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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Jun 26. 2023

Carino Burano, Ancora Venezia

2023 이탈리아 여행기 8 - 03252023

작고 예쁜 섬, 부라노

# 베네치아의 골목 탐험

이탈리아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음에도 아침이면 자연스레 에스프레소 한 잔을 찾게 되었다. 이 날은 토요일이라 평소와 달리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카페가 드문 날이었다. 어쨌든, 일찍 눈이 띄어진 나는 구글맵을 켜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셔보려 길을 나섰다. 그 덕분에 베네치아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제대로 걸어볼 수 있었다. 그렇게 이른 아침 베네치아의 골목탐험으로 이탈리아에서의 첫 토요일이 시작되었다.  

골목길을 걸어가며 찍어 본 영상.

# 베네치아의 주요 운송수단 Vaporetto를 타고 부라노섬으로

베네치아가 섬을 연결해서 만들아진 도시인만큼 주변에도 많은 섬들이 있다. 그중에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 Burano, Murano 섬이다. 이 두 곳은 베네치아의 수상버스 바포레토를 타고 방문이 가능하고, 서로 근접해 있어서 한 번에 다녀오기도 하는 곳인데, 우린 부라노섬만 들러 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준비를 마친 후 부라노행 바포레토 선착장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는데 토요일 아침이라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웠는데 운 좋게 문을 열었던 한 카페를 발견하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커피와 음식을 만드는 가게로 들어가 보니 일종의 북카페 같은 곳으로 서가에 동화책으로 보이는 책들이 꽂혀있고 판매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한국에서 애정을 갖고 있는 동네책방 같은 곳을 이국땅에서 만나게 되니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처럼 아침식사 장소를 찾지 못한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만석이 되었고, 여기서 함께 식사를 했던 이들 거의 대부분을 바포레토 선착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크루아상과 카푸치노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타바케리아(Tabaccheria)에서 구입한 바포레토 탑승권을 들고 선착장으로 향했다. 타바케리아는 담배가게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이탈리아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일종의 구멍가게 같은 곳이다. 담배, 대중교통 승차권, 음료, 간단한 스낵, 신문, 잡지, 복권 등을 구입할 수 있는 한국으로 치면 동네 편의점과 유사한 가게라 할 수 있는데, 여행 중에 이곳이 필요한 경우들이 많으니 어딜 가든 가까운 타바케리아의 위치를 알아놓는 것은 매우 유용한 팁.


미리 알아놓은 출발시간보다 30여분 전에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부라노행 승선장 앞엔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역시 유명한 곳에 가보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디든 똑같은 법. 과연 이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탑승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스러웠으나, 부라노행 바포레토의 크기는 상당했고 기다리던 이들 대부분 무리 없이 탑승 가능했다. 그렇게 40여분을 달려 부라노섬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던 Sullaluna libreria bistrot의 내부. 진열되어 있는 동화책들과 창밖으로 보이는 야외 테이블의 풍경.

# 컬러풀 부라노

부라노섬이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진 건 가수 아이유가 2012년에 발표한 '하루 끝'의 뮤직비디오와 배틀트립 덕분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아이유와 부라노를 검색창에 쳐보면 아예 아이유섬으로 소개하는 글이 있을 정도. 우리도 아이유의 뮤직비디오를 미리 보면서 기대감을 높였었는데, 부라노섬 선착장에 내리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색색깔의 건물들을 보며 바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형적인 어촌마을인 이 섬의 집들이 알록달록한 색깔을 갖게 된 데에는 조업을 마친 어부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기 위해서였다는 혹은 어선을 알록달록하게 칠하던 풍습에서 비롯되었다는 등의 유래가 전해져 온다. 지금은 지자체와 협의하여 자신의 집 색깔을 결정하고 칠하게 된다고 한다.  


