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
#003 끝맺음의 문턱에서
남편과의 오랜 갈등 끝에 마침내 합의가 이루어졌다. 내일이면 변호사를 함께 찾아가 조정 이혼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지난 몇 개월간 계속 이어졌던 싸움과 대립, 억울함과 피로가 이제는 끝이 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문득 긴 터널을 지나 출구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다. 터널 밖으로 나서는 것이 분명히 시원하기는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출구 너머 펼쳐진 텅 빈 풍경 같은 공허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조정 합의서에 적힌 내용을 여러 번 되새겼다. 전세금에서 1천만 원을 위자료로, 나머지를 양육비로 일시불로 지급받기로 한 부분부터 아이의 양육권과 친권을 내가 갖는 조건까지,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합리적이고 명확한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무언가가 덜컹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난다는 현실이 조금씩 다가왔다.
이혼이라는 단어가 내 삶에 자리 잡은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막상 끝을 내린다고 하니 묘한 감정들이 뒤섞였다. 마치 내가 혼자만 슬픈 것 같았다. 남편은 무표정한 얼굴로 합의 내용을 받아들이며 묵묵히 앉아 있었지만, 나는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슬픔이 밀려왔다. 합의서의 문구 하나하나가 마치 관계의 조각들을 정리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조각들이 모여 있던 자리엔 이제 빈 공간만 남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빈 공간을 채우는 것은 의외로 과거의 기억들이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순간, 어색했던 첫 대화, 서로에게 설렜던 시간들. 결혼식 날의 밝은 미소와, 함께 새집을 꾸미며 설렜던 그때의 마음. 시간이 흘러 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기쁨과 벅참까지. 모두가 머릿속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더 오래도록 붙잡고 싶었던 기억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이 기억들도 나에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합의서를 보며 손으로 눈물을 훔쳤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끝내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이런 결정을 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 모든 갈등의 순간에 더 좋은 길을 찾으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나 돌아보면, 우리 관계는 너무 많이 금이 가 있었고, 복원할 여지는 이미 사라졌던 것 같다.
남편이 "됐어, 내일 변호사랑 끝내면 돼"라고 담담히 말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그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응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다. 내가 정말 끝까지 최선을 다했을까? 남편도 그랬을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결국 지쳐버린 걸까?
하지만 이 감정에 계속 휘둘릴 수는 없었다. 나는 내일이면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지금 느끼는 이 복잡한 감정들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 나를 붙잡아두는 장애물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나의 삶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을 떼는 순간이 바로 내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