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휘게이야기
경력 3년 차, 초보 새댁이 뭘 모르고 호기롭게 머위에 덤벼
장렬하게 전사했던 올봄의 머위 밥상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한동안 우리 밥상에서 끊이지 않고 화두에 올랐던 그 머위 트라우마 발생의 서막.
이 주제가 여섯 번째 휘게이야기를 장식하게 되었다.
시아버님이 계신 그분만의 공간
시락이라는 작은 어촌 마을에 있는 아버님의 비밀스러운 공간에서는
정말 많은 식재료들이 무한 생성되고 있다.
매월 신선한 달걀도 하사해주시고, 제철 나물들, 과일들까지
시아버님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정말 많은 신선한 식재료들을 선물로 받고 있다.
주부 경력이 조금씩 쌓이면서 예전에는 대체 어떻게 먹는 게 맞지 하던 재료들의 조리법에도 조금씩 익숙해져가고 있는 편인데 올봄에 잔뜩 받은 머위잎은 정말, 그간 받았던 것 중 가장 강력하게 뇌리에 남아 정말 재미난 우리의 신혼 일상 중 하루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머위는 일단 쓰다.
쓴 만큼 항암 작용이라든지, 건강에 무지 좋은 약용으로도 쓰이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쓰더라도 맛있게 잘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 나도 그날 뭘 모르는 사람 중 1인이 되었다.
머위는 잎사귀, 줄기, 꽃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재료로 유명하다.
그래서 머위의 털끝 하나 남기지 않고 다 활용해보기 위해 머위쌈밥, 머위계란말이, 머위꽃튀김까지 이렇게 준비를 해보려고 큰 맘을 먹었다.
머위의 맛과 조리법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라면, 한 밥상에 저 머위 요리들이 다 올라온다고? 하면서 경악할 식단표가 될 것이다.
지금의 나 조차도 이렇게 쭉 나열된 식단을 보니 벌써 아찔한 기분이 드는걸..?
우선 큼직큼직한 머위 잎이 많아서 엄마가 정성스레 만들어준 강된장을 넣어서 쌈밥을 만들어먹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서 우리의 큰 실수가 발생하고야 만다.
나의 머위 트라우마를 겪게 한 대망의 첫 실수.
머위는 쓴맛을 좀 날리고, 강한 독성을 제거하기 위해 끓는 물에 데쳐 사용하는 게 제일 좋다고 하는데
나는 감히 머위를 손질해본 적도 없으면서 도대체 왜 과감하게 찌는 방법을 택했을까.
나의 무지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졌던 그 용기의 가상함에 늦었지만 미래의 내가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이다.
무튼 머위 잎을 오래 쪄내어 독성은 충분히 날아갔겠지만 쓴맛은 남고, 흐물거림을 덤으로 얻었다.
머위 대는 나중에 들깨국 먹을 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남겨뒀는데
머위 트라우마로 당분간 머위를 마주하지 않을 예정이라 모두 잠시 냉장고에 깊은 숙면을 취하도록 내버려 뒀다는 후문을 함께 전한다.
무튼 처음 만난 식재료 머위를 가지고 직접 새로운 요리를 만드는 동안은 너무 행복했다.
마치 처음 모래사장에 가서 모래알이 손 틈으로 스르륵 빠져나가는 그 재미난 놀이에 심취한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손바닥만 한 머위를 조물딱 거리며 어떤 맛이 날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채 계속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넓게 펼친 (흐물거리는) 머위 잎 위에 밥도 자그마하게 올리고, 짭조름하게 맛있게 완성된 강된장을 올려서
동글동글 주먹밥 만들듯이 이쁘게 두려움이 없는 손끝에 과하게 정성을 쏟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두 번째 머위 요리
바로 머위 꽃 튀김이었다.
예전에 두릅을 잘 못 먹던 시절(여전히 아주 즐겨하진 않지만)
시댁에 놀러 가면 두릅 튀김을 종종 해주셨는데
가시도 느껴지지 않고 무지 바삭하고 고소했던 그 기억으로, 요즘도 봄엔 가끔 두릅 튀김을 해 먹곤 한다.
꺼려하던 음식으로 직접 요리를 해 먹을 정도라고 하면, 두릅튀김의 맛은 매우 호감형이라는 뜻.
그런 좋은 기억만 가득 안고, 머위 꽃에게도 접근했다.
머위 꽃 튀김과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보고자 요리에 도전하던 바로 그 순간들.
혹시 벌레가 있을지 모르니 머위 꽃은 깨끗하게 씻어주고, 튀기기 전에 물기는 충분히 빼준다.
튀김옷을 만들다 보니 양이 많아져서 예정에 없던 두릅도 조금 준비했다.
