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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몽글솜사탕 Dec 19. 2024

나의 결혼과 이혼 이야기

#007 크리스마스 장식에 담긴 기억

오늘은 남편이 패밀리 앨범에 다시 초대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이혼 과정에서 감정이 상했던 나는 남편과 그의 가족을 패밀리 앨범에서 제외했었다. 남편은 애초에 패밀리 앨범에 자주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아기를 돌보는 육아휴직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와 별거를 하는 동안에도 그는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고 느꼈다.

그러나 오늘, 남편이 직장으로 복귀를 결심한 이후 갑자기 패밀리 앨범에 초대를 요청했다. 아이의 사진이 보고 싶었던 것일까? 한때는 내가 먼저 그를 초대해주겠다고 했던 기억이 났지만, 막상 다시 초대하려니 망설여졌다. 이제는 패밀리 앨범이라는 어플을 통해서도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었다. 대신 Instagram 계정을 통해 보라고 했지만, 남편은 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혼 소장을 제출한 이후로 할 말만 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마저도 대답 없이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신혼집에 들른 김에 우편함을 열어보니 조정 이혼 신청 접수가 되었다는 법원의 통지서가 있었다. 남편은 아직 주민등록이 이 집으로 되어 있으니 그에게 발송된 것이겠지. 이미 합의서를 제출했기에 형식적인 내용일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 서류를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질지 궁금했다. 그는 자기중심적이고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 이별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쩌면 조금이라도 이별의 감정을 느껴줬으면 했다. 시원섭섭함이라도 느꼈다면 나도 덜 허망했을지도 모른다.


팬트리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마음을 울렸다. 남편은 크리스마스를 유독 잘 챙겼다. 매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의 최선이 담긴 크리스마스 장식과 케이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참 따뜻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며 슬펐다. 이것만큼은 남편이 나를 위해 먼저 준비했던 기억이었다. 이 장식을 버리면서 나는 마치 남편뿐만 아니라 내 삶 속 따뜻한 가족의 순간들을 함께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정신과 의사의 말이 생각난다. “남편의 뇌는 질병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구조와는 조금 다릅니다.” 그 말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 우리 관계에서 내가 끊임없이 느꼈던 거리감을 설명해주는 듯했다. 남편은 나와 다르게 세상을 느끼고 해석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결혼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들, 예를 들어 공감이나 정서적 교류 같은 것들은 그가 채워줄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나는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친정 부모님도 칭찬보다 채찍에 익숙한 분들이었고, 나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자랐다. 반면, 남편의 부모님은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차이가 우리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게 된다. 작은 감사와 칭찬이 더 있었다면, 우리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아니면 그의 뇌 구조 자체가 달랐던 만큼, 결국 이렇게 끝날 운명이었을까?


오늘은 유독 마음이 허하다. 크리스마스의 주황빛 조명을 떠올리며, 나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이 질문에 답할 날이 언제쯤 올지 알 수 없지만, 오늘만큼은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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