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지역시장에 갔다. 장을 보다가 한 정육점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고기의 가격은 무게로 계산하기 때문에 십원단위까지 금액이 책정 될 때가 많다. 몇 가지 종류의 고기를 고른 뒤 계산을 하려는 데 포스기계가 고장이 난건지 시장 상인은 머뭇거렸다. 성질이 급한 아버지께서는 "삼만 팔천 이백 칠십원!!"이라며 한 마디를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머릿속으로 십원단위의 가격들을 다 암산해낸 것이다. 상인은 못미더웠는지 서툴게 계산기를 두들기면서 "다시해볼게요."라고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맞다니까요!" 다시한번 재차 같은 금액을 말하셨다. 그 뒤로 상인은 계산기를 몇 번을 더 두들겼다. "아아 맞네요, 죄송합니다. 언제 그걸 다 머릿속으로 계산했어요? 대단하시네요"
투박하고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의 손을 잡으면 까끌까끌하고 거친 촉감이 든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미워진다. 나는 아빠만큼 똑똑하지도 않고 호탕하거나 그릇이 큰 사람도 아니다. 30대가 다 됐지만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아버지만큼 인생을 당차게 살아낼 자신이 없다. 일차적으로는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다는 뜻이지만, 내 자신에게도 해당한다. 과거에는 그의 깊이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께서 노골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공속에 내뿜는 담배연기만이 그의 고독을 말해준다.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겠지만 그동안 자식 둘을 홀로 키워내느라 온갖 고생만 하고 살았다.
"이럴거면 나를 왜 낳았어. 내가 죽으면 다 아빠때문인줄 알아."
그런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커녕 내 마음이 지옥이라는 명분으로 그의 오히려 숨통을 끊는 말을 내뱉고 말았다. 아버지의 고단함을 미리 포착 할 수 있을 정도의 그릇이 됐다면 지금보다 덜 상처를 주었을텐데. 자식이라는 것들은 부모라는 이유로 사소한 실수조차 놓치지 않으며 트집잡고 탓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런데 유독 부모에게만큼은 완벽에 가까운 역할을 요구하니까. 그저 표현이 서툴었을 뿐이었다.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라는 말 대신 소리지르며 "이 시간까지 밥도 안먹고 다니고 뭐했냐"라는 말이 입밖으로 더 편하게 나올 뿐이다.
가끔은 내가 없었다면 아버지의 인생이 좀 더 밝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타고난 머리 자체가똑똑하신 분이고 현명하시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큰일을 도모 할 수도 있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굳이 따지지 않으려 한다. 어쨌든 변하지 않는 사실 하나가 있다. 나의 기원은 그로 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애초에 그가 없었으면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저 나의 아버지로 살아주셔서 감사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