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나무에서는 매실이 열린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매실이 매화 나무에서 열린다니. 이 간단하고도 당연한 이치 조차 살필 겨를이 없었다. ‘매화’이라는 꽃도 ‘매실’이라는 열매도 알고있었다. 그 둘이 같은 근거지에서 생성된다는 발상은 해보지 못했다.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때로는 도착지를 향한 여정에 몰두한 나머지 바깥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목표를 쟁취하기 위하여 온갖 에너지를 끌어 모아 쓰곤 한다. 그렇게 살다 보면 굉장히 진취적인 인간이 되어있을 줄 알았다. 강해지며 발전적이며 자기계발적인 인간이 되는 줄 알았다. 허나 그저 매실이 매화나무에서 열린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이 됐다. 하드웨어는 멀쩡한데, 소프트웨어가 하나도 탑재되어 있지않은 컴퓨터. 즉, 빈 깡통같은 느낌이다. 또래들이 취업하고 나름대로 자기 자리잡을 때 까지 나는 이미 지나간 시간에 집착했다.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미성숙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살아야 하는 심정이 서글펐다.
매실나무나 매화나무나 본질적으로 같은 나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꽃을 강조하면 매화나무, 열매를 강조하면 매실나무라고 말을 할 뿐이다. 맹목적인 믿음은 무섭다.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인생인 데. 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창조해 나가는 것임을 망각하며 살게 만들었다. 어쩌면 질문 자체가 잘 못 되었을지도. 그전 까지 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달렸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도 모른 채. 인생의 답은 유일하게 정해졌고, 그게 아닌 예외란 있을 수 없다고 믿어왔다. 그 길을 가지않으면 도태된 것이라고 규정해왔다. 그러한 것들은 대체적으로 타자의 욕망이 묻어있었다. 언제나 내 자신은 없었다. 남들 눈에 이렇고 저렇게 보이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달려왔지만 어느 곳에도 다다르지 못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행여 이전과 같은 삶이라 해도 내가 무엇에 포커스를 잡느냐에 따라 결과값은 다양해질 수 있는데. 주변을 살피고 나름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희망을 품기도 했었다. 온 세상 사람들의 공격을 다 받아도 떨쳐낼 비장의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어왔다. 바로 “언젠가는”이다. “언젠가는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테야.”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야.” “언젠가는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을 모두 역으로 깔아 뭉개 주겠어.” 지금은 비록 남루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 먹은 것들. 그 중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희망이 고문이 되는 순간이다. 그렇게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느낀 것이다. 아, 이대로는 안되겠구나. 비장의 무기를 아예 다 없애라는 의미가 아니다. 무기 없애는게 두렵다면 최소한 바꾸기라도 해야한다. 내게 알맞은 것으로. “지금,이순간”으로. 불분명한 미래에서 실존하고 있는 현재로 교체해야 한다.
새처럼 하늘을 누비고 싶다.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서 일까. 하늘은 미지의 세계이다. 인간의 두 다리나 두 팔로는 갈 수 없는 곳. 하늘의 경계가 바닥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애초에 우리는 이미 하늘과 맞닿아 살아는 게 아닐까. 그럼에도 언제나 높이 있는 듯 하여 우러러 봐야하는 곳.불안을 상쇄시키기 위한 행동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리고 불안의 이유는 가늠할 수 는 있지만 정복할 수는 없는 영역이다. 내가 두렵고 불안한 이유는 혹시라도 실패를 할 까봐 그렇다. 근데 그래서 그 실패를 하면 뭐가 많이 달라지나? 하면 뭐 어때서.
'깨어나야 한다. 어떠한 틀에 국한되는게 아니라 이상을 실현하는 도구로 틀을 사용 하고싶다.'
매화가 매실나무에 피는 꽃 인줄 몰랐던 인간이 과연 이 세상을 다양하게 알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허나 글은 도구일 뿐이고, 궁극적으로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 내야한다. 그게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바다의 넓이 만큼 헤아리기 어렵다. 동시에 무섭기도 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도 용기를 낼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글을 쓸 때 그 누구보다 나는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어떤 일 보다 천직이라 느낀다. 매화꽃에 벌이 앉아있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파리가 앉아있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 처 럼.그것이 꼭 밥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 언제나 곁에 두고 싶은 친구다.
매화가 피었다면 봄이 오기 시작했다는 뜻이라고 한다. 오랜 시간 어두운 터널을 걸어야 했다. 깜깜하고 어둡지만 터널은 터널이다. 끝이 있다는 말이다. 겨울은 마치 터널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매서운 추위가 온몸을 감싸고는 한다. 그 겨울의 끝에서 봄을 맞이 할 차례이다. 그저 봄을 느끼고 적으면 그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