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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Feb 21. 2024

Felice Toscana 3.

2023 이탈리아 여행기 16-03312023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보유국이다.

# 서양인들이 은퇴 후 살아가고 싶은 지역, 토스카나 

미국인을 포함한 서양인들에게 은퇴 후 토스카나의 빌라에서 여생을 보내는 건 누구에게나 로망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미와 자연미가 어우러진 경관과, 풍요로운 식음료들, 여유롭고 한적한 생활환경 등이 평안과 안식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이탈리아 여행 중 내게 Top3 안에 꼽히는 곳이 토스카나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토스카나는 강렬한 인상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넓디넓은 초원으로 가득 채워진 구릉과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들, 그리고 그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소도시들의 풍경을 담은 뷰(View)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세상 모든 근심이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감히 말하건대 '이탈리아는 토스카나 보유국이다.'라고 선언하고 싶다.(물론, 다른 지역도 어디 하나 빼놓을 곳이 없지만)  


# 지구상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상해반점 

지금은 전 세계에 한식 열풍이 불고 있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서구 지역에서 한식당 찾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당시 양식에 지친 입맛을 달래기 위해 찾아가던 곳이 중국음식점이었는데, 중식당은 어디서나 찾을 수 있고 그나마 우리에게 익숙한 맛과 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북경반점', '상해반점' 같은 상호들을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인데 심지어 토스카나의 시에나에서도 상해반점(Ristorante Shanghai https://maps.app.goo.gl/L7zZwUTz95DgA3zi6)을 만날 수 있었다. 산 지미냐노를 둘러본 후 시에나로 들어와 주차를 하고 점심을 해결하려 찾은 이 식당에서 우육탕면, 마파두부, 볶음밥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했고, 마파두부의 뜨끈한 고추기름 맛을 느끼며 오래간만에 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약간 특이한 건 이탈리아에서 맛본 우육탕면엔 모두 양배추 혹은 배추가 들어간다는 것이었는데, 이 또한 지역 식재료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괜찮은 점심식사였다. 

볶음밥, 우육탕면, 마파두부.

# 번성하지 못해 보존된 역사의 아이러니 

점심 식사를 마치고 토스카나의 또 다른 명소 시에나(Sienna)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시에나는 우리가 이미 방문했던 피엔차, 산 지미냐노와 마찬가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는 소도시이다. 이웃한 피렌체와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였던 라이벌 도시였지만, 1555년 이탈리아 전쟁에서 패하면서 공화국의 역사가 끝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후 경쟁에서 밀려 쇠락한 덕분에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도시라 할 수 있다. 이곳 또한 다른 도시처럼 언덕 위에 성벽을 쌓고 건설한 요새형의 도시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광장 중 하나인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을 중심으로 주요 건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캄포 광장은 조개를 닮은 셸 형태와 완만한 경사가 특징으로 광장 전체를 8개의 경계선을 만들어 9개 부분으로 나누어 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광장의 9개 구획은 13~14세기 이 도시를 통치하던 9인 위원회를 상징하며 이는 이들의 공화주의에 대한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일반적인 광장과 다른 조개 모양은 서로 다른 개성을 갖고 있지만 결국 한 곳으로 수렴하는 통합에 대한 추구를 의미하며, 경사면 또한 시선이 자연스럽게 팔라조와 탑으로 이끌리는 효과와 자연 원형 극장을 만들어주거나 중앙 배수로 역할을 하는 등 다양한 기능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효과와 기능을 가진 광장 설계를 600여 년 전에 일궈냈다는 것 또한 엄청나다. 광장의 개방성과 기능성, 그리고 미관까지 모두 성취한 이곳이야말로 지금 명소를 만들지 못해 안달이 난 한국의 여러 도시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표본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이 광장을 찾아갔을 땐 이미 많은 방문객들이 자리 잡고 광장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일종의 수학여행을 온 것 같은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여행 기간 동안 단체로 여행온 학생 그룹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이토록 대단한 명소들을 어릴 때부터 두루두루 다닐 수 있는 이들의 환경에 대해 부러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정작 그들은 지겨워할 수도 있겠지만 ㅎㅎㅎㅎ) 경관과 역사적 배경, 기능성 모두에 대해 감탄을 금할 수 없는 캄포 광장과 그 곁의 푸블리코 궁전(Palazzo Publico)과 만지아 탑(Torre del Mangia)을 둘러본 후, 노천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함께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시에나 외곽의 주차장에서 시내로 들어오던 언덕길에서 찍어본 전경. 오랜 세월이 묻어나지만 결코 낡아 보이지 않는다. 인위적으로 조성할 수 없기에 더욱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시간이 중세에 멈춘듯한 골목길과 광장 진입구에서 보이던 푸블리코 궁전과 만지오 탑.
캄포광장과 광장을 즐기는 사람들.
시에나의 중심 푸블리코 궁전과 만지아 탑. 궁전 맨 윗층 벽면에 토스카나의 문장이 보인다.
푸블리코 궁전 내부의 회랑과 그 회랑을 밝히는 조명. 수백년을 견뎌온 구조물이 가진 시간의 무게에 어울리는 조명. 감탄이 나올 수 밖에. 

# 또 다른 토스카나의 상징, 사이프러스 나무와 끝없이 펼쳐진 초원

구글맵으로 토스카나 지역을 살펴보면 멋진 전경을 만날 수 있는 뷰 포인트(View Point)가 군데군데 표시되어 있다. 그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 영화 글래디에이터에 나온 '막시무스의 집'인데, 특히 한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고 사진도 찍어 올리는 곳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영화 촬영지가 아니라고 하는데, 우리도 막시무스의 집이라 알려진 곳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사실 이곳 외에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절경의 핵심은 남유럽을 상징하는 높이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와 초원으로 뒤덮인 구릉이다. 토스카나의 지형 자체가 낮은 구릉으로 채워져 있고 이러한 지역 환경은 농업과 목축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푸른 초원으로 이어진 지평선에 더해 군데군데 길쭉하게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토스카나 특유의 초원 풍경을 만들어냈고 토스카나를 여행하는 이들 모두에게 지워지지 않을 인상을 가져다준다.

 

특히, 이러한 드넓은 초원과 길쭉하게 솟아 오른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한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경관이기에 더더욱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을 통해 얻게 되는 매력과 인상은 낯섦과 다름이다. 결국 관광과 여행의 핵심이 차별성과 비일상성이란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한국에서 여기저기 남발하는 랜드마크와 비슷비슷한 축제 같은 건 줄어들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평화로운 토스카나의 풍경이 영원하길 바라 본다. 

도로 양쪽에 마치 수호신처럼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들. 특별히 더 인상적인 풍경이다. 막시무스의 집도 이러한 진입로의 풍경으로 유명하다.
평화롭다. 토스카나.
숙소 창밖으로 보이던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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