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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ady Sep 23. 2024

우리는 창의적이면 안된다

근로감독관의 존재 이유

 대학교 4년동안 경영학을 전공하며 항상 '차별화, 나만의 아이덴티티, 독창성, 창의성'에 대한 가르침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까' 대학생활 내내 생각하고 고민했던 일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공부하며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아보는 등 나름의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노동부에 들어오고 근로감독관이 되어 제일 먼저 배운 것은 4년간 배운 이런 지식들을 '버리는 일'이었다.




 서먹한 첫 만남. 회의실에 앉아있는데 과장님이 들어오신다. 눈빛에 기가눌려 쭈글거리고 있는데 몇마디의 호구조사 이후에 곧바로 정신교육에 들어가신다.


"O 감독관, 여기서 일할때는 절대로 창의적이면 안된다."


 그것은 내가 지난 4년간 들었던 내용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조언이었다.


 "정해진 대로 하는거야. 법에 정해진대로 집행하는거고, 있는대로 그대로 하기만 하면 돼.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어떤 창의적인 활동이나 이런 건 안해도 되고, 해서도 안돼.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고 몇가지 이야기를 더한 뒤에 자리에 돌아왔다. 의자에 앉아있으니 지나온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다. 내가 지금까지 훈련한 것들은 오히려 여기서는 단점이 되는구나하고 생각하니 기분이 조금 좋지 않았다.


  내 기분의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것을 독창적으로 창조하는 행위는 아주 숭고한 상위의 개념이고 기존의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행위는 답습해서는 안 될 하위의 개념이라고 배웠던 기억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나 노동부에서 업무를 해오며 시간이 흐른 지금, 그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때의 생각은 매우 협소했고 과장님의 말씀은 틀린 말이 없었다.


 근로감독관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일을 독창적으로 수행해서는 필히 문제가 생긴다. 우리는 정해진 법률이나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마련된 해석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 재량의 영역은 미미하고 거의 대부분은 기속의 영역이다.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니다. 전국을 따져보더라도 차별적이고 독창적으로 일을 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해진 규칙과 지시에 따라 정해진 약속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사회와 국가는 약속 위에 세워졌다. 규칙과 약속을 지키는 일은 사회를 유지시키는데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독창적이고 창의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는 사람들도 필요하듯 정해진 약속과 규칙을 수행하며 사회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필요하다. 아무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우리의 사회는 붕괴되므로 정해진 일을 수행하는 모두가 숭고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직업의 특성상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아주 독창적으로 말이다. 임금을 지급하기로 해놓고 저마다의 사유로 지급 하지 않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그래서 우리가 생겼다. 우리는 서로가 약속을 지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감시하고 단속한다. 정해진 규칙과 원칙에 따라서 말이다.


 우리의 일은 독창적이고 반짝반짝 빛나는 일은 아니다. 과장님 말씀처럼 남다르고 특별한 창의성도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일과 정해진 원칙을 고수하는 딱딱한 일은 반짝반짝 빛나는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일만큼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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