천천히 산책하듯 섬을 둘러보았다. 색색의 벽이 있는 가옥들이 있고 작은 배들이 오갈 수 있는 좁은 수로들이 마치 골목길처럼 이어져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알록달록한 색깔의 벽과 마을의 전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우리 또한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을 남겼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벽을 가진 가옥들 사이 작은 운하? 수로옆 인도로 방문객들이 걸어간다.

  

2~3층 정도 되는 높이의 건물들이 서로 다른 색깔과 비슷하지만 다른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모두가 현재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가옥들.

#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명소를 만든다

이 섬에는 작은 피사의 사탑이라 불리는 산 마르티노 성당의 기울어진 종탑이 있다. 부라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성당 앞 갈루피 광장에는 레스토랑과 각종 상점들이 문을 열고 있었는데, 작은 골목 사이 그려져 있는 몇 개의 벽화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각 벽화마다 부라노섬에 대한 스토리들이 담겨 있었다.(나중에 찾아보니 이 벽화가 그려진 건물이 Casa di Gianfranco Rosso라고 구글맵에 표시가 되어 있었다.) 한 벽화에는 'Le Maree Piu Alte Della Storia Di BURANO'-'부라노의 역사상 가장 높은 조수'의 높이, 즉 홍수의 역사를 기록해 놓았고, 또 다른 벽화엔 산마르코 성당 종탑의 높이와 기울기의 수치와 함께 종탑을 묘사해 놓았다. 이 외에도 부라노섬의 풍경을 인상파적인 화풍으로 그려놓기도 하고, 2020년 10월 3일 베네치아의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습격을 막기 위해 진행한 모세의 장벽 프로젝트의 성공을 기념하는 그림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부라노섬을 명소로 만든 것들은 대부분 지역 주민들의 삶과 맞닿아 있다. 자신들의 집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칠한 가옥의 벽색깔로부터 유래된 섬 전체의 알록달록한 색감이나, 섬마을이라는 특성으로 비롯된 바다로부터 연결된 수로, 지역의 스토리를 소재로 한 벽화 등이 모두 부라노 주민들의 생활과 지역의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 어떤 도시나 지역이든 그냥 방문해도 아름답고 예쁜 풍경을 즐길 수 있지만, 경관과 명소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감흥이 더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도시란 공간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진 문명과 문화의 집약체라 할 수 있고, 그 안에는 도시를 이루며 살았던 수많은 이들의 삶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관광 명소라는 건 인위적으로 조성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이런 배경과 맥락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음을 다시 상기하게 만들어 준 부라노섬이었다.  

Casa di Gianfranco Rosso의 벽화들. 다 부라노섬의 역사와 특성을 소재로 하고 있다.
벽체의 색채감을 제외하면 한적한 어촌 마을 그 자체였던 부라노섬. 그리고, 기울어진 종탑이 있는 산마르코 성당.

# 다시 한번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으로

한적하고 예쁜 부라노섬을 뒤로하고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해외에서 한식을 대체할 수 있는 유용한 메뉴가 중식이다. 그리고 중국식당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베네치아에서도 마찬가지. 특히, 뭔가 국물이 있는 음식이 당길 때에는 중국식당이다. 볶음밥과 우육탕면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전날 저녁에 들렀던 산 마르코 광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토요일 오후의 산 마르코 광장은 전날 밤과 달리 수많은 인파로 가득 채워져 있었고, 화창한 날씨와 햇볕을 받으며 각자 아름다운 베네치아에서의 주말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와인이나 커피, 아페롤 같은 음료에 디저트를 곁들인 채 대화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 광장 이쪽저쪽을 천천히 걸으며 온전히 즐기고 있는 사람들 등 서울에서의 일상이었으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다양한 사람들의 표정과 모습들이 내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특히, 베네치아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인 Cafe Florian의 야외 테이블 앞 간이 무대에서 라이브로 연주되던 음악 소리는 여유로운 주말 오후를 즐기는 데 더할 나위 없었다. 여러 가지 감각으로 공간을 느끼는 이런 순간들마다 난 새삼스레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왔음을 느끼게 된다.


