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임신을 하고 나서 과장님이 나를 따로 불렀다. 의도를 모르겠는 말씀을 중언부언 하시더니 한가지 질문을 하셨다. "혹시 O감독관 육아휴직 생각이 있니?" 임신하자마자 벌써부터 육아휴직을 걱정해주시나 싶어 "아직까지 얘기해본 적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니, 하나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웃으며 하셨다.
너, 육아휴직 쓰면 사형이야
과장님 제 직장, 고용노동부 아니었나요.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첫째아이때는 육아휴직은 생각조차 못했고 나는 보조양육자로서만 육아를 했다. 당시에는 내 나름대로 아내와 아이를 위해 충분히 잘하고 있다 생각했으나, 그것은 단지 보조양육자로서의 최선이었을뿐 주 양육자인 아내에 비하면 하찮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은 둘째를 낳고난 이후 였다.
전쟁같은 첫째 육아 중에 둘째가 생겼다. 와이프는 많이 지친 눈치였고 와이프의 경력이 계속해서 단절되는 것과 둘째의 육아까지 계속 전담시키는 것은 나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둘째는 무슨일이 있어도 육아휴직을 쓰겠다. 라는 결심이 들었다.
다행히 과장님이 바뀌어 휴직자체는 어렵지 않게 허락을 받아냈으나, 이제는 주변 선배들이 하나둘씩 쓸데없는 얘기를 얹어댄다.
와이프는 뭐하고? 니가 할 수 있을거 같애? 그런 짓을 왜해?나는 절대 안한다. 승진은 포기했구나?
놀랍게도 모두 노동부 재직 중인 선배들에게 실제 들은 말이다. 참부끄럽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1년간의 육아휴직은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1년간 두 아이의'보조'양육자에서 '주'양육자가 되었고 사소할줄 알았던 그 변화는 훨씬 고되고 힘들었다.
하지만 육아를 전담하다보니 비로소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우리 아가들이 얼마나 지독하게 말을 안듣는지, 내가 그동안 놓쳤던 아이의 시간들은 또 얼마나 아까운 시간이었는지,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말이다.
육아라는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만3세까지 아이의 뇌발달'이나 '산후우울증을 겪는 산모들'에게 아빠의 육아참여가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연구들을 보다보면 이것은 할수있는일이 아닌 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들게한다.
많은 아빠들이 양육의 주체가 되어보는 경험을 하기를 추천하지만 앞서 말한것처럼 아직도 남자들이 육아휴직을 쓰는건 사회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현직 노동부 직원인 나도 이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가야할 길이 아직도 참 멀다.
둘째가 완전한 아빠 껌딱지인걸 보면 유아기에 함께보내는 시간의 양이 아이들의 애착형성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한 듯 하다. 아이는 엄마만 좋아하는게 아니라 시간을 많이 보낸 부모를 사랑하는 것을 느꼈다.
육아휴직 기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아이와 아내 뿐만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도 내 인생에 가장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당시 남자가 육아휴직 쓴다고 한 마디씩 했던 꼰대님들이 생각난다. 비아냥 거려주셔서 좀 더 육아에 열정을 쏟을 동기부여가 되었으니 감사해야되나 싶기도 하다.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