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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환 Dec 18. 2024

성(Saint, St.)으로 들여다본 유럽

‘성스럽다(聖스럽다)’라는 말은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룩하다, 고결하다, 숭고하다’ 등이 유사한 뜻을 지닌 말이다. 성, Saint, 한자로 표기하면 모두 ‘聖’ 자를 쓴다. 이를 라틴어에서 비롯된 로마어, 스페인어, 영어에선 성인의 경우에만 saint로 쓰고 ‘St.’란 약어로 표기한다. 


여기에 사람을 붙이면 성인聖人 saint, 물건에 붙이면 성물聖物 halidom 또는 sacred things, 교회에 붙이면 성당聖堂 cathedral, 가톨릭 종교음악에 붙이면 성가聖歌 hymn라고 한다. 


聖자는 동양에서 ‘성인’이나 ‘임금’, ‘거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로, Saint와 다르지 않게 사용되었다. 상형문자인 한자의 聖자를 파자(破字)해보면 耳(귀 이) 자와 口(입 구) 자, 壬(천간 임) 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단어의 명확한 뜻을 나타내고 있다. 聖자의 갑골문을 보면 큰 귀를 가진 사람 옆에 口자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누군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로, ‘총명한 사람’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래서 聖자는 타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나 ‘총명한 사람’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지금은 ‘성인’이나 ‘거룩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선 성군(聖君)이나 성제(聖帝)라는 말을 쓴다. ‘聖’ 자를 왕이나 황제에게 붙인 말이다.  


Saint는 라틴어 "sanctus", "거룩한, 신성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이 단어는 "성스러운" 또는 "축복받은" 상태를 나타내며, 초기 기독교에서는 성인(聖人)이나 순교자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었다. 


라틴어 "sanctus"는 중세 프랑스어에서 "saint(e)"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e"는 여성형을 나타내며, 남성형은 "saint"로 사용하였다. 노르만 정복(1066년) 이후 영어에 도입되면서, "saint라는 단어가 영어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라틴어에서 "sanct-"*는 "신성하다"는 뜻의 어근으로, 여러 단어의 뿌리가 되는데, Sanctuary(성소, 피난처), Sanctify(신성하게 하다)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단어는 "sancire"라는 라틴어 동사에서 파생되었으며, "성스러운 것으로 지정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기독교에서는 "saint"가 성경적, 신앙적 맥락에서 "하느님에 의해 성스러운 존재로 간주되는 사람"을 뜻하며, 특히 성인으로 공경받는 인물(예: 성 프란치스코, 성녀 테레사)을 지칭한다.


요약하자면, "saint"는 라틴어 "sanctus"에서 유래하며, 성스러움과 신성함을 강조하는 단어로, 이후 프랑스어와 영어를 통해 현대적인 사용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라틴어 Sanctus에서 비롯된 Saint라는 개념은 기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 단어와 그 의미가 반드시 기독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어휘와 개념의 확장은 문화적, 종교적 맥락에서 다양하게 나타났다.


라틴어 Sanctus는 초기 라틴어에서 종교적 색채를 띠는 단어였다. 기독교 이전의 로마 문화에서도 Sanctus는 신들, 신성한 의식, 혹은 종교적 공간(예: 성소, 사원)과 관련된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신성한 장소(locus sanctus)나 종교적 관습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으며, 특정 신에게 바쳐진 제단이나 의식을 표현하기도 했다.


기독교는 Sanctus라는 단어를 인간에게 적용하면서, 이를 성인(聖人)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기독교적인 의미로 성인(Saint)은 ‘신앙과 덕행으로 신성한 인물로 공경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순교자나 거룩한 삶을 살았던 사람을 공식적으로 지정(canonization)하는 데 사용되었다.


비슷한 개념은 기독교 이외의 종교 및 철학적 전통에서도 발견된다. 고대 로마와 그리스에선 신들과 관련된 "거룩함"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특정 영웅이나 인물을 신성화(예: 헤라클레스, 카이사르의 신격화)하는 데도 이런 개념이 적용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종교에선 어땠을까? 

힌두교, 불교에선 성스러운 사람이나 신성한 상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성자, 부처, 리쉬 등의 단어가 사용되는데, 본질적으로 Sanctus와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인간의 성스러운 상태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기능적으로 다르지 않다. 힌두교의 사두나 리쉬 같은 성스러운 수행자, 불교의 아라한(Arhat), 보살(Bodhisattva) 같은 이상적인 인물을 뜻하는 단어들이다. 언어는 다르지만 같은 의미로 사용된 단어들이다. 이슬람교는 왈리(Wali)라는 개념이 있는데, 이는 알라와 특별히 가까운 관계를 가진 "성인"을 뜻한다. 이런 인물들은 영적 지도자나 신앙 공동체에서 존경받는 존재로 여겨진다. 


