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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지 Aug 20. 2022

11. 우리 집엔 지리산 산신령이 산다.

구례 화엄사와 뱀사골 계곡의 이야기

구례 화엄사와 뱀사골 계곡의 이야기




간만의 합체 날이었다.

동생의 결혼식 이후 모든 가족이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보고 싶어 모이던 날.



이번에 만나면 어디 가볼까라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집엔 지리산 산신령이 살고 있어서

물어보나 마나 지리산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지리산에 다녀온 우리 집 산신령 엄마 아빠는 거친 세월의 풍파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를 굳건히 지켜주고 있는 지리산이 든든한지 자주 지리산의 안부를 살피러 방문한다. 그렇게 그 안부를 묻는 길에 우리도 동참했다. 


이번의 여정은 구례 화엄사와 뱀사골 계곡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늘 그렇듯 먹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손이 큰 엄마가 이것저것 끼니를 때울만한 음식들을 챙겨 올 거란 걸 알았지만 남편과 나도 간단하게 샌드위치와 딸기우유를 만들어서 챙겼다.


새벽 4시 뜬눈으로 일어나 대식구를 모두 태워서 이동할 수 있는 렌터카를 빌려 하루 저녁을 함께 한 동생네와 함께 엄마 아빠 집으로 향했다.


여름이라는 계절의 아침은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찾아와서 부지런히 움직인 우리의 아침이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았던가 하고 느끼게도 한다. 새벽 5시부터 이미 평소 9시의 햇살만큼 밝아져 있어 왠지 마음이 더 바빠진다.






우리만큼 부지런히 움직인 다른 가족들의 행복한 여정을 따라 구례 화엄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면 화엄사 가는 길이라고 숲이 우거진 계단이 보인다.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가족들을 뒤로하고 지리산 산신령은 저 멀리 벌써 계단을 타고 있다.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우리 집 지리산 산신령님





계단을 따라 2분 정도 걸으면 바로 화엄사로 올라가는 입구를 만날 수 있다.






비가 올까 걱정했지만 늘 날씨운이 따르는 편인 동생네 덕분에 적당히 흐린 날씨를 유지하면서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선선한 날씨를 즐길 수 있었다.





이날의 여행은 동생이 '시원한 계곡에 발 한 번 담가보고 싶네'라고 쏘아 올린 아주 작은 공이 만들어낸 결과물. 그래서 엄마는 계속 시원한 물길이 흐르는 쪽으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화엄사에서 돌아 나오면서 오늘 화엄사에 진입하면서 스치듯 봤던 계곡에 진짜 발도 담그고, 잠시 쉬며 과일도 먹었다.


정말 어릴 때 말고 계곡에서 이렇게 놀아본 적이 있었나! 최근의 우리?





화엄사로 올라가던 길목에는 불교 기념품을 파는 곳이 여러 곳 있었다. 원래 작은 절은 한 군데 정도 있었는데 화엄사는 워낙 규모가 있는 사찰이라 그런지 이런 기념품을 파는 곳도 계속 마주치게 되었다. 뜻밖에 우리 가족들 모두 불교신자인 것처럼 정말 오래간만에 불교 용품으로 짝도 맞췄다. 남자 동서끼리는 커플 팔찌, 모녀들은 커플 반지. 


아빠는 꿋꿋하게 없어서는 안 될 아빠 사랑 등 긁개.


이 정도면 등 긁개 콜렉터 아닌가요. 

아빠 다움.

다시 한번 언젠가 우리 아빠에 대한 고찰을 하는 글을 꼭 써야지 다짐했던 또 한 번의 순간이었다.





화엄사에 가까워질수록 어여쁜 배롱나무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구례 화엄사는 봄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어여쁜 홍매화와 여름엔 이쁜 능소화, 가을엔 멋진 단풍을 볼 수 있는 곳이라고 들었는데 늦여름이라 능소화는 놓쳤지만 흐드러진 배롱나무를 볼 수 있는 것도 축복이었다.



저마다의 발랄한 경건함을 담아내는 중.

마음만큼은 다 각자의 소원을 가득 빌기 위해 경건했을 거다!


대웅전을 보기 전에 우리는 구충암으로 먼저 향했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암자의 건물 기둥이 가공된 목재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목재를 사용한 형태라서 가옥 구조를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연의 신비함을 불러일으킨다. 정말 자연과 하나 된 것 같은 구충암의 건축물.


모과나무의 기둥을 그대로 건물에 활용한 것이라고 하는데, 자연이 우리의 쉴 곳을 어김없이 마련해 주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던 곳이었다.


