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열두 시를 가리키던 시계의 분침이 달칵 계단에 올라서면, 창 너머로 적당하게 부풀어 오른 따스한 햇살이 책상을 데운다. 가만히 손을 올리고 경계로 들어선 그림자가 사선으로 몸을 가르도록 허리를 세우면, 고요히 저물던 눈꺼풀 너머로 어두운 갯벌가 반대편 끝자락에서 입술을 오물거리던 수많은 지하 생명의 웃음소리가 섞여 든다. 비슷하다고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저 멀리 점심 메뉴를 고민하던 직장인들의 잔웃음이 흘러 어느새 가득 찬 바닷물이 발을 적시고 있는 걸 볼 때면, 옹기종기 모여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들을 투명하게 바라보게 된다.
녹색 등이 켜지고, 저편에서 무거운 등껍질에 허리를 굽힌 사내가 그들과 어깨가 스칠까 걸음을 조심하며 이편에 닿았는데, 곧 다시 시선을 돌려 걸음이 느린 지팡이가 저편 끝자락에 닿는 걸 한참을 지켜보다, 뒤늦게 걸음을 재촉하는 이에게 결국 어깨를 내주고 고개를 숙인다.
그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면, 그 사이를 먼저 빠져나온 남자의 손에 이끌려 겨우 그곳을 빠져나온 여자에게 시선을 옮긴다.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잡은 손 그대로 남자에게 팔짱을 낀다. 짧아진 남자의 보폭과 그에게 돌아간 고개에, 여자도 열심히 종종걸음을 옮기며 시선을 올리는데, 남자는 그게 귀여운 듯 곧 팔을 펼쳐 그의 어깨를 가볍게 감싸안는다. 바람이 조금 부는지, 그의 머리칼이 작게 흔들리다, 곧 머리 위로 내려앉은 단풍에 둘은 거리에 멈춰 한참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