아무튼,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Saint의 의미는 종교적 맥락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사용으로도 확장되었다. 종교적 의미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폭넓게 사용되면서 은유적 표현이 나타났다. "성인처럼 선하고 자비로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영어에서"She is a saint for helping those in need."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인간은 자연과 초월적 세계(신, 신성한 힘)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있다고 믿었다. 스페인 톨레도의 톨레도의 산토 토메 성당(Iglesia de Santo Tome)에 엘 그레코(El Greco)의 걸작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 (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이라는 성화를 보면 당시 유럽 사람들의 이러한 세계관을 잘 알 수 있다. 이 경계는 "신성함(거룩함)"을 통해 표현되었고, 이를 구분하기 위해 특정 단어(예: sanctus, hagios)가 사용되었다. Sanctus와 같은 단어는 신성한 존재와 인간 사이의 경계를 표현하면서, 인간이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가져야 할 경외심과 겸손을 강조했다. 

 

El entierro del señor de Orgaz, más conocido como El entierro del conde de Orgaz, es un óleo sobre lienzo pintado en estilo manierista por El Greco entre los años 1586 y 1588. Fue realizado para la iglesia de Santo Tomé de Toledo, (España)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l_entierro_del_se%C3%B1or_de_Orgaz_-_El_Greco.jpg


단어 사용의 중심에는 종교적 공동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초기 기독교에서 Saint는 특정 인물이 신과 가까운 존재로 간주될 때 사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공동체는 해당 인물을 모범적 신앙의 상징으로 삼았다. 예를 들어, 순교자(martyr)나 덕행이 뛰어난 인물을 성인(聖人)으로 공경하며 신앙의 결속을 다지고, 이를 통해 종교적 정체성을 강화했다. 모든 기독교 성인의 이름 앞에는 St. 가 붙어있다. 


성인(Saint)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신성함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범과 도덕적 기준으로 기능했다. 예를 들어, 초기 기독교와 중세 유럽에서는 성인을 통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지침을 제시했다. 이는 단어의 사용이 신앙적 실천을 독려하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음을 보여준다.


자연과 초월적 세계(신, 신성한 힘) 사이에,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었던 초자연적인 일에 대하여 분명한 경계를 확정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 Saint는 사회적 권위를 정당화하는 데도 사용된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회가 세속 권력과 결합하면서, 성인의 개념이 권위와 통치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성인의 유해(relics)나 그들의 이름이 붙은 장소는 종교적 정당성을 강조하며, 교회의 권위를 공고히 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도구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유럽의 이름 있는 큰 성당엔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다. 성인의 유해가 성당 안에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Saint라는 단어가 당시에 사회적 권위를 정당화하는데 크게 기여한 예라 할 수 있다.


Saint에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언어와 문화의 융합이다. 인류가 기록의 필요성에 의해 문자를 발명하고 언어를 사용하면서 단어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의 상호작용에서 비롯되며 변화하고 융합,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라틴어 Sanctus는 고대 로마 종교에서 신성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으나, 기독교가 로마 제국 내에서 확산되면서 이를 흡수해 새로운 의미(성인, 성스러움)를 부여했다. 중세에는 라틴어와 지역 언어가 융합되며, Sanctus가 SaintSainteSan 등의 형태로 발전했고, 다른 문화권으로 전파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경외심을 느끼며, 이를 언어로 표현할 필요를 느꼈다. 의식, 의례, 신앙적 체계는 이 경외심을 체계화한 것이며, "성스러움"을 나타내는 단어는 이를 표현하는 핵심적인 도구가 되었다. 성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성스러운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단어가 더욱 위치를 공고히 하며 문화와 결합하고 한 사회의 언어로 정착하게 되었다.


또한, 기독교가 체계적으로 발전하면서, 신앙을 전파하고 가르치는 데, 당시로선 성인의 개념만큼 유용했던 것이 없다. 성경이 없던 시절, 그림으로 남긴 프레스코화를 보면 주로 구전되는 성경 이야기와 성인을 소재로 벽화를 그렸다. 요즘처럼 통신은 물론 문자도 변변히 없던 시대에 성인의 개념은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엄청난 파급효과를 지닌 도구였고, 당시 초대 기독교 사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성인들의 삶과 업적을 기록한 성인전(Hagiography)이 제작되었고, 그 이름을 "Saint"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널리 퍼졌다. 이는 종교의 교리를 보편화하고, 신앙의 핵심 가치를 전달하는 수단이었다.


