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휘게 이야기 - 홈카페 편
'올해 여름은 생각보다 시원하게 지나갈 건가 봐.'
했던 생각이 무색하게 7월의 여름은 너무나도 뜨겁다.
정말로 한 여름이 성큼 찾아왔다는 말이 딱 맞는 요즘.
시원한 사무실에서 근무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하게 되고
더위에 야외에서 일하시는 분들께는 존경을 표하게 되는, 정말 푹푹 찌는 더위가 계속되는 매일매일이다.
땀도 많이 나고, 갈증도 많이 나기 쉬운 여름.
햇빛을 많이 보면 당도 잘 떨어지고 할 수 있으니, 되도록 밖에서 시간을 보내더라도
얼른 집에 들어와서 잠시라고 더위를 피하며 쉴 수 있는 여유가 모두에게 있기를 바라면서
여름을 슬기롭게 지내기 위한 나름의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는데
오늘은 그중 첫 번째, 홈카페 편으로 찾아왔다.
시원한 우유, 신선한 과일과 크림 바게트 두쪽
계절이 시원하면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볼 생각에 몸도 마음도 들뜨지만
이렇게 더워지니 생각만큼 불 앞에서 요리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요리할 때 땀도 많이 나고 열기가 많이 느껴지는 건 모든 주방에 선 분들이 느끼고 계실 것 같다.
그래서 주말 아침은 한 끼는 밥, 한 끼는 또 빵식으로 대체하는 일이 잦아졌다.
냉장고는 판도라의 상자 같아서 '이런 것도 있을까?' 하는 것들이 뒤져보면 꼭 있다.
이날은 며칠 전 크림 바게트 먹다 남은 게 있어서 잔반을 처리할 겸 준비한 홈카페였는데
신선한 바나나랑 방울토마토 곁들이니까 그래도 '냉장고 정리해야지!' 했던 시커먼 마음과는 달리
알록달록 이쁜 홈카페가 완성되었다.
우리 부부의 취향을 담은 귀여운 잔에 시원한 우유 가득 부어주고
빵 한입 먹고 목 막힐 때 시원하게 마시는 우유의 고소함도 느껴보기.
불 피워 분주하게 한 요리들은 아니었지만
배불리 먹어 드는 만족감은 같았다.
궁합이 좋은 재료들을 한데 모아주면 그 어울림으로 훨씬 만족스러운 맛을 기대할 수 있다.
골드키위
여름은 너무 덥지만
대부분 여름을 반기는 사람들은 다양한 과일이 많이 나오는 계절이라 여름을 좋아한다.
남편도 과일이라면 사족을 못쓸 정도로 정말 과일을 좋아해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더운 여름을 나고 있다.
근처만 지나도 흔적조차 찾기 힘든 향이 사람의 발길을 붙잡는 복숭아부터
새콤달콤하고 빨간 자두, 입안에서 설탕이 녹듯 시원하고 달달한 수박까지
정말 맛있는 과일들이 많지만, 이날 우리의 선택은 골드키위로 향했다.
여름의 과일이 좋다고 해놓고 4계절 만나는 골드키위를 선택한 아이러니함이 있긴 하지만
여름은 모든 과일들이 싱그러워, 골드키위가 가장 맛있어지는 계절이라 우린 믿는다.
처음엔 딱딱해 보이는 골드키위를 사서 실온에서 며칠 후숙 시키는 기간 동안의 기다림은
생선 앞에 손발 묶인 채 놓인 고양이처럼 잔인하게 사람을 안달 나게 하지만
그 '안달남'은 며칠 뒤 결국 달고 부드러운 골드키위의 보답으로 돌아온다.
맛있는 것들을 먹기 위해선 때론 이렇게 고된 기다림이 필요하기도 하다.
시원한 과일을 먹을 때면
아찔한 에어컨 바람보다
이리저리 회전하며 몇 초에 한 번 우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는 선풍기 바람이 더 정겹다.
어릴 적 바람이 잘 드는 아파트 거실에서
할머니랑 부모님이랑 시원한 자연바람과 선풍기 바람이 뒤섞이던 그날 만들어 먹던
과일 화채의 추억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기버터로 만드는 방탄커피와 앙버터 호두과자
커피는 물과 같이 타 먹는 취향이라 깊고 넓은 커피의 세계는 잘 모르는 편이다.
향이 좋고, 가끔 기분과 기운을 나게 해 준다고 느끼는 커피.
최근에 기버터를 원두커피에 넣어서 거품 나도록 잘 저어서 먹는 저탄고지 방탄커피를 알게 되어
남편이랑 같이 이른 저녁에 한번 만들어봤다.
커피를 잘 몰라서 맛은 평가하기 어려웠지만, 향은 정말 일품이었던 방탄커피.
익숙한 것을 늘 찾기 마련이지만
가끔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면서 신선함에 발을 들여본다.
그리고 또 한 번 우리 집 판도라의 상자 냉동고를 열어보니
얼마 전 삼촌한테 선물 받은 호두과자를 고이 얼려둔 걸 발견했다.