여유로운 광장의 오후를 즐기고 난 후 우린 산 마르코 성당의 종탑을 오르기로 했다. 9세기 초반에 처음으로 세워진 이후 16세기 들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으로 건축된 종탑이 1902년 완전히 붕괴되고, 이후 9년간의 복구공사를 거쳐 지금의 종탑이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 종탑 내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고, 다른 도시의 비슷한 탑과는 달리 수월하게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비교적 수월하게 오른 종탑의 꼭대기에서 아름다운 베네치아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었다. 일반 건물 30층 정도에 해당하는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도시와 바다의 전망은 아름다운 경관에 대한 감흥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넘어 새롭게 발견할 타국과 여행지에 대한 기대감을 동시에 가져다주곤 한다. 종탑 위에서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한 후 숙소로 돌아와 베네치아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다음 날을 기약했다.   

아래에서 바라본 산마르코 성당 종탑. 98m라는 탑의 높이가 그대로 느껴진다.
산마르코 종탑 위에서 바라본 베네치아의 풍경.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의 지붕들 사이 뚫려 있을 골목길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P.S. Vaporetto 이야기

베네치아의 해상 운송수단인 수상버스인 바포레토와 운하를 다니는 다른 선박들을 보며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다. 베네치아에선 차량이 다닐 수 없기에 구급차가 없고 구급선이 있고, 택시도 수상택시가 있다. 사실, 이 운하를 다 복개해서 도로를 만드는 것이 살기에 훨씬 편하지 않은가? 란 생각을 하면서 왜 이들은 이런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것인가? 란 의문으로 이어졌다.


베네치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이 도시의 생성 자체가 남다른 것을 알 수 있는데, 5세기 전반에 외세의 침략을 피해 도피해 온 이들이 통나무말뚝을 박고 그 위에 지반을 다져 건물을 세워 만들어졌다는 놀라운 기원과 14세기 이후 유럽과 동방을 이을 수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해상무역으로 강력한 도시국가의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는 역사도 유명한 사실이다. 또한, 베네치아 본섬의 수많은 소규모 운하 내지 물길들은 인위적으로 건설한 것이 아니라 본래 작은 섬과 섬 사이에 존재하던 자연 그대로의 물길이라는 것도 놀라운 사실.


도시의 기원이 1600여 년 전이고 그 전성기가 500여 년 전이었다는 건 이들의 생활양식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완성이 되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 할 수 있다. 즉, 이들은 본인들이 살아가는 양식을 굳이 바꿔야 할 이유가 없고, 시간이 흐르면서 오로지 수상으로 이동하는 도시의 특성이 오히려 이들에겐 실보다 득이 되는 측면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해, 비교 대상이 없던 시절을 지나 비교가 굳이 필요 없는 시대로 넘어오면서 이들의 수상 교통수단을 제외하고 베네치아를 상상할 수 없는 지금이 된 것이다.


만약, 현대에 계획하고 건설하는 도시라면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바포레토로 대표되는 이들의 수상 교통수단도 이 도시의 역사와 문화로부터 비롯된 도시의 명물인 것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동안 만난 거의 모든 유명한 공간과 유물, 유적들이 다 이러했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의 맥락 없이 일방적인 결정 하에 인위적으로 구조물을 만들고 건축물을 짓는다고 해서 다 랜드마크가 될 수 없다.


이와 함께, 도시의 경관성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의견 교환이 활발히 이루어질 수 있어야만 소위 명소화 전략을 만들고 펼쳐갈 수 있다. 특히, 이젠 환경 문제에 대한 고려(친환경 에너지 등), 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유니버설 디자인) 등 도시의 건축물을 짓고 경관성을 만들어가는 데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더 많아지고 있기에 사회적 토론과 합의는 매우 중요하다. 도시의 구성원들이 도시의 미래를 결정하고 만드는 데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자 이룩해야 할 목표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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