구충암까지는 5분 이상 옆길로 빠져나와 걸어야 하기 때문인지 인적이 좀 드물었다. 덕분에 우리는 조용히 산책을 할 수 있었다.



묘하게 모든 표정들이 서로 다른 것 같은 불상 앞에서 매일이 평온하기를 기도하고 돌아 나와 이제 대웅전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알아보니 화엄사 경내에서 구충암을 지나 길상암으로 가기 전 길가에 피어있는 '백야매'가 진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라고 꼭 보라고 되어 있는데, 우리는 아마도 각황전 옆에서 눈길을 사로잡고 있던 홍매화만 스쳐지나 왔던 것 같다. 그 마저도 봄이 아닌 계절이니 매화나무의 잎을 보며 봄의 매화를 상상했을 따름이었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국보와

보물들도 마음과 눈에 새기고



단청과 잘 어우러지는 초록이 가득한 산새도 눈에 담으며

각황전도 잠시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멋진 경내를 이리저리 둘러보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인 우리가 잠시 쉴 수 있는 곳을 비로소 찾았다.


바로 화엄사 보제루.


법요식 때 승려나 불교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어진 강당인데, 화엄사를 들린 사람들에게는 시원한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창 밖으로 너머다 보이는 화엄사의 전경.

붉고 푸른 색상들이 화려하게 프레임을 채워주고 있었다.



우리가 보제루를 방문했을 때, 마침 쉬고 계시던 모든 여행객들이 나가고 있던 참이라 각자의 창을 하나씩 선택해 잠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을 쐬고, 각자의 시선에서 보이는 풍경을 즐겼다.


나는 그런 가족들을 몰래 담아내 봤다.


오빠와 남편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먼길 내려오느라 고생한 제부는 먼 곳을 응시하고 동생은 화엄사의 산새를 눈에 담고 엄마는... 우리의 산신령은 아마 다음 여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ㅎㅎ



원래는 뱀사골까지 넘어갈 계획은 없었지만 시원하게 쏟아져내리는 계곡물을 못 본 게 영 아쉬워 뱀사골 데크길을 걸어보기로 맘먹고 근처 달궁에서 먼저 밥을 먹기로 했다.


이전에 지리산에 방문했을 때 너무 강렬하게 맛집으로 기억에 남았던 식당을 다시 찾았는데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제때 음식을 먹지 못할 만큼 손님이 많았다. 지난번처럼 백숙과 도토리묵, 산채비빔밥은 그대로 주문하기도 했고 새롭게 흑돼지 묵은지 구이만 추가로 주문했다. 바빠서 주문을 추가로 받는 걸 두려워하시던 사장님의 표정에서 문득 예전의 어떤 기억이 떠올라, 가족들은 몰래 숨죽여 웃었다.


모든 음식이 하나도 빠짐없이 정갈하고 맛있어서 두 번째 방문임에도 여전히 만족스러웠다.


지리산에 가게 되면 또 이곳을 방문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먼 곳에 있는 맘속 단골집.



뱀사골로 넘어가는 길은 멀다. 달궁까지 넘어오는데만 한 시간 이십 분가량이 걸렸던 것 같다.

든든하게 배를 채운 뒤라 뱀사골 데크길 끝까지 걸어 올라가는 건 차로 달려왔던 긴 시간보다 고되지 않았고

적당히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에 참방참방 발을 담그니 그마저의 고됨도 다 사라져 버렸다.





수건 하나 등에 매고 온 터라 계곡 물에 온 몸을 맡길 용기는 나지 않아서 발만 담갔지만, 여름의 끝자락에 정말 맑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산에서의 만보는 아스팔트의 오천보 보다 피로감을 덜 느끼게 해 준다.


푸르고, 맑은 지리산 속에서 보낸 힘들면서도 달콤한 하루가 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치열하게 주중을 보낼 우리에게 자양강장제가 되어줄 수 있도록 이번에 우리 집 지리산 산신령 부부가 참 큰 힘을 써줬다.


앞으로도 긴 세월 답답하여 길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을 땐 지리산 자락을 떠올릴 것 같다.


고즈넉한 사찰들과 맛 좋은 음식들 시원한 계곡과 울긋불긋 예쁜 꽃나무와 단풍이 있는 곳.


구불구불한 산새만큼 역사 따라 사연도 추억도 많은 곳.


다음번의 지리산 나들이에서는 또 어떤 추억을 만들고 오려나 생각하면서 돌아오는 차에서는 모두가 꾸벅이가 되어 졸았던 것 같다.


마치 오늘 참 좋은 날이었어 끄덕끄덕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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