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
# 006 그의 빈자리
그는 이제 회사 근처 동네로 옮겨 새 집을 구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신혼집에 남아 있는 그의 흔적들을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에 잠겼다. 덜 챙겨간 짐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들, 그리고 한때 나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선물들. 책들은 여전히 한심해 보였지만, 선물들을 보며 나름대로 애를 썼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순간, 그를 향한 실망과 미안함이 뒤섞인 감정이 스쳐갔다.
아이와 나 둘이 살기엔 이 집이 너무 크다는 생각도 들었다. 34평이라는 공간이 이젠 비어 있는 듯 느껴졌다. 동시에, 모은 돈으로 더 좋은 집을 구하려고 아둥바둥하던 내 모습이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좋은 집을 원했던 게 아니다. 좋은 집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을 뿐이다. 안정적이고 따뜻한 집, 그리고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동네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졌다. 아이를 위해 더 좋은 동네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더 이상 아둥바둥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밀려왔다. 아둥바둥 살아서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이혼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편안한 곳에서 편안하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도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마음이 더욱 먹먹해졌다.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함께 꿈꾸며 준비했던 시간들. 함께 모은 돈들, 아파트 청약을 고민하던 모습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동네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고민했던 대화들. 그때 우리는 ‘함께’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움직였었다. 이제는 그 ‘함께’라는 단어가 더 이상 나와 그에게 어울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남편은, 아니, 전남편은 이제 자신이 살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가겠지. 그의 빈자리에서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어떤 환경을 만들어줄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에게 풍부한 경험을 주고 싶다는 생각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충돌한다. 나는 편안함을 원하지만, 그 편안함 속에서 다시 우울감에 갇히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기분이 울적했다. 그의 빈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무언가를 찾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