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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six Feb 07. 2024

Felice Toscana 2.

2023 이탈리아 여행기 15-0330-03312023

살아 있어 아름다운 오래된 도시 

#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유명한 것인가 

여행 전 나의 이탈리아에 대한 이미지는 주로 '오래된 것들이 많은 나라'같은 것들이었다. 이전에 다녀 본 유럽의 다른 나라와 도시에도 유명한 유적, 유물들이 많이 있지만 이탈리아는 로마 문명의 발상지라는 강력한 이미지 덕분에 더욱더 오래된 것들이 많은 나라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 같다.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을 다니면서 도시의 보존 상태와 아름다운 경관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이 소도시들이 단지 관광객들의 볼거리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지역에 발을 붙이고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있기에 이 도시들의 아름다움이 계속 유지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오래되어서 유명한 것이 아닌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어서 아름다운 토스카나의 소도시들을 둘러보며 사람들의 삶으로 생명력을 얻는 도시의 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 르네상스 인본주의로 만들어진 첫 도시 피엔차(Pienza)

신 중심의 사고와 가치관이 지배했던 중세시대를 지나 르네상스 시기로 들어서면서 인간 중심으로 방향이 전환된 건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이고, 이 시대를 통해 사회, 문화, 예술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르네상스가 가장 번성했던 국가가 이탈리아였고 도시는 피렌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부르넬레스키가 설계한 피렌체 두오모가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정립한 출발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아 도시 설계에 르네상스 인본주의 개념을 도입한 사례가 피엔차였다. 15세기 교황 비오 2세가 자신의 고향을 재건하는 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초빙한 로셀리노라는 건축가가 설계를 맡아 건설한 도시가 지금의 피엔차인 것이다.  

인본주의 개념의 도시 설계는 중세시대 성당 중심의 건축이 아닌 인간을 위한 궁전, 광장 등이 중심이 되는 건축과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주요 건물들을 배치하는, 우리가 흔히 만날 수 있는 유럽의 도시 구조의 근본이라 할 수 있다. 피엔차의 경우 비오 2세 광장을 중심으로 피엔차 대성당, 피콜로미니 궁, 주교관, 시청 등을 배치하고 병원과 호텔 등의 사회적 기능을 지닌 건물 또한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 넓지 않은 규모의 도시를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곳곳에 자리 잡은 절경들과 세월이 묻어나지만 결코 낡았다고 할 수 없는, Oldies but Goodies라는 표현에 맞아떨어지는 도시의 외관들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하나하나 찬찬히 돌아보며 도시를 즐겼다.  

비오 2세 광장을 비롯하여 피엔차 대성당과 성곽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여기서만 만날 수 있는 멋진 골목길의 경관까지 어느 하나 빠트릴 것이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14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가 아직 남아 있는 산 프란체스코 성당(Chiesa San Francesco)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오 2세 광장을 지나 조금만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이 성당은 13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규모가 그리 크진 않지만 8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외관과 내부를 지니고 있으며, 앞서도 말했듯이 예수의 생애 장면 등을 묘사한 프레스코화를 만날 수 있는 그 자체로 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성당이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프레스코화를 보며 700년 넘게 한 자리에 남아 있는 예술품의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에 비하면 인생은 얼마나 짧은지. 시간의 힘은 언제나 우리 인간들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것이 이 오래된 도시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아닐까. 

피엔차 성곽에서 보이던 풍경. 오래된 건축물과 초원의 풍경이 멋지게 어우러진다. 
피엔차 성벽 위에서 만난 토스카나 초원의 풍경. 
피엔차 대성당의 외관과 비오 2세 광장.
피엔차 대성당의 내부 모습.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내부 모습. 
산 프란체스코 성당에 보존되어 있는 프레스코 벽화. 700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벽화를 보며 경외심이 느껴졌다.
푸른 초원에 둘러싸여 더욱 환상적인 피엔차. 

# 아름다운 탑의 도시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 

피엔차를 돌아본 다음날인 3월 31일, 우리는 또 다른 토스카나의 소도시 산 지미냐노로 향했다. 산 지미냐노는 '아름다운 탑의 도시'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이는 중세 시대 당시 이 도시의 유력한 귀족 가문들이 권력의 상징으로 높은 건물을 경쟁적으로 지으면서 고층 탑들이 세워졌기 때문이다. 한 때 72개에 이르렀던 탑들은 현재 14개만 남아 있으나, 탑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이 고층 탑들은 여전히 산 지미냐노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또한, 이 도시는 14, 15세기 이탈리아 예술 걸작들이 잘 보존되어 있고 중세 도시 문명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도시 구조와 구조물들을 만날 수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광장을 기준으로 두오모와 시청 등 주요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는 이 도시는 중앙의 아름다운 우물로 유명한 치스테르나 광장(Piazza della Cisterna)과 두오모 광장(Piazz del Duomo) 등 두 광장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고 하며, 도시의 상징인 탑들 또한 이 두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특히 도시 외곽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중앙의 광장으로 향하는 언덕길과 이 길에 이어진 골목들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사실 이탈리아의 오래된 소도시들 대부분이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그저 보존만 잘해놓은 게 아니라 여전히 도시 기능을 유지하고, 주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역할을 하고 있기에 이 도시의 매력이 배가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시 중심부로 향하는 산 지미냐노의 가로 모습. 길의 끝에 이 도시의 상징인 높은 탑이 보인다.  
중앙에 아름다운 우물이 자리 잡고 있는 치스테리나 광장의 모습. 
치스테리나 광장과 광장을 굽어보고 있는 베치 가문이 세운 탑(Torre dei Becci).
산 지미냐노의 두오모. 
두오모 옆에 세워져 있는 그로사 탑(Torre Grossa). 

도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두 광장을 둘러보고 난 후 우리는 인근에 위치한 공원인 Parco della Rocca로 향했다. 한국어로는 '성곽 공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곳인데, 산 지미냐노를 상징하는 탑이나 광장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도시와 도시 외곽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공원이다. 이 공원은 14세기에 건설된 요새였고 현재는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이곳에 올라 산 지미냐노와 토스카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 후 시에나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원에서 보이던 탑과 두오모. 
공원에서 바라본 토스카나의 드넓은 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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