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워킹맘이다. 얼굴 마주 보며 저녁밥을 먹을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빴다. 엄마의 고단함을 아는 K장녀로서,
엄마에게 도시락 투정이란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는 없다.
대신 식탁에 작은 쪽지와 보온 도시락통이 놓여 있다.
"빛날아, 도시락 챙겨가고, 오늘도 미안하고, 사랑해."
7시에 출근하는 엄마는 얼마나 일찍 일어났을까.
모두가 기다리던 점심시간.
하지만 나에겐 반갑지 않은 시간이었다. 책상을 앞뒤로 붙여 앉아, 서로의 도시락 뚜껑을 연다. 도시락 뚜껑을 열기 전, 심장이 콩닥거리는 사춘기 소녀. '김'이라도 있는 날에는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오늘도 역시나 콩자반과 멸치, 김치. 친구들에게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빨리 점심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랐다. 그렇다고 항상 콩자반만 있는 건 아니다. 어느 날은 엄마가 마음먹고 분홍색 소시지 반찬이나 계란말이를 싸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엔,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나의 도시락 세대는 금세 급식으로 바뀌었다. 다행히도, 엄마의 수고가 조금 덜어져서 아침에 조금 더 눈을 붙일 수 있었다.
그 시간이,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고마운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소풍 가는 날이다.
7시에 출근하는 엄마는
도대체 몇 시부터 일어나 준비했는지 모르겠다.
접시에는 들쑥날쑥 한 김밥 꼬다리가 한가득.
그리고, 반짝거리는 은박지에 꽁꽁 싸여 있는
김밥 두 줄과 함께
메모지를 대충 쭉 찢어 만든 쪽지가 있다.
"빛날아, 소풍 잘 다녀와. 사랑해"
이제는 내가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소풍 도시락을 싸는 날이 찾아왔다.
김밥 한 번 제대로 싸본 적은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아이들보다 내가 더 들떠 있다. 며칠 전부터 도시락을 어떻게 쌀지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드디어, 블로그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도시락을 발견했다.
'캐릭터 도시락'
소풍 전날 밤, 유치원 엄마들 단톡방은 난리다.
"나 어떡해, 똥손인데.." "애는 엄청 기대 중이야. 김밥이라도 제대로 쌀 수 있을지. 한 번도 안 싸봤는데." "도시락 싸려면 새벽에 일어나야 하나?" "망쳐도 어쩌겠어. 일단 최선은 다 해보자!"
김밥 한 번 제대로 안 싸본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맛있으면서 예쁘기까지 한 도시락을 싸주고 싶어 고민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마음이다. 바쁜 워킹맘도, 둘째 수유하며 밤새 잠도 못 자는 엄마도, 이 날만큼은 우리 아이가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긴 도시락을 보고 기뻐하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한다.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눈이 떠져, 벌떡 일어난다.
전날 밤에 미리 만들어 놓은 김밥 재료들을 꺼내어 김밥을 싸고, 소시지를 데친다. 치즈와 햄, 김을 캐릭터 모양에 맞춰 네모, 동그라미로 자른다. 데친 소시지에 치즈와 검정깨로 눈을 붙인다. 소시지를 반으로 잘라서 토마토, 상추, 치즈를 넣어 햄버거 모양을 만들고, 핸드폰 화면 속 이미지를 보며 김과 치즈로 정교하게 캐릭터 얼굴을 만든다.
장장 2시간에 걸쳐서 도시락이 완성됐다.
초보라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도 완성된 도시락을 보니,
감격스러워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진을 찍어대며, 남편과 아이들을 깨웠다.
"짠!"
"와, 우리 엄마 최고!" "우와, 여보 진짜 대단해, 너희 엄마 진짜 최고다,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