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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어둠을 인정하는 일

우울과 용기 사이에 선 나의 이야기

by 빛날애
포기하고 싶지만, 살고 싶었다.
그 마음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래 깊숙이 흔들렸다.
그렇게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선에서 경계인으로 살고 있었다.


책은 언제나 나에게 답을 건네는 친구였다. 그래서 좋았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은밀한 창구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음에 어둠이 가득 차 한 줄도 읽히지 않았고, 글을 쓸 엄두조차 내지 못한 날들이 밀려왔다. 그 어둠 속의 나를 바보처럼 자책했고, 포기했고, 스스로를 세상 밖으로 밀어냈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조금은 편해질 줄 알았다. 그것이 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쉼이라는 포장지 속에는, 예쁘지 않은 커다란 돌덩이가 들어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돌덩이는 내 가슴을 짓누르며 점점 더 무거워졌다.


정말 오랜만이다. 모니터 앞에 앉아 글을 쓰려는 마음이. 손끝이 시릴 만큼 낯설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으로 스스로 몸을 말아 넣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두운 곳으로 걸어 들어가며 나는 점점 시들어갔다. 아이의 마음이 아프자 내 마음도 시커멓게 무너져버렸다. 아이들 앞에서는 웃고 장난치다가도 그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이불속 산송장처럼 하루를 버텼다. 일이 없었고, 사랑하는 가족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정말 히키코모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유가 있는 듯했고, 없는 듯했으며, 나는 그 어느 것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내 속이 나도 모르겠는데 눈물은 이유 없이 쏟아졌고 그것마저 답답하고 슬펐다.

나는 스스로를 ‘외유내강’이라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그래서 더욱 자만했다. 나는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라고. 정신과라는 뾰족해 보이는 문턱을 넘기까지 오래 머뭇거렸다. 그곳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대학교 시절 정신과 실습 시절 만났던 우울증, 조울증, 조현병 환자들의 고단한 삶의 결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아렸고, 그 기억 때문에 더 인정하기 어려웠다. ‘나는 멀쩡하고, 의지가 강한 사람이다.’ 스스로에게 그렇게 되뇌며 버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우울을 인정하면 마치 실패한 사람이 될까 봐. 의지가 약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그 두려움이 내 어깨를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게 예약한 병원. 통화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십 번을 망설였다. 발을 딛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작게 무너졌다. ‘정말 우울증이면 어떡하지.’ 걱정하면서도, 사실은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손끝은 미세하게 떨렸고, 온몸에서는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무기력만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의사는 오래된 기억을 조심스럽게 꺼내듯 물었다.

“몇 년 전에 공황 증상으로 오셨던 적이 있는데, 그동안은 괜찮으셨어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네. 잘 지냈어요. 그런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물이 이상할 만큼 쏟아져 내렸다. 마치 기다리던 순간이 온 것처럼, 눈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의사는 조금 더 다정하게 질문을 반복했다.

“네... 아이구... 어떻게 지내셨어요?”

“바쁘게 살았어요. 아이 셋을 키우고, 일도 하면서... 그런데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갑자기 공황 증세로 병원에 갔고, 불안증 진단을 받았어요. 지금은 진료받으며 안정을 찾아가고, 좋아지고 있지만... 늘 불안해요. 그리고... 저도 말썽이네요.”

아이의 정서 검사를 했을 때 부모 정서 검사도 함께 했었다. 그때 받았던 나의 검사지 결과를 꺼내 조심스럽게 밀었다. 그 종이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우울도 높음’이라는 그래프가 선명했다.

검사지를 살펴보며 의사는 말한다.


“네, 그러셨군요. 요즘은 어떠세요?”

“모르겠어요.”

그 말이 공허하게 울렸다.

“그냥.... 무기력해요. 일만 안 하면 하루 종일 누워만 있고... 약속도 줄이고, 사람도 만나기 힘들어요. 쉬는데도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쉬고 있어도 고마운 사람들에게는 죄책감이 들고...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도저히 힘이 안 나요.”

의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두세 달 전부터요.... 아마.”

“그럼 그전에는 괜찮으셨어요?”

“아니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제 안에 이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근데... 저는 장녀고, 엄마니까 강해야 하니까...”

눈물과 함께 한숨이 깊게 떨어졌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왜 이러는지. 저보다 힘든 사람들도 열심히 살아가는데... 내가 이렇게 우울해할 자격이 있는 건지도.... 계속 자책만 하게 돼요.”

“그건 아니에요.”

의사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힘듦의 모양이 다를 뿐이에요. 힘드셨을 텐데, 잘 오셨어요.”

그러고 나서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죽고 싶은 생각은... 안 드셨어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서둘러 저었다.

“엄마로서.... 그런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구겨진 마음을 주워 담지 못해 눈물과 콧물이 멈추지 않았고, 티슈를 몇 장이나 뽑아 쥐고 있었다.

“보통 검사를 하고 약을 권하지만, 빛날애님은 약을 바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아.... 네.”

의사의 목소리는 한층 낮아졌다.

“일단 검사를 하고 처방을 드리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약이 필요해 보여요. 자책과 무기력, 그 모든 것들을 조금씩 가볍게 만들어줄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오래 숨겨두었던 어떤 문이 조용히 ‘철컥’ 하고 잠겼다. 그리고 다른 문이 아주 미세하게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나는 마침내, 내가 견디고 있던 이름을 받아들였다.

‘우울증 환자’라는 낯선 단어가 내 손 위에 놓였다. 무겁고 차갑지만, 이상하게 숨이 조금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도망치던 마음이 비로소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병명의 이름을 얻었다.
낙인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지나온 시간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문장이었다.


힘이 되고, 고맙고, 용기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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