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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달 Jul 04. 2022

[영화 리뷰] 헤어질 결심

미장센의 대가 박찬욱 감독 시리즈 1

영화: 헤어질 결심

감독: 박찬욱

개봉: 2022.06.29.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장센의 대가 박찬욱 감독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갈 때면 이번에는 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데려왔을지, 어떤 미장센을 보여줄지 기대하게 된다. 미장센은 무대 위에서의 등장인물의 배치나 역할, 무대 장치, 조명 따위에 관한 총체적인 계획을 말하는데 가히 박찬욱 감독은 미장센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 헤어질 결심을 볼 때도 소품, 카메라 구도, 색감까지 신경 쓰며 관람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영화에서도 벽지 무늬, 한껏 줌 인 된 긴장감 넘치는 카메라 구도까지 눈길을 끌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지루할 틈 없었고 생각해볼 만한 요소들이 몇 가지 눈에 띄었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못 해석된 부분도 있겠지만 정확성에 의미를 두기보다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거 같다.


     

1. 해준이 틈틈이 넣는 안약의 의미는 무엇일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틈틈이 ‘해준’(박해일)은 안약을 넣는다. 영화 초반과 후반쯤에 해준과 대비되게 눈을 뜨고 죽은 사람의 눈이 나오는데 그 눈은 부패하여 벌레가 꼬여있다. 그리고 해준이 부산에 있는 ‘서래’(탕웨이)를 떠나 내려온 이포는 대부분 안개가 가득 껴서 햇빛을 볼 수 있는 날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해준은 눈에 벌레가 가득한 시체를 가까이해야 하고, 안개가 껴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 그런 해준에게 안약은 자신이 마주해야 하는 진실을 더 정확하게 볼 수 있게 하는 도구일 것이다.     


2. 서래가 시계에 자신의 마음을 녹음해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래는 해준에 대한 마음을 시계에 녹음해놓는다. 현재 남편이 해준보다 못한 모습을 보일 때도, 해준과 재회 후 첫 대화를 하기 전에도, 해준의 감정을 예상할 때도 서래를 자기 생각과 감정을 시계에 녹음해놓는다. 서래는 해준의 사랑이 끝나고 자신의 사랑이 시작됐던 부산에서의 마지막 대화를 기점으로 녹음하기 시작한 것 같다. 마지막 대화는 앞으로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해준의 목소리를 간직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면 자신의 마음은 왜 녹음으로 남겨놓은 걸까? 아마도 해준에게 잊지 못할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 나를 보지 못해도 내 목소리를 잊지 않게, 해준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었음을 알리고 평생의 가장 큰 여운을 주기 위함일지 모른다. 자신을 떠난 ‘해준에 대한 복수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해준이 피를 무서워함을 알고 재혼한 남편의 살인 현장까지 깨끗이 청소해놓은 서래가 그럴 리 없을 것 같다.

 


3. 서래가 바다에 깊은 모래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죽은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가 끝나고 나오며 가장 심도 있게 고민했던 부분이다. 우선 서래와 해준은 산보다 바다를 좋아했다. 그리고 해준은 서래에게 첫 번째 남편에 대한 범죄가 드러날 수 있는 핸드폰을 바다 깊은 곳에 던져버리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해준은 피를 무서워한다. 이 세 가지로 이유를 추측해보건대 서래와 해준 둘 다 좋아하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던 것이 아닐까 싶고, 해준의 말대로 해준을 붕괴시킬 수 있는 증거물인 자신을 바다 깊은 곳으로 숨겨버리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바다에 몸을 던져 죽으면 부유물들에 부딪혀 몸에 상처가 나고 피까지 날 수 있기 때문에 이후에 발견할 해준에게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던 거 같다.    


4. 포스터에서 서래의 배경은 바다이고 해준의 배경은 산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는 산과 바다에 관한 언급이 자주 나오고 서래는 산을 의미하는 색인 초록색으로도 보이고, 바다를 의미하는 색인 파란색으로도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나오기도 한다. 해준과 서래에게 산과 바다는 어떤 의미일까? 둘은 산에서 일어난 사망 사건으로 인해 처음 만났고 바다에서 재회하고 이별한다. 정확한 의미를 알 순 없지만 예측해보자면 해준은 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해 서래를 만났을 때부터 사랑을 키웠고, 서래는 바닷물이 밀려오듯 천천히 사랑이 시작되어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이 외에도 사소하게 해준이 사건 현장에 나가서 선물로 받아온 자라를 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집 나가면서 가져갔는지 궁금했었는데 자라가 정력에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해준의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를 굉장히 중요시 생각하고 석류도 열심히 챙겨 먹는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런 걸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나는 당신의 미결사건이 되고 싶어요


  이 대사를 들으며 떠오른 영화가 있는데 2008년에 개봉한 ‘아름답다’라는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이야기하자면 길을 걸어가면 모든 남자가 돌아볼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여자가 있었다. 친구의 남자친구까지 치근덕거리고 스토커도 따라붙을 정도로 아름다운 이 여자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계속해서 범죄에 노출된다. 그로 인해 여자는 남자들만 보면 자신을 해쳤던 남자로 보여 모두 죽이려고 하지만 그런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한 경찰로 인해 다시 마음을 회복한다. 희생적인 경찰의 모습에 반해 여자는 남자와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데 관계하기 전 남자는 여자의 손에 권총을 쥐여주고 떨어지지 않게 테이프로 묶는다. 그렇게 같이 침대에 눕자마자 여자는 경찰의 얼굴에서 자신을 해쳤던 남자의 환각을 보게 되고, 권총을 쏴 경찰을 죽인다. 이 영화를 보며 남자가 정신도 온전치 못한 여자에게 권총을 쥐여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그 경찰은 여자의 환각 속에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이 있길 원했던 거 같다. 아름다운 여자를 지나쳐간 남자 중 한 사람이 아니라 평생 자신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자기 죽음을 통해 목표를 이룬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대사가 아닐까 싶다. 해준은 미결사건과 관련된 사진들을 벽 한 면에 붙여두고 끊임없이 고민할 정도로 미결사건들에 집착한다. 서래도 해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나 보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평생 자신을 잊지 못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문장 같다. 결국 죽음을 통해 그 목표를 이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살아볼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믿고 보는 박찬욱 감독답게 이번에도 볼거리, 생각할 거리, 느낄 거리가 넘치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관람만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영화였기 때문에 조만간 다시 보러 갈 예정이다. 가벼운 영화보다는 관람 후 나눌 거리가 많은 영화를 선호한다면 추천하는 영화다.


CGV 헤어질 결심 FILM M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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