스 샌들이 신겨있다. 이놈 참 기특하다. 누가 만들었는지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싸고, 신고 벗기 좋고, 가볍고, 모양새는 어딘가 투박하고 웃긴 데 또 귀엽다. 앞 코에 두두두 뚫려 있는 구멍들에는 지비츠라고 해서 다양한 모양의 장식을 끼울 수 있게 되어있다. 막 편하게 신는 기성품으로 나와서는 신는 이의 개성까지 슬쩍 챙겨준다. 산장에 왔을 때 운동화만 가지고 온 터라 다양한 신발을 전투용으로 신어봤다. 삼선 슬리퍼부터 사장님이 신던 벨크로 샌들도 신어보았다. 항상 물과 함께 일하는 환경에서 삼선 슬리퍼나 쪼리는 미끄러지고 벗겨지기 일쑤다. 차라리 맨발이 낫다. 아쿠아슈즈나 벨크로 샌들은 땀이나 물에 젖으면 어느 부분이 냄새도 나고, 심지어 아쿠아슈즈는 바위틈에 갈리며 찢어지기도 한다. 서빙을 할 때는 손님이 앉은 평상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데, 일반 샌들이나 아쿠아슈즈는 양손이 다 묶여 있는 상태에서 벗기 어렵고 또 재빠르게 신고 퇴장하기도 어렵다. 이에 반해 크록스는 슬리퍼도 됐다가 뒤축에 고무 끈을 올리면 발을 잡아주는 샌들로 변신해서 신고 벗기에 무척 용이하다. 게다가 전면 고무가 아닌가. 방수에 으뜸이다.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전투화다.
크록스를 신으면, 거기에 동물모양 지비츠 같은 걸 좀 달아주면 나는 더 초딩처럼 보였다. 유니클로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박스티와 청량한 파란색 꽃무늬가 가득한 7부 파자마 바지를 입고 크록스까지 신으니 영락없이 부모님과 물놀이 온 초딩이다. 주방이모들과 거친 손님들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기에 크록스도 일조를 한 셈이다. 4호선 끝자락에 위치한 이 동네는 아직도 90년대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상점에 걸린 한때 하얀색이었던 간판은 이제 빛이 바래 노란빛이 난다. 다방과 PC방이 있고, 술집 이름은 거의 00호프, 호프집으로 묘하게 통일되어 있고 00크-럽 이라고 쓰인 가게도 많았다. 그리고 그런 도심(?)을 떠나 산속을 등산하다 보면 이 산장이 나온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한여름에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회포를 풀러 오는 곳이기도, 젊은 성인 남녀 여러 쌍이 커플 나들이를 오는 곳이자 가족들이 교외로의 조촐한 휴가를 보내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꽤 다양한 나이대의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중에는 자신들이 싸 온 먹거리를 우리에게 나눠주는 사람도 있었고 매우 무례하게 구는 사람도 있었다. 산속에 있는 식당의 특성상 주방이모들을 제외하고 사장님 내외, 같이 일하는 사장님 아들, 그리고 나와 같은 직원들은 여름내 주방과 이어진 한켠에 마련된 가건물 집에서 숙식을 한다. 매일 아침 일찍이 눈을 뜨면 남자 사장님과 남자 직원 한 두명이 비가 왔던 천막을 개키기도 하고 다시 치기도 한다. 식당 주변을 쓸고 닦고, 계곡물에 뜬 낙엽도 떠 올린다. 그리고 7시쯤 되면 모두 일어나 손님 맞을 준비를 한다. 재료 다듬기 등 주방 일손을 돕거나 상을 다시 한번 쭉 닦고, 각종 식기류를 닦고 가지런히 모아둔다. 손님은 아주 일찍부터 온다. 아침 일찍 오는 사람의 경우, 전날 밤에 일을 마치고 이제 막 퇴근해서 식사와 한잔을 걸치러 오는 일행들이 꽤 많았다. 사장님 말로는 아침에 오는 손님들 대게는 산 밑 시내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랬다.
