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클라이머의 홈장 잃은 상실감에 대한 후기
오늘은 목요일, 클라이밍 수업 날이다.
저번 수업까지 딱 8회차가 끝나고, 두 달차 시작인 날이다.
여느때와 같게 클라이밍장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못보던 신발들과 어수선함. 심상치 않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평소의 암장이라면 선생님만 계시며 나를 반겨줬어야했는데,
숙련된 클라이머의 포스를 풍기는 이모들이 5명쯤 있었다.
클라이밍장은 인사를 서슴없이 하는 분위기라, 우선 멋쩍게 인사를 건네드리고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느릿하게 암벽화 신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 선생님이 나타나셨고, 갑자기 말씀하셨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 말씀의 결론은 "지난회차까지 한 달만 강습하는걸로 하고 남은 두 달은 환불해드릴게요."였다.
사실 이번달까지만 암장이 운영한다는걸 알고 있었고, 처음 3개월 끊은 수업은 2개월까지만 운영한다는걸 전달들은게 저번주였는데, 오늘은 당일에 오니 그것조차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셨다.
한 달차 초보 클라이머인 나는 이제 좀 재미좀 붙고 승부욕도 생기는참에 강제로 그만둔다는게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1. 더 배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슬펐고,
2. 몇 회라도 더 배워보려했지만 선생님이 힘들어보이는게 안타까웠으며,
3. 이제 나는 뭘 해야하지? 라는 좌절감에 휩싸였다.
그나마 건네는 말로 20일까지는 와도 된다고 하셨지만,
그 뒤에 붙인 몇마디는 분위기는 오지 않는게 낫다라는 말과 마찬가지였으므로...
나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클라이밍장을 잃어버렸다.
맞다. 나는 내가 이렇게 좌절과 상실감에 휩싸인 이유가 궁금해져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클라이밍을 하겠다고 다짐한건 한달 전쯤 근력을 키우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렬해질 때,
헬스를 가자니 운동하는 법도 모르겠고, 그나마 클라이밍이 좀 더 재미도 붙이고
나도 어깨 넓고 탄탄한 멋있는 여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바로 그날 전화하고 방문해서 등록을 하였다.
첫 날 내 열정과 패기가 무색할정도로 클라이밍을 하는게 쉽지 않았다. 매달리는것 자체만으로도 근력이 부족해 힘들었고, 그 이후에도 내 머리와 몸이 따로 놀고 있는 바람에 혼나기도 하면서 어찌저찌 지구력 훈련을 하며, 8회차를 열심히 버텨왔다. 이제 굳은살 배기고 살이 까져가며 주변사람들한테 나 클라이머라고 손을 보여주며 자랑하게되었는데, 게다가 마침 딱 8회차날에 첫 날 풀지 못했던 볼더링 문제를 다시 도전하니 풀 수 있게 되었고, 이제 남은 한 달은 정말 열심히 암장에 와야지!!라며 다짐을 하고 발을 디딘게 오늘인데. 갑자기 내 기대가 풍선에 바람 빠지듯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내렸다.
기대하던 나의 3개월차 클라이밍 실력과 근력을 지금 당장 진행하는 것에 브레이크가 걸려서 나는 좌절했다.
오늘 운동을 하는둥 마는둥 암장에서 거의 쫓기다시피 나오고 버스에 내려서 정류장에 걸린 현수막을 봤다.
'헬스 3만원, PT 5만원' 바로 문자를 해보니, 역시나 12개월 기준 3만원이라고 했다.
이사갈 계획이 있어 이동네에 당장 내년까지 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6개월 가격은 어떻게 형성되어있냐 물었더니, 역시나 생각만큼 비쌌다.
그렇게 나는 목표를 잃은 사람이 되었다. 사실 목표는 그대로이나, 방향성과 방법 그리고 수단을 잃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저번주에 생각해본 결과, 나는 방법을 알거나 준비만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인걸 인지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무너진 상태와 다름없는것이다. 나름 행동파이지만 행동은 하되 내킬 때 확실히 하는편이라 그런지 지금은 헬스장 가격이 마음에 들지도, 다른 대안으로 찾을 운동도 당장 내키지 않는 상태라 이도저도 갈피를 못잡고있다.
내 스스로 포기한건 아니라 자책할 이유도 필요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틀어지는걸 받아들이는건 아직 덤덤하지 못한가보다.
아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건 새로운 암장을 찾아 떠나는거겠지. 홈장이 없어지는 경험을 하는건 쉽지 않은것같은데 그나마 한달 조금 넘게 다니고 없어져서 덜 아쉬워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몇년씩 다녔던 분들은 나보다 더 상실감이 크겠지.
몇 달 뒤에 이글을 다시 읽을 땐 새로운 암장에서 둥지를 틀어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