결론적으로 "Saint"나 유사한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이유는 단순한 언어적 필요를 넘어, 인간의 신성함에 대한 경외심종교적 공동체의 강화윤리적 모범 제시사회적 권위 정당화 등의 다양한 요소가 결합된 결과이다. 이러한 단어들은 단순히 종교적 용어로써만이 아니라, 시대적 필요에 따라 인류의 신앙, 도덕, 권위 체계를 반영한 상징적 도구로 자리 잡았다고 봄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황제의 권력과 신성과의 충돌 또는, 권력암투는 Saint란 단어와 관련이 없을까? 필자의 짧은 소견이지만, 당연히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황제의 권력과 신앙의 권력 사이의 관계는 매우 깊었으며, "Saint"와 같은 단어와 개념의 사용은 이러한 권력 암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는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상호 의존하면서도 끊임없이 경쟁했고, 이러한 갈등과 협력의 맥락에서 "성인(Saint)"과 같은 개념이 전략적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황제는 종종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신성한 권위를 필요로 했다. 예를 들어, 로마 제국 후기에는 황제가 "신의 대리인"으로 간주되었고, 성스러운 존재로 여겨졌다. 이는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에도 여전히 성인의 개념과 결합되었고, 그 의미는 더욱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왕권신수설 같은 개념이다. 특히, 황제는 특정 성인의 유해(relics)나 성인의 이름이 붙은 교회를 후원하며, 자신의 통치가 신의 축복을 받은 것임을 강조했다. 이는 황제의 권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작용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사실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교황권과 황제권이 자주 충돌했다. 예를 들어,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와 교황은 서로 우위를 점하려는 경쟁 속에서 성인화 과정을 이용했다. 교황은 성인의 시성(canonization) 권한을 통해 종교적 권위를 주장하며, 황제의 영향력을 견제했다. 반대로, 황제는 교회의 성인화 절차에 간섭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를 성인으로 지정하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카노사의 굴욕(1077년) 사건은 이 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와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성직자 서임권을 둘러싸고 충돌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성인의 유해와 성소는 종종 정치적 협상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성인의 유해는 단순히 신앙의 상징이 아니라 정치적, 군사적 전략 자산으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특정 성인의 유해를 보유한 도시는 그 성인이 해당 도시를 보호한다고 믿어졌고, 이는 도시의 정체성과 권위를 강화했다. 도시들은 앞 다투어 도시의 수호성인을 세우는 일에 열을 올리기도 했고, 황제는 성인의 유해를 확보하거나 후원함으로써 종교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교황권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 예나 지금이나 믿을 곳이 없던 서민들의 숙명적인 선택은 아니었을까?


성인의 개념을 이용한 황제의 정치적 목적은 분명했다. 황제는 종종 성인의 개념을 통해 자신이 통치하는 지역의 통합을 도모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황제가 성스러운 이미지(icon)를 후원하며, 자신이 "신의 축복을 받은 통치자"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에서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성인을 포함한 신앙적 상징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그는 자신을 "십자가의 수호자"로 묘사하며, 군사적 승리와 종교적 정당성을 결합시켰다. 기독교를 공인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종교를 정치적 목적으로 아주 잘 활용한, 매우 분명한 경우라 할 수 있다. 


황제와 교회는 때로 상호 이익을 위해 협력하기도 했다. 황제는 교회의 지원을 통해 세속 권력을 강화했고, 교회는 황제의 후원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장했다. 성인의 시성은 종종 정치적 거래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으며, 특정 성인이 시성 될 경우, 그 성인이 소속된 지역의 통치자(황제나 귀족)는 이를 자신의 공적처럼 선전하기도 했다.


황제와 교황 간의 권력 다툼은 종종 성인의 신화화 과정으로 이어졌다. 성인의 전설이나 기적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장되거나 조작되기도 했다. 이는 종교적 신념을 강화하는 동시에, 특정 권력자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클로비스 1세와 프랑크 왕국의 예가 대표적인데, 프랑크 왕국의 클로비스 1세는 기독교로 개종한 후,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성인 숭배를 적극 활용했다. 그는 성 마르탱(St. Martin)과 같은 성인의 유산을 후원하며, 왕국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했다. 이를 통해 황권과 교권 간의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당시 황제와 신앙 권력 간의 관계는 단순한 협력과 경쟁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권력 다툼과 암투의 장이었다. 성인의 개념과 단어는 이러한 갈등에서 상징적 도구로 사용되었으며, 황제와 교황은 이를 통해 서로의 권위를 강화하거나 견제했다. 결국, 성인의 개념은 종교적 신앙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권력 구조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 사회에서 질서와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혼란스럽거나 위기 상황일수록 사람들은 더 큰 질서를 원했고, 종교는 이를 적극적으로 제공했다. 천국, 지옥, 구원 등 초월적 개념은 사람들이 윤리적 규범을 따르도록 독려했다. 뿐만 아니라 권력자들은 이러한 규범을 자신들의 통치 체제에 맞추어 활용했다. 질서와 통합의 도구로서 종교와 권력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다. 