어느 날 아침 7시에 6명 정도의 단체 손님이 왔다. 잠에서 덜 깬 직원도 있었고, 남자 사장님의 부름에 일하러 나가는 애인의 기척에 나도 어슴푸레 잠에서 깼다. 아침 7시에 손님을 맞은 건 처음이었다. 산장은 아침이라고 해서 브런치를 내어주거나 하지 않는다. 그냥 연중무휴 파전, 닭도리탕, 오리백숙, 오리로스 이런 거다. 아메리카노를 내어주지도 않는다. 탄산음료 아니면 술이다. 때문에 아침 7시부터 도리탕에 쏘맥을 시키는 손님은 흔치 않다. 사장님은 인근 나이트 크-럽에서 일하는 소규모 조직원 같다고 했다. 보스로 보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고 그 외 보스와 가까운 순으로 서열이 있는 것 같았다. 옷 밖으로 나와 있는 문신들. 나도 발목에 문신 하나가 있지만, 저런 이레즈미 모양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보노보노를 새긴 보스를 잠시 상상했다. 어느 해인가엔 새벽에 다른 두 계파의 조직이 와서는 술을 마시다가 싸움이 나서 서로 칼부림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바로 경찰서에 신고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어. 이제 이십대 초중반의 직원들은 사장님의 무용담에 조금 긴장된 모습을 하고 주문을 받으러 갔다. 일단 남자애들만 그 테이블에 가기로 했다. 그 와중에도 이모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을까 하는 마음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주방이모들은 총 3명이라 각기 취향도 다르고 어느 지점에서 미운털이 박힐지 종잡기 어려웠다. 남자애들한테는 너나 할 것 없이 장난도 치고 살갑게 대해주면서. 이런 생각에 빠질 무렵 주문을 받고 온 가장 어린 나이의 남자 동생이 투덜거리며 들어온다.
아니 엄청 땍때거려. 하 빡쳐. 막 쌍욕을 섞어가며 반말하고 다그치고 뭐라 하면서 주문은 또 안 해. 계속 기다려보래. 술만 일단 가져오라는 거야. 휴.
산장식당에선 무조건 주문을 해야 한다. 술도 팔아야 하지만, 음식의 가격대가 세기 때문에 한 테이블당 큰 요리 하나쯤은 꼭 시켜야 한다. 안 그러면 여름내 반짝 이윤을 땡기며 굴리기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주문을 안 하고 술만 마시다니. 이 경우는 꼭 식사주문을 해야 함을 안내하라는 사장님의 지시가 내려온다. 다음 타자가 주문한 술을 가져가면서 이를 알리기 위해 출발한다. 첫 타자로 갔던 남자애와 우리 중 키가 제일 크고 건장해 보이는 남자애가 함께 출발했다. 투입된 두 명의 남자애는 한참을 그 손님 테이블에 서 있었다. 꽤 시간이 흘렀다. 그 테이블에서는 어떤 불만을 제기하는 것 같았고, 역시 음식 주문은 아직 안 한 상태인 것 같다. 두 남자애의 표정이 멀리서 봐도 좋지 않아 보인다. 경직되고 짜증이 살짝 올라온 모양새다. 거기에는 내 애인도 있었다. 애인의 표정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보고 있는 나도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진짜 저것들 뭐야. 조용히 먹고 가지, 어디서 센 척이야.
보다 못한 내가 출발했다. 153의 키에 유니클로 흰 티와 파란 꽃무늬가 펄럭이는 고쟁이 바지 같은 걸 입고 크록스에 동물 장식을 달고서. 손에는 주문을 받아 적을 흰 종이와 볼펜을 챙겼다. 마음은 덤덤한체 하고 표정은 한껏 퉁명스럽게, 턱은 조금 치켜들고 갔다. 테이블에 도착하니 술이 왜 안 차갑냐고 부하처럼 보이는 사람이 남자애들에게 뭐라고 하는 중이었다.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주문 안 하실 거에요? 저희집은 식사를 주문하셔야 돼요. 뭐 드실 거에요.
