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었다. 이틀 동안 백담사에서 구곡담 계곡과 봉정암을 거쳐 소청 대피소에서 하루를 자고 대청봉과 희운각 대피소, 천불동 계곡, 설악산 소공원에 이르는 26km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무리했다.
남들 다 하는데 뭐가 대단하냐고 핀잔을 들어도 괜찮다. 나는 체질적으로 무릎이 약하다. 더군다나 60대 중반이다. 정형외과 의사는 무릎을 아껴 써야 하니 등산을 하지 말라고 오래전부터 경고했다.
그런데 설악산 등산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을까? 몸이 근질거려 이 단풍철에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사실, 일 년 전부터 "무릎에 무리가 되더라도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을 못 보고 죽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설악산 대피소에서 하루 자고 등산하는 것이 버킷 리스트가 되었다.
마침 우리 교회에는 거의 등산 전문가 수준인 목사님이 계셔서 수시로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목사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체력으로는 어렵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는 싫었다. 집에서 가까운 북한산을 자주 올라가며 체력을 키우고 무릎을 보호하는 등산 보행법과 장비 사용법을 열심히 공부했다. 나름 체력이 키워지고 다리 근육도 생겼다.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지만 진짜 설악산을 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산이 아니라 내가 갈 수 있는 산에 가야 한다"는 산악 전문가의 충고를 따르면 평생 가지 못할 것 같았다.
더 늦추기는 싫었다. 일단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그런데 아뿔싸~~. 설악산 대피소가 가을에 이미 예약이 꽉 차버렸다. 내가 너무 아쉬워하니 목사님은 가끔 취소가 나온다고 귀띔해주었다. 매일 수시로 예약 사이트를 체크했다. 드디어 두 자리가 나왔다.
나는 목사님께 같이 가지고 졸랐다. 이미 다른 산을 가기로 예약이 되어 있던 목사님은 잠시 고민하다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드디어 우리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담사행 버스를 첫 차를 타고 출발했다.
가슴이 벅차기도 했지만 두려움이 몰려왔다. 며칠 전부터 왼쪽 무릎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하필 이틀 전부터 몸살 기운이 올라왔다. 설상가상으로 출발하는 날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잠을 설쳤다. "내가 정말 올라갈 수 있을까?" 나 혼자라면 분명히 포기했을 기분이었다. 하지만 목사님을 실망시켜 드릴 수는 없었다.
백담사 계곡에 들어서자 목사님은 나보고 앞서 가라고 했다. 목사님은 정확히 두 발짝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내가 빨리 가면 빨리 쫓아왔고, 내가 느려지면 목사님도 속도를 늦췄다.
등산을 마무리할 때까지 목사님은 단 한 번도 나를 앞지르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고 등산이 끝나고 나서 이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걸으면서 가끔 물었다. "목사님, 내 걸음이 느려 불편하지 않아요?"
목사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도 걸음이 느립니다. 괜찮아요."
내가 신이 나서 걸음이 빨라지면 자랑스럽게 물었다. "목사님, 내가 좀 빠른가요?"
목사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정도는 따라갈 수 있습니다. 괜찮아요."
나중에 나는 목사님이 등산하는 내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며 걸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가끔씩 뭔가 흘리면 목사님이 주워주었던 것도 기억도 났다.
나이 많은 성도가 혹시라도 무리한 산행으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자신이 앞서 가면 내가 따라가느라 지쳐 포기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내 뒤를 따라왔던 사실이 소공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생각났다.
나는 오직 내 걱정을 하며 걸었지만 목사님은 내 걱정을 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속도를 조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목사님 덕분에 나는 내 페이스대로 편안하게 걸으며 버킷리스트를 채울 수 있었다.
설악산의 단풍과 웅장하고 섬세한 산악의 아름다움에 홀린 이틀 동안 나는 최고의 행복을 누렸다. 목사님이 내 뒤에서 따라오는 리더십으로 나를 섬겨주었기에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