예정에 없던 일들이 때로 위안을 주기도 하는데, 이날 머위 트라우마 밥상에서 유일한 한줄기 빛이 되어주었던 찬이 바로 이 예정에 없던 두릅이었다.
늘 인생은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 혹은 인물을 통해 위안을 얻기도 한다.
기름에 퐁당 담그면 젤 좋았지만
튀길 양이 그렇게 많진 않기 때문에 기름은 자작하게 하고
꽃 모양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먼저 꽃 쪽이 기름을 향하게 해서 튀겨주면 되었다.
역시 이렇게 튀길 때도 기분이 좋았다.
두릅도 잔뜩!
빗소리 같은 튀김 소리를 들으면서 흥얼흥얼 했던 그날의 깜찍한 기억..
머위 꽃 튀김이 대체 무슨 맛인지 알턱이 없던 나는 이때까지도 너무 신이 났었지.
다시 떠올려도 정말 재미난 순간들이다..ㅎㅎ
노릇노릇 잘 튀겨진 튀김은 한편에서 기름을 좀 빼주고!
튀김 간장 만들어달라고 했는데
맛깔스러운 만두 간장(?)을 만들어준 남편의 도움으로 튀김도 이쁘게 상으로 올렸다.
머위를 활용한 마지막 메뉴는 바로 머위 계란말이였다.
아무리 가열할 거라지만
우리 부부.. 대체 왜 머위를 데쳐 쓰지 않았을까. 다시 생각해도 오싹한 순간.
무튼 머위를 호기롭게 깻잎 정도로 생각하고 씻어서 바로 잘게 썰어
계란말이 만들 준비를 했다. 버섯도 잔뜩 넣어주고!
한 겹, 두 겹 도톰하게 머위의 쓴맛이 쌓여가고 있는 과정
룰루랄라 신나게 만들고 이쁘게 모양도 잡으려고 이렇게 뜨거울 때 말아두었다.
완성하고 보니 매생이 넣은 계란말이 같기도 하고 비주얼이 먹음직스러워서
너무 기대를 했다지. 귀여운 그날의 우리..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머위로 차린 밥상
강된장이랑 부추전도 조금 곁들였다.
머위의 공포가 스멀스멀 번져올 것에 대한 불길한 예감이었을까
나는 강된장과 흰밥이 필요했다.
머위 쌈밥을 한입에 넣고
깜짝 놀란 작은 새가슴 쓸어내리며 고통스러운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더랬다.
머위로만 반찬 만들어서 먹었더니 머위 한 30~40장은 먹은 것 같다고 했더니 무식하게도 먹었다고 돌아오는 엄마의 답변.
머위는 너무 써서 많이 먹지도 않고, 또 데쳐서 먹어야 쓴맛도 가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해 먹었냐고
남편과 나의 밥상 사진을 보고 가족 모두가 정말 한참을 웃었다.
괜히 독성이 남아 있는 거 아니냐면서 우리는 한참 동안 목이 조여 오는 기분이 든다며 따뜻한 차를 우려내서 마시고 극강의 달달한 맛이 나는 쿠키로 다시 놀란 가슴을 달랬던 날이었다.
정말 열심히 봄내음 가득한 밥상을 만들기 위해서 남편과 룰루랄라 요리했는데
머위의 쓴맛을 제대로 알고 냉큼 머위로부터 멀찍이 물러난 하루였다.
시아버님 덕분에 암 예방은 제대로 한 것 같았던 봄날의 기억 저편 속의 어느 하루
진한 경험으로 깊게 배웠다.
머위는 데쳐먹자.
머위는 적당량만 먹자.
머위는 다른 반찬 많이 먹을 때 조금만 곁들여먹자.
우리는 그 누구보다도 강렬한 봄을 경험하고
갑자기 더워진 여름 같은 날씨에 이제 시원한 음식을 준비해보자 다짐했다.
이제 당분간 생머위는 안녕하고 남은 머위는 장아찌로 만나자는 소심한 나의 머위와의 작별인사.
그렇게 남편과 나의 봄날 코끝을 간질이는 살랑거리는 바람 속
강렬한 머위와의 추억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밥상에서는 이렇게 각양각색의 감정과 경험을 마주한다.
너무 맛있어서 극강의 행복을 느끼기도
불호하는 맛 앞에 주저하기도
약과 같은 맛에 인상을 찌푸리기도
새로운 맛에 눈을 번쩍 뜨게 하기도
편견을 갖던 식재료를 사랑하게 되기도
너무 좋아하던 식재료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나 사실 머위 좋아했네?
할 날이 언젠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인생에 늘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네의 입맛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