여기 뭐가 맛있나. 부하2가 말했다. 다 맛있어요. 시간이 또 흐른다. 무서움은 둘째치고 계속 짜증이 치받쳤다. 이거 그 뭐냐 닭볶음탕이랑 밥이랑...
밥 한공기요? 몇 공기요? 되받아치는 나의 말투에 짜증이 섞여 나왔다. 그러자 그동안은 말을 거의 안 하던 대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슬쩍 나를 쳐다본다. 살짝 움찔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을 했으면 기세를 뺏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표정을 일관되게 유지하려 애썼다. 거 미안합니다. 우리 애들이 잘 결정을 못해서. 그 말에 아, 네. 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대장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며 갑자기 방긋 웃더니 캬, 당돌한 아가씨네. 이런 사람을 만나야 되는데. 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장의 말에 아 형님, 당연히 만나실 수 있죠. 그럼요. 라며 요란하게 거드는 부하2와 3이다. 그러자 부하2가 자기네 형님이 어떠냐고 물었다. 토할 것 같았지만, 여기서 정색하고 꺼지라고 말하기엔 그 정도의 배포는 없었다. 무서운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최대한 능숙하고 느물느물한 사람처럼 넘겨야 한다. 대장아저씨의 눈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리곤 최대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아, 제 스타일은 전혀 아니신데. 눈이 귀엽게 생기셨네요.’ 그 대장아저씨, 자세히 보니 소 눈망울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웃음이 터졌고, 대장아저씨가 그 대답이 맘에 들었는지 테이블의 분위기가 이전보다 유들해졌다. 그리고 그 뒤에 주문은 수월하게 진행됐다. 주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크록스에 달린 작은 동물들을 쳐다봤다. 휴. 발가락 너 나대지마.... 스스로에게 말했다. 동시에 어떤 으쓱함 같은 것도 있었다. 내가 이 상황을 해결했다 같은. 나 좀 세지? 이런. 사실 그 모든 게 초딩 같은 모습을 한 당돌한 꼬마가 무언가 앙칼지게 말하니 그 부조화가 웃겨 보여 잘 흘러갔다는 건 나중에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깨달았다.
다사다난한 산장에서의 하루 일과를 마치면 저녁에는 우리들만의 물놀이를 한다. 어두운 밤 몇 개의 조명등에 의지해 손님이 없는 계곡에서 첨벙거리며 오늘 있었던 얘기 중에 웃긴 얘기를 해대고 낄낄거렸다.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이면 정자 처마 밑에 앉아 습기로 흩어지지 못하고 대기에 머금어진 담배 연기 사이에서 낄낄댔다. 그날의 중심 소재는 뭐니뭐니해도 불량배 아저씨들이었다. 눈 예쁘다고 하는 거 들었어? 진짜 웃긴 누나야. 어쩌고. 아 그놈들 또 오기만 해봐. 오면, 또 오면, 나는 주방에 일 좀 돕고 있을게. 어쩌고. 내일 오후에는 시내에 지비츠나 구하러 나가볼까. 우리 다 손님이 흘리고 가거나 얻어 단 지비츠뿐이잖아. 저쩌고. 어쩌고저쩌고의 시간이 새파랗게 차갑고 또 상쾌한 계곡물과 함께 흘렀다. 바위 위에는 저마다 다른 지비츠가 달린 크록스 5켤레가 놓여 있었다.
발행일. 2022.07.09 | 글감. 잇템
발가락 (길)
발가락의 존재를 발가락이 아프니까 알았다. 글도 그런 것 같아 계속 쓰기로 했다. 라고 썼더니 이후로 정말 글방시간마다 혹독해졌다. 소개를 바꿔야 할까?
발가락이 리듬을 타 신이 난 그날도 발가락을 감각했다. 글도 그런 것 같아 계속 쓴다. 신난다.
꾸준히 우당탕탕 좌충우돌 살고 있다. 이도저도 아닌 중간에서 일부러 길을 잃는 취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