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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SR Oct 29. 2024

하늘을 보는 방법

자살이 허기진 밤 #034


 오른손을 가위모양으로 만든다 엄지를 살짝 구부리면 총 모양이 된다. 검지는 자연스레 총구다. 검지를 턱 밑에 가져다 댄 다음, 스스로 말해본다. 빵. 소리와 함께 나는 하늘을 본다. 이는 자살한 사람이 보는 풍경일까? 아니면 그들은 풍경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걸까? 궁금해졌다. 나는 아직 그 의문을 풀지 못했다. 한국에서 총을 구할 수는 없겠지.


 노래 가사처럼 나는 30살을 살고 싶지 않았다. 29살 이후의 삶이 나를 이롭게 했을까? 나는 묵묵히 말한다. 그건 아니라고. 연장된 삶이 나를 더 이롭게 하지 않았다고. 몇몇 기존 삶보다 조금 더 추가적인 경험을 주었지만, 그건 나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 시간이 내게 준건 무던함, 무기력함,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무관심. 그리고 내가 나를 생각하는 것도 더디게 된 무관심.


 지금은 가을인가? 여름도 겨울도 아니니 가을이라 말한다. 나의 옷차림도 반팔에 외투를 입었으니 가을인 것처럼 보인다. 가을을 탄다고 말한다. 봄은 처녀의 계절 가울은 남자의 계절. 가을 위에 피를 흩뿌려도, 그건 피로 인식되지 않는다. 가을이 짙어졌구나 생각만 들뿐. 결국 나는 발버둥 쳐봤자 도구일 뿐인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가을을 정말 잘 타. 내가 가을을 타지 않았던 때는 군대에 있을 때 말고는 없을 거야."

날이 쌀쌀해질 때쯤 나는 항상 우울했다. 날이 추워지는 게 뭐가 대수라고 나는 우울해지는 걸까? 


 노란 책을 꺼내든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책이다. 그 책의 존재 의의는 나를 위로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나는 그 책으로 인해 위로를 받는다. 그것뿐이면 나는 만족한다. 사람들은 잊기 위해 술을 마신다. 하지만 나는 그걸 위해 마실 수 없다. 내게 술이란 과거에 대한 각성제와 같아서 더 또렷하게 만들어 준다. 마시면서 너를 생각하지만 그건 내가 술을 마시고 있는 시간에서 생각일 뿐 너에게는 나와는 아무 관련 없이 흘러가는 시간 중 하나일 것이다. 일에 치이든, 새로운 연애에 치이든.


 그러니 사람들은 음악에 빠지는 것일까? 마약이 없기에 음악에 빠지는 것이다. 볼륨을 키워서 내 귀를 막는다. 소리로 감정을 덧씌운다. 말라 떨어질 것이지만 순간은 막을 수 있다. 우울한 노래가 좋다. 나는 우울함이 스며들 때 이를 없애는 것보다는 우울함으로 더 깊숙이 빠져드는 것을 택한다. 나는 너보다 더 우울해질 거야. 나만이 나를 최악으로 만들 수 있어.


 나는 내가 나름 감정기복이 심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이렇게 나락으로 빠질 때마다 나보다 더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어떻게 이 삶을 버티는 걸까? 역시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이야. 대단하기 때문에 나는 그저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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