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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Aug 28. 2024

첫 수업을 기다린다.

1. 

  2학기 수업을 위해 만든 교재가 제본되어 왔다. 아이들에게 나눠 줄 연필과 노트도 택배상자에 잘 담겨 왔다. 하지만 수업은 관악제 준비와 스포츠클럽으로 9월이 되어야 시작할 것 같다. 첫 수업을 기다리는 사이 낮과 밤의 바람이 달라졌고 하늘은 조금 더 높아졌다. 매미 울음소리가 잦아졌고 급식실 앞 벚꽃 나무의 잎사귀들은 벌써 지기 시작했다. 이제 자취방에 가져다 놓은 선풍기가 구석에 혼자 있는 날들도 조금씩 많아질 것이다. 가을이 오는 것일까? 이 작은 학교에 온 지도 1년이 다 되어가고 있다. 


2. 

  오늘은 아이들이 오케스트라 관악제에 가는 날이다. 어제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 우리는 잘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시에는 결코 알 수 없고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들. 스티브 잡스는 몰랐을 것이다. 대학을 자퇴하고 배운 서체 수업이 나중에 그가 만든 매킨토시 컴퓨터에 아름답게 쓰일 것이라고. 고등학교 때, 나는 하루에 하나씩 시를 외우며 폭력적이었던 그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 시를 외워서 무엇을 해보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 나는 시인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지만 시적인 순간을 만들고 나누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아주 작은 점들을 만들고 있다. 먼 훗날 그때 그 점은 다른 점과 우연히 만나서 아름답고 단단한 선이 될 것이다. 너의 선....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만들어가는 점과 선을 나는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3. 

  시인 이문재는 시 <소금창고>의 마지막에서 '옛날은 가는 게 아니고/이렇게 자꾸 오는 것이었다.'라고  썼다. 옛날의 기억은 내 의지대로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이렇게 자꾸 내 곁에 와있다. 사무치는 일도, 가슴 아팠던 일도, 기분 좋은 일도, 따뜻했던 일도 모두 그림자처럼 와 있다. 지금 나는 그 무수한 점들이 오늘과 내일의 나와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해하고 있다. 아름다운 선이 만들어지길 기대하고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4.

  나는 교재의 첫 페이지를 열고 첫 수업의 첫 말을 적는다. 멀리서 아이들이 연주하는 아침의 음악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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