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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Jul 29. 2023

무제1

서른즈음에 자살하기 전_기타 #1


 시간이 흐를수록 A를 생각하는 빈도가 늘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A와 알고 지낸 지는 꽤 오래되었으나 시간 때문에 그리워하는 건 아니었다. 성인이 되고부터 내가 A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느낀 건 불편함이었다. 좋은 감정은 아니었기에 부정적 감정과 그리움은 별개로 느끼는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A가 반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을 때, 이루고픈 꿈에 대해 밝게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설레는 듯,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습관인 듯 A는 왼쪽 손등 쪽 팔목을 오른손으로 잡고 문질렀었다. 막연하게 닮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나는 평범했으나 A는 빛나보였다.


 대학 진학 후 먹고사는 현실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A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성인이 된 후의 A는 과거처럼 순수한 아이 같았지만 때때로 빛마저 한없이 삼키는 어둠 같아 보였다. 이 양면성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각진 고무공. 나는 불확실성을 이해하거나 견딜 수 없었다.


 A와 물리적 거리는 가까웠지만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는 사이는 아니었다. 친한 친구라는 범위에 들어온 적은 없었고 그저 같은 반 친구였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연락이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친밀도만큼 대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우리는 삶의 관점이나 관심사가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았다. A가 퇴사하고 뭐 할지 고민 중이라는 말에 나는 주식시장이 별로 좋지 않다는 말을 했고, 내가 회사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말에 A는 카페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고 했다. 서로 다른 말만 내뱉으며 서로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있었다. A는 이런 대화를 답답해했고 나는 구역질이 났다.


 메신저 상에서는 가끔 연락하였지만 어느샌가 A는 나를 직접 만나기 꺼려했다. 5년 전쯤 만난 게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퇴근 후 저녁에만 잠깐씩 만났었다. 같이 밥을 먹지도 않았다. 카페 같은 곳에서 1시간 정도 머무르다 떠난 게 다였다. 그 이후, A가 보내준 메신저의 말투 같은 느낌으로만 잘 살고 있는지 확인했다.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매일 야근하던 어느 날, A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아침에 자고 낮에 일어나는 애가 아침에 만나자고 하다니, 마침 다음날이 주말이기도 해서 약속을 잡았다. 무슨 일인지 호기심이 일었다.



 비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들었으나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우산을 챙겨서 나왔다. 서로 약속을 잡는 스타일이 아니었기에 의외였다. 오랜만에 만난 A는 웃고 있었다. 가방도 없었고 손에는 우산도 없었다. 준비는 끝났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물어보았으나 비밀이라고 했다. 친한 친구나 부모님도 알고 계시나고 물어보았다. 보통 그런 걸 부모님께 말하지 않아. 온전히 나의 일이거든 이라고 대답했다. 해줄 말이 없었기에 함께 흐르는 강만 바라보았다.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는다면서 왜 나를 만나려 했을까? A는 왠지 나를 만나야 준비가 마무리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조금 망설이는 것을 보았다. 아마 말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이었겠지. 하지만 그건 나도 안다. 여기서 그 계획이 뭔지 말하면 또다시 말다툼으로 번지게 될 거라는 걸. 그래서 언급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마 A의 루틴에 내가 말려든 것 같다. 계획하기 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어색한 침묵이 흐른 후, A는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은 키가 작아진다고 하는데 그 느낌이 싫다고 했다. 점점 키가 작아지다가 존재도 의미도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두렵다고 했다. 나는 알 수 없었다. 그 한마디로 끝내기 아쉬웠던지, 아니면 바라보기만 할 뿐 대꾸조차 못해준 나를 의식해서인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스위스로 여행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는 말. 나는 아직 여권도 없어서 여행에 대한 동경이 없어 이것도 공감해 줄 수 없었다.


나는 끝까지 있으려고 했다. 다만 건네줄 말이 적어 할 수 없었고, A는 고등학생 때처럼 어둠 없이 말을 했다. 왜 옆에 있던 많은 친구들을 만나지 않고 나를 만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니구나 싶었다. 강에서 놀던 새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자 A는 나에게 이만 가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가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계속 재촉하는 A에 모습에 그 자리를 떴다.


A가 무엇을 계획했는지, 왜 나를 만나야 준비가 완성이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이후부터 A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핸드폰 번호를 바꾼 건지, 아니면 연락을 끊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일에 치여 바쁜 일상에서 가끔, 정말 가끔 A에 대한 생각이 들 때 그날 또한 생각났다. A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왠지 그 이후부터 왼쪽 팔목이 가려운 것 같은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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