커피에만 넣어 먹기 아까운 고급 버터는 호두과자에도 깨알같이 넣어
홈메이드 앙버터 호두과자를 만들어 곁들인다.
그냥 평범한 식탁 위이지만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한 방울만 첨가하면
인생 책갈피에 재미난 일상을 한 장 추가할 수 있다.
요거트볼과 오픈 토스트
그릭요거트를 사두고선
잠시 잊고 있던 하루였다.
그릭요거트의
유통기한에 빨간불이 이미 들어온 것 같아서 빠른 움직임이 필요했다.
단시간에 요거트를 대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요거트볼 만들기.
얼그레이그래놀라도 넣어주고,
골드키위랑 시아버님이 손수 따신 오디
그리고 메이플시럽 조금
남편은 요거트를 너무 좋아하지만
나는 요거트를 무지 즐기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큼지막하게 요거트볼을 만들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내가 이걸 다 먹을 리가 없어.' 하면서
미리 부족할 것 같은 내 배를 채우기 위한 오픈 토스트도 만들어 곁들였다.
크림치즈와 골드키위를 만나게 하고,
반숙 계란과 칠리소스를 만나게 하면
뜨거운 불 없이도 근사한 오픈토스트가 완성된다.
남편이랑 맛 별로 하나씩 사이좋게 나눠먹고 배 뚠뚠 두드리면
감성 유투브에서 바삐 영상이 지나가고 나서 영상의 말미에 다다르고 나서야
잔잔한 배경음악이 들려오던 것처럼
배부른 뒤 우리도 마음속의 BGM을 하나씩 깔아 두고 주말 아침의 평온함을 만끽한다.
사과와 브리치즈의 조합이 상콤한 치아바타 샌드위치
가끔 유래를 알 수 없는 요리에서 기가 막힌 맛이 날 때 드는 의문이 있다.
사과와 브리치즈의 조합도 그랬다.
'누가 먼저 이 두 재료의 조화로움을 알았을까?'
누가 알려줬는지 알 수 없는 조합이지만,
뭔지 모를 강한 신뢰에 이끌려 만들게 되는 맛 보장 샌드위치.
좋아하는 빵집 근처를
일부러 지나 치아바타를 수고스럽게 사 왔으나
'그래 이 맛을 보려고 잠시 더웠던 거지.' 생각하면서
이 날의 식사 대용으로 남편과 콩 한쪽도 나눠먹을 기세로
브리치즈 사과 치아바타 샌드위치를 만든다.
머스터드 소스. 양상추, 샌드위치 햄 그리고
브리치즈와 사과에 꿀을 조금 얹어주면 정말 맛있는 샌드위치가 완성된다.
입천장이 다 까지도록 뜨거워도 반드시 뜨거울 때 먹어줘야 맛있는 뚝배기 음식들처럼
한입에 넣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덩치가 큰 이 치아바타 샌드위치도
꼭 모든 재료가 한입에 다 씹히도록 와앙 하고 먹어줘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열심히 단속하며 오물거림에 집중하다 보면 여름은 잠시 잊을 수 있다.
고구마로 만드는 디저트들
어느 주말엔 고구마가 많이 남아있어서
고구마로 고구마 쿠키랑 고구마빵도 만들어서 엄마 아빠랑 같이 잘 나눠먹었다.
구황작물들은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 날 것 같지만
어느 형태로 만들어먹느냐에 따라 여름 간식이 되기도 한다.
뜨거운 불에 구워진 군고구마는 추운 겨울 호호 불어먹는 겨울 간식이지만
쿠키와 빵으로 변신한 고구마는 스파클링의 청량함과도 시원한 우유와도
너무 잘 어울리는 여름의 간식이 된다.
귤피차로 마무리하는 한 주
우리 부부가 주로 그렇듯
한 주의 마무리가 되는 일요일 저녁은
따뜻한 차 한잔으로 마무리한다.
'더운 날 왠 따뜻함?'
이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더위에 지치고, 일주일간 사람과의 마찰에 닳아 고되고 달뜬 마음을 정리하는 데는
따뜻한 차만 한 게 없다.
비타민c가 굉장히 풍부한 귤피차를 홀짝홀짝 마셔주면서
한 주간 고생한 서로를 보담아 주는 시간.
벌써 일 년의 반이 지난 시점이라
남편과 나도 상반기의 많았던 업무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하반기를 시작하느라 정신없지만
맡은 바 일이 있다는 것에 또 감사하며
푹푹 찌는 여름의 7월도
나름대로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잘 지내봐야지 다짐하게 하는 따뜻한 귤피차 한 잔.
덥다 덥다 짜증스럽게 외쳐봐도
도저히 더위라는 그 본질에 인간이라는 몸뚱이 하나로 맞서기는 너무 초라하다.
에어컨 바람이 더위를 무찌르는데 가장 강력하고 빠른 효과를 내지만
눈과 입을 즐겁게 하여 더위를 잊고, 지속 가능한 시원함을 즐기기 위해서는
덜 수고스럽고, 더 오래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소소한 홈카페를 열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의 휘게 이야기는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