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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ady Sep 27. 2024

사장님, 밀린 돈 입금이 언제 되겠습니까

임금체불

  쌀쌀해진 날씨에 반팔을 입겠다고 악쓰는 막내와 정신없이 씨름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계는 9시를 가르키고 있다. 평소보다 준비가 안된 모습에 마음이 급해지고 머리가 삐쭉 서지만 이놈의 아이들은 아빠를 도와줄 생각이 없나보다. 잉잉거리는 아이 둘을 얼른 양팔에 끼고 후다닥 1층에 내려와보니 이미 유치원 노란버스가 도착해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입이 삐쭉나온 아이들을 억지로 달래 버스로 우다다 달려갔다.


 " 아버님, 그런데 애들 가방은요?..."


 " 헉! 잠시만요! "


 아이들을 선생님께 맡기고 다시 후다닥 뛰어들어와 본능적으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쯤 되니 슬슬 숨이 넘어간다. 집에 도착해 삐비비빅 쏜살같이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신은채 거실바닥을 걸어가 빨간 가방 두개를 챙긴다. 다시 계단을 두세칸씩 펄쩍펄쩍 내려와 버스에 가방 두개를 전달했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아버님..^^"


 버스 안을 보니 짱구 두놈은 언제 울었냐 싶게 샐쭉샐쭉 웃으며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있다. 아빠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래도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은 좀 편해진다. 버스를 보내고 나니 자동으로 한숨이 나온다. 이제는 내 준비나 하자..




 "안녕하세요-"


 뒤늦은 출근이라 팀원들이 모두 바빠 보인다. 이미 조사를 나온 참고인들로 사무실이 북적북적하다. 내 자리에 짐을 풀고 보니 책상 위에 진정서 2건이 올려져있다. 2건 처리하니 또 2건이 들어오는 구나. 요즘 들어 사건이 많이 늘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진정서를 휘릭휘릭 넘겨본다. 삐뚤빼뚤하지만 정성들여 빼곡하게 쓰신 글씨. 60대로 나이가 좀 있으신 진정인이다.


 '흠, 재진정 사건이네'


 재진정이라하면 기존에 일처리가 말끔히 되지않아 다시 들어온 사건이다. 보통의 사건보다 꼬여있어 난이도가 높다. 기존에 종결되었던 사건 서류를 찾아왔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다시 진정을 넣으신걸까. 이전 감독관님이 조사하고 편철한 서류뭉치를 넘겨본다.


[사장님, 약속하신 기일이 지났는데 오늘도 아직 입금되지 않았네요.]


[사장님.. 밀린 돈 입금이 언제 되겠습니까..]


[사장님, 밀린 임금을 준다고 약속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전화도 안받고, 문자를 보내도 답도 없고, 저도 노동에 대한 권리행사로 노동청에 신고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저의 심정을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160만원의 임금이 체불된 진정인의 문자내역이다. 언제나 애가타는 것은 돈을 못받은 쪽이다. 피진정인은 말이 없다. 


 돈을 못받고 허공에 메아리만 치는 상황에도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 모습이 묘한 불편감을 준다. 돈을 안준 피진정인이 지급하겠다는 각서를 노동청에 보내 사건을 종결했음에도  다시 연락두절이 되었다고 한다.


 진정인의 문자를 보며 안쓰러운 마음이 들지만 매일같이 반복되는 사건 속에서 감정이입할 여유는 없다. 진정서를 덮고 탕비실로가 각성용 커피를 한잔 후루룩 마시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손때가 얼룩덜룩 묻은 전화기를 들고 거침없이 피진정인 번호로 전화를 건다.


 전화 수신음이 가는 동안 멘트를 정리한다. 마음같아서는 "형씨, 약속 왜안지켜요? 국가기관을 상대로 거짓말하신거에요? 예?" 라고 하고 싶었지만, 다행히 그럴 기회는 없었다. 당연하지만 연락을 안받기 때문. 오늘도 어김없이 전화기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는다.


 전산을 살펴보니 상습범이다. 이쯤 되니 대충 냄새가 난다. 킁킁. 체포영장의 냄새인가. 얼굴보기 참 힘들 분이다. 전화를 안 받는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린 뒤 출력하여 차곡차곡 문서들을 정리한다. 가득 쌓인 인형의 눈깔을 바느질하듯 무미건조하고 루틴화된 일상이다.


 별다를 것 없는 하루가 계속된다. 전화를 하고, 서류를 만들고, 전산처리를 한다. 쌓인업무들 덕분에 다행히 지루할 새는 없다. 벌써 시계는 오후 5시를 향해 있다.


 전화기를 들고 아까 사장님에게 문자를 보냈던 진정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예 - 여보세요 - "


 " 안녕하세요, 진정넣으신 사건 담당하게된 근로감독관입니다."


 피진정인이 상습범에 지급하지 않을시 민형사상 책임을 지겠다는 확인서까지 작성해 기소의견쪽으로 방향을 잡고있던 상황이다. 절차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드린 뒤 최종적인 질문을 드렸다.


 " 그래서, 상대방에 대한 형사처벌 의사는 있으신거죠? "


 생각치 않은 답변이 나온다.


 " 음... 아니요... 그냥 그쪽도 돈이 없다하고.. 혼자 어렵게 사는사람이니깐.."


 " 네? 형사처벌 원치 않으시는거에요? "


 " 예,, 그냥.  저는 노동부에 신고를 해야 돈을 받는 줄 알고.. 민사소송으로 받는거라면 그러지요 뭐.."


 " ... "


 금품체불의 경우에는 반의사 불벌로서 법 위반을 확인했더라도 신고인의 의사에 반해서 형사절차를 밟을 수는 없다. 자유의사의 부분이기 때문에 강요를 할 수도 없는 부분이다.


 " 제가 안내드렸던 부분 잘 생각해 보시고, 급하게 대답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다시 전화드릴테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


 "예, 그러세요.."


  전화를 끊었는데 유달리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고개를 드니 반대편에는 감독관에게 조사를 받는 할아버지 한명이 보인다. 모자를 푹 눌러쓴 꼬질한 할아버지가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뒷모습이었다. 나는 어쩐지 기운없는 그 모습을 계속 보고있었다.


 시간이 어느새 흘러 퇴근시간이다. 책상에 제 각각 방치된 서류들 처럼 널부러진 내 마음들도 제자리에 정리할 시간이다. 오늘도 다름없이 서류들을 서랍에 넣고 컴퓨터의 전원을 껐다.


 오늘은 어쩐지 여운이 좀 남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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