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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씩한 봉황새 Sep 20. 2023

시골 약사의 하루

인슐린 처방전과 560원.


  2020년 어느 날 여학생과 학생의 아버지가 처방전을 들고 왔다. 속효성 인슐린 10개. 지속성 인슐린 7개. 총 17개의 인슐린 주사제를 처방을 받아왔다. 아버지의 처방이 아닌 여학생의 처방인 걸 보니, 1형 당뇨인가 보다.

  1형 당뇨 환자분들은 선천적으로 인슐린 분비가 잘 작동하지 않아 인공적으로 만든 인슐린 주사제를 자가주사로 맞는다.

  인슐린 주사제를 맞는다는 것은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건강히 살기 위한 삶의 필수 요소이다.


"네 인슐린 주사제 속효성 10개, 지속성 7개입니다. 사용방법은 아세요?"


"네. 쓰던 거라서 잘 알고 있어요."


" 냉장 보관하시고, 개봉한 주사 펜은 상온 보관하세요. 주사기 바늘은 1회용이므로 재사용하지 마시고요. 필요하시면 보냉팩 드릴까요? 약값은 65200원입니다."


순간 멈칫하더니 아버님께서 말씀을 건네신다.


"약사님. 사실 근처 A약국에서 인슐린 주사제를 탔었는데,  그 약국에서 불편해하시는 것 같아 여기로 오게 됐는데 계속 와도 될까요? "


 '무슨 소리시지? 왜 근처 약국에서 불편해하셨지?' 의구심이 이내 들었지만


"아 네! 물론이죠."


"다행이네요. 전에 다니던 약국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았어요. 아이 혼자 보내기 그래서 같이 다녔는데 아이 혼자 와도 되겠네요."


"네~!!!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오세요~!"


  그렇게 아이와 아버지는 약을 타가셨고 나는 그 뒤에 이유를 알게 되었다. 처방전에 타 약물 없이 인슐린만 처방을 받게 되면 조제료가 560원이었던 것이다. 학생의 약값은 65200원이었지만 카드수수료 1.7%인 1100원을 제하면 나의 마진은 -540원이었던 것이다.

싫은 내색을 비쳤던 약사님을 나무랄 수도 없었고, 이상한 셈법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당뇨환자 커뮤니케이션을 찾아보았더니, 약국에서 현금결제를 유도하고 싫은 내색도 많이 하신다고 올라와 있었다. 인슐린 주사제 복약지도는 병원에서 시행하므로 약국에서 얻는 조제료 수입은 약품관리료인 560원이 전부인 셈이었다. 하지만 약품 보관방법도 일러드리고 손님들께 사용방법도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고 인슐린 바늘 착장 방법도 설명해 드렸는데...

법이 그러하니 딱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초짜 약사였던 나는 내가 얼마를 버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친절하게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실체를 알고 난 뒤 나도 사람인지라 '하... 실상을 일러드리고 현금결제를 유도해야 하나.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지만 답은 없었다. 다른 약사님들도 답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겠지. 참으로 이상했다.

  여러 생각이 많았지만 안도해하는 아이와 아버님의 얼굴이 떠올랐고, 걱정하지 말고 편하게 오시라고 말씀드렸던 터라 나는 더 이상 마음 쓰지 않기로 했다.

  인슐린 주사제만 타가는 환자 케이스가 두 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부담되지 않았고, 평생 주사제를 맞아야 하는 여학생과 임신 당뇨로 오시는 임산부 이 두 분을 웃으면서 맞이하고 싶었다.


  다행히 2022년에는 법이 개정되어서 조제료가 조정되었고, 중학생이었던 여학생은 고등학생이 되어 편하게 웃으면서 약국에 주사제를 타러 온다.

인슐린 주사제를 타시던 임산부 손님은 건강히 출산을 하셨고 아이와 함께 약국에도 자주 들리신다.


  웃으면서 편하게 인사하는 이 학생과, 한 아이의 엄마와, 건강히 세상에 나온 아이를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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