종교는 왕, 황제, 귀족 등의 권력을 신성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신의 대리인" 또는 "신성한 왕권"이라는 개념은 통치자의 권력을 절대적으로 만들었다. 종교의식, 축제, 교회의 축복은 권력을 더욱 강화하는 역할을 하였다. 권력을 정당화하는 데 있어서 인간은 아직 이보다 유용한 수단을 찾아내지 못했다.  


당시 종교적으로 언급되었던 죄와 벌, 구원의 약속은 개인의 행동을 규제했다. 특히 성직자와 종교 지도자들은 사람들의 일상과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했으며, 민중을 통제하는 장치로 종교를 활용했다.


동로마 제국 시절, 532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니카 반란이 일어나 아야소피아가 전소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당시 폭도들은 왜 종교시설을 불태웠을까? 필자는 그 이유를 종교는 단순히 통치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을 통제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아야 소피아를 전소시킨 폭도들은 당시 황제 유스티아누스의 황권이 신성한 종교적 권위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사회의 구성원, 시민들이었다. 이들은 황제의 권위와 민중통제력을 잃게 하여 폭동의 목적을 이루려 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종교는 끊임없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었다. 물론, 종교 또한 정치를 도구로 삼아 확장하였음은 자명한 일이다. 성인 숭배, 성지 순례, 십자군 원정과 같은 종교적 행위는 모두 정치적 이익을 위해 조직되거나 권장되었고 실행에 옮겨졌다. 역사적 기록이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 유럽의 십자군은 단순한 종교적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영토 확장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정치적 수단이기도 하였다. 이 중심에 당시 사회의 경제적 주축이었던 베네치아가 있었고, 권력의 핵심인 왕권과 교황권이 있었다. 


종교는 본래 인간의 초월적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시작되었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러한 근원적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인간에게 위안과 의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자들에 의해 왜곡되고, 현실 정치와 맞물려 본래의 목적을 벗어나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의 영적 필요뿐만 아니라 현실적 이익을 충족시키는 데 중요한 도구로 변질되었다. 종교의 본질적 목적의 변질은 지금까지도 같은 목적 다른 모습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이면엔 민족적, 종교적인 갈등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종교는 권력의 도구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창조성과 연대성을 보이며, 또 다른 측면의 긍정적인 역할과 결과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공동체를 만들고, 인간들 사이의 연대감을 강화했다. 성당, 모스크, 절과 같은 장소는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했다. 기독교 사회나 이슬람 사회 모두, 모든 길은 성당이나 모스크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라 모스크나 성당 가까이 대규모의 시장이 형성되었다. 지금도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이러한 당시 사회의 모습들이 뚜렷이 남아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종교는 예술, 건축,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문화적 산물의 원천이 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세 유럽의 대성당, 이슬람 세계의 모스크 등은 모두 종교에서 영감을 받은 인간의 창조성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종교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제시하고,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 오늘날에도 종교는 여전히 정치적,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종교는 여전히 일부 국가에서 정치적 정당성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사회 통합의 수단으로,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도덕과 윤리의 기준을 제시하며, 매우 중요한 역할과 기능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종교가 과거처럼 절대적인 권위를 갖지 못하고, 개인의 자유와 합리적 사고에 도전받고 있다.


필자는 유럽을 여행하며 Saint란 단어에 늘 주목하였다. 유럽 사회에서 Saint가 지닌 의미는 어떤 것일까? 어떤 의미이기에 가는 곳마다 Saint란 언어를 만나게 되는 걸까? 유독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도 아니고 정치적인 이유는 더더욱 아니다. 언어의 이면에 숨어있는 이네들의 세계관이 궁금하였다. 이로 인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어떻게 유럽사회를 지배하고 변화시켰을까? 단순한 호기심이지만, 유럽 사회가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이 말에 댄 브라운(Dan Brown)이 2003년에 발표한 스릴러 소설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 같은 종교적인 상징과 미스터리 같은 것은 없을까? 


그렇게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Saint라는 단어를 통하여 살펴본 필자의 짧은 견해지만, 결국 인간은 스스로를 위해 종교를 만들었고, 이를 권력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사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유럽 사회에서 종교의 의미는 절대왕권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결국 종교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창조한 결과물이다. 종교는 인간의 영적, 심리적 안정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권력 구조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본래의 목적과 달리, 종교적이지 않고 성스럽지도 않은 지극히 세속적인 도구로 변질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여전히 인간 사회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아 있으며, 인간의 창조성, 연대성, 도덕적 가치를 탐구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를 단순히 부정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기보다는, 인간 본성과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사회과학적 접근의 중요한 도구로, 인류문화적 유산으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우매한 필자의 생각이다.

@thebc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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