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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딘의 우연한 연결 Oct 24. 2022

[어딘글방] 이모 _ 원목

토요글방에서 만난 원목의 글입니다.


선이골을 나가서 살게 된 이후부터, 어쩌면 내가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점점 더 아버지와 오빠들이 있는 선이골로부터 거리적으로 멀어지게 된 후부터, 나는 종종 아버지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하고 바랐다. 태양광 전기만 간신히 들어오는 그곳에, 나무 난로와 온돌로 난방을 하는 그곳에, 사계절 내내 나무 탄내가 아주 딥하게 나는 그곳에,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습한 그곳에,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 남자와 동거 비스무리한 연애를 할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가 존재할 리 만무하겠지만서도 가끔씩은 그냥 아버지를 좋아하는 존재가 나타났으면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아득한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아주 늙기 전, 엄마가 막 돌아가신 직후, 오빠들도 나도 아직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좋아하고 아버지를 좋아했던 사람, 여자, 어른.





이모


원목 


“아버지 연애 안 하시나? 아버지도 여자친구가 생기면 좋겠다. 그러면 말동무도 생기고 밥도 더 잘 드시고 그럴 텐데.”


말랑한 복숭아와 소시지, 멸치칼국수, 과자 같은 걸 봉지 가득 사서 선이골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운전하는 일이 옆에서 혼잣말처럼 말을 뱉었다. 80이 다 되어가는 아버지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일이와 나는 모든 방면에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느려진 걸음걸이, 홀쭉해진 팔과 다리, 가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까지. 게다가 아버지는 음식량도 적어지고 씹는 속도도 느려졌다. 기력이 쇠했다는 것보다는 늙어버렸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만큼 아버지의 나이가 실감 나는 요즘이었다. 

선이골을 나가서 살게 된 이후부터, 어쩌면 내가 직장을 다니고 연애를 하고 점점 더 아버지와 오빠들이 있는 선이골로부터 거리적으로 멀어지게 된 후부터, 나는 종종 아버지에게 여자친구가 생겼으면 하고 바랐다. 태양광 전기만 간신히 들어오는 그곳에, 나무 난로와 온돌로 난방을 하는 그곳에, 사계절 내내 나무 탄내가 아주 딥하게 나는 그곳에,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습한 그곳에, 여든을 바라보는 늙은 남자와 동거 비스무리한 연애를 할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가 존재할 리 만무하겠지만서도 가끔씩은 그냥 아버지를 좋아하는 존재가 나타났으면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면 아득한 기억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아주 늙기 전, 엄마가 막 돌아가신 직후, 오빠들도 나도 아직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도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좋아하고 아버지를 좋아했던 사람, 여자, 어른. 


*


“새엄마 생기니까 좋지?”

“새엄마는 잘 지내시니?”

“새엄마가 잘 해줘?”

“그래도 엄마가 있어야 돼.”


마을 아주머니들은 내가 지나갈 때마다 길을 물어보듯 말을 건네왔다. 13살. 엄마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채 지나기도 전의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의아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새엄마가 없었으니까. 아버지는 새롭게 장가를 가지 않았고 그러니 당연하게 새엄마라고 소개된 사람도 없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상한 아주머니들이네’하며 지나치곤 했다.

생각해보면 어렴풋하게 눈치를 채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명확하게 ‘우리 결혼했어요’라고 말하진 않았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여자분이 있었다. 그러나 엄마가 있을 때부터 우리 가족 분위기가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붙잡는, 약간의 공동체적 삶을 지향해서 나는 우리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 그분도 공동체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온 사람일 거라고 짐작했었다. 게다가 그 분은 나보다 한 살 많은 딸도 데리고 왔다. 오빠들과 나는 그 분을 ‘이모’라고 불렀다. 당연히 이모의 딸은 내겐 언니였고 오빠들에겐 친한 여자 동생이었다.

우린 엄마와 아버지와 친한 사람들을 이모와 삼촌이라고 불렀다. 여자 어른들은 이모였고, 남자 어른들은 삼촌이었다. 그보다 어리면 언니와 누나, 오빠와 형이었지만 아버지와 엄마의 나이가 많아서 대게는 이모와 삼촌이 많았다. 그래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선이골에서 같이 생활을 하게 된 예의 이모도 우린 이모라고 불렀다. 우리들에겐 전혀 이상할 것도 문제 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지인들도, 아빠의 지인들도 선이골에 와서 며칠씩 묵다가 내려갔으니까. 다만 그 이모는 선이골에서 지내는 기간이 길었을 뿐이다.

