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순간 앞에서,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무료한 삶이라 생각됐던 순간이 한 번에 녹아내리듯, 단 한순간에─남은 삶이 모두 결정되는 것처럼 느껴지는─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던 삶에 갑자기 환한 생명의 등불이 비치듯.
빛나는 곳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걸음을 멈추지 못한다. 불현듯 뒤로 생기는 긴 그림자가 시야에 비쳐도, 곧 고개를 다시 돌려 아득한 빛 너머의 세상을 그려보곤 한다. 그렇게 무수히 쌓인 시체를 밟고, 검은 피가 죽죽 쥐어짜듯 녹아내리는 다 굳어버린 핏줄 자국을 따라왔을 때, 그 무수히 많은 시체를 보고도 나는 손을 뻗는다. 나를 다를 테니까. 더 엄격하게 살아왔으니까. 나에겐 달라야 하니까. 앞길을 막은 살점자국을 헤쳐도 근원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어느 순간. 깜박깜박, 다 갈려나가 남은 뼈마디를 간신히 들어 올려 도달한 곳은 등불이 꺼지는 곳. 더 이상 앞길이 없는 곳. 더는 앞으로 갈 수 없는 곳.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그런 막다른 길. 벽 끝에 뻗은 손 아래로 차가운 전율이 흐른다. 고개가 시선을 넘는다. 붕-하고.
아.
짧은 단말마, 마지막 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