이모와 언니랑 우리 가족은 아주 잘 지냈다. 4명의 오빠들 밑에서 지내던 나는 언니가 꼭 갖고 싶었기 때문에, 친언니가 생긴 것처럼 좋았다. 언니 말이라면 거의 다 따를 만큼 말도 잘 들었고 얘기도 많이 나눴다. 언니는 우리 아버지를 안 좋아했는데, 언니 말에 따르면 아버지 때문에 자기 엄마랑 아빠랑 싸웠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이 시골에 왔다는 것이었다.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으므로, 나는 언니와 함께 우리 아버지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언니가 미워하는 사람이 우리 아버지라도 나는 같이 미워할 수 있었다.

이모는 요리를 엄청 잘하셨다. 장을 보기가 쉽지 않은 선이골에서도 이것저것 맛있게 잘 만들어 주셨다.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모였다. 심지어는 이모와 언니, 나, 이렇게 셋이서 빨래도 자주 했는데 세탁기도 없이 손빨래로 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었나 싶은데 그땐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살아있을 때도 그렇게 했었으니까.


*


아이들만 주렁주렁 있는 산골짜기 할아버지에게 여자가 생겼다는 소문은 날개를 달고 날아다녔을 것이다. 나는 스쿨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길, 마을 어귀에서 거의 매일 마을 아주머니들의 대화를 들었다. ‘새엄마’는 잘 지내냐는 말이 나오면 각자 입이 터지는 것이었다. 

“새엄마가 생겼어?”

“아, 왜, 그 있잖아. 저기 선이골 할아버지네.”

“아아, 새 장가 드셨대?”

“그런가봐. 여자가 새로 들어왔는데 같이 사는가 봐.”

그러면 누군가는 꼭 나를 불러 세워 이렇게 물어봤다.

“얘! 새엄마가 잘해주니?”

그런 질문들이 며칠이고 지속되는 어느 날 내 안에 균열이 생겼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이모가 사람들 눈에는 새엄마로 보인다는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아무리 ‘친한 이모’라고 말을 해도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아버지가 진짜 새로 결혼을 한 건지도 모른다는 것. 

속에서부터 자라나기 시작한 미움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망가뜨렸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엄마만을 사랑해야 하는데 왜 이모를 좋아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식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이모의 행동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니까 지나치게 엄마의 행동들을 닮아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모를 미워하기엔 그동안 이모를 너무 좋아했다. 어찌할 수 없는 감정들이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도저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나는 이모에게 상처가 되는 말들을 내뱉었다.


“이모로서는 좋은데 엄마가 되는 건 싫어요.”

“가끔은 이모를 몰랐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냥 이모로만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모는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때까지 나는 어른이라면 아주 단단하고 무너지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모는 상처받은 어른의 눈을 하고 있었다. 


*


슬프게도 이모와 아빠의 연애 같지 않은 연애는 끝났다. 둘의 공동체 삶과 같은, 동거를 닮은, 연애 아닌 연애, 결혼 아닌 결혼 생활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이모와 언니는 선이골을 내려갔다. 선이골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직후같이 다시 조용해졌다. 아버지와 오빠들과 나는 그냥 살았다. 

그 이후로 언니와 나는 일 년에 몇 번씩 연락을 주고받다가 언제부터인가 그마저도 끊겨버렸다. 이모의 소식도 영영 끊어진 지 오래다. 

늙어버린 아버지를 보면서 이미 10년도 넘은 그때를 떠오른 까닭은, 그때 이모가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마음먹었던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이모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여전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로 돌아가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마을 아주머니들의 그런 속삭임에 흔들리지 않고 싶었다. 당신네가 뭔데 남이 가족 일에 참견이냐고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 따박따박 대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만 이모에게 사과 하고 싶어졌다. 결코 당신이 미워서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발행일. 2022.08.13 | 글감. 참견하지 마


원목(김원목)


자주 걷고 생각한다.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일상의 작은 것들에 의무 부여하는 걸 좋아한다. 개와 고양이, 꽃과 나무처럼 무해한 것들을 좋아한다.


매일 일기를 쓴다. 자주 메모를 끄적이고 가끔 글을 쓰지만 언젠가 글을 쓰면서 먹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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