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과 나
내 생애, 최초로 여권을 만들어 10년간 딱 두 번 외국에 나갔다. 솔직히 외국 나갈 일이 없는 나. 그 최초의 여권은 어느새 10년의 수명을 다하고 빳빳한 빈페이지를 남긴 채 서랍 속을 굴러 다닌다.
앞으로 여권 사진 찍을 일이 없을 것 같은 날들을 즐기고 있을떼, 갑자기 여권에 들어갈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하두 오랜만에 찍는 사진이라 10년 전 만든 여권 속 사진과 오늘 찍은 사진을 보며 푹 늙어 버린 지난 10년 세월을 확인하는 시간도 차분하게 가졌다.
다가오는 3월. 4년 만에 나가는 즐거운 해외여행이라고 주름진 속을 펴 보지만 가릴 수 없는 노화는 선명하기만 하다.
나에게 해외여행이란, 매스컴이나 책자로 실제처럼 워낙 많이 보았기에, 세계 여러 나라 구석구석 속속들이 어지간한 곳은 잘 알고 있다. 해외여행을 혼자 갈 정도로 나는 간이 크지 않고 그렇다고 간절하게 가고 싶지도 않다. 차라리 집에 누워 편안히 세계여행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그런데 나는 인간이자 사회적 동물, 감정의 동물이다. 소속된 단체에서 누군가 기획하고
"가보자. 갑시다."
"재밌다니까" 하면 사람들은 작전이 세워지고, 다들 공항에서 짐가방을 들고 예쁘고 멋지게 만나게 된다.
로빈슨크루소를 재미있게 본 나는 100% 동의할 수 없으나 여럿이 같이 하고 그냥 졸졸 따라다니면서 편안히 구경하니까, 아쉰 대로 적극 참여 한적이 있다.
동작 구청 민원여권과. 침이라도 튈까. 투명막을 설치한 창구에 주민등록증과 여권 신청서를 넘겨줬다. 해외 도피라도 할까. 양손 엄지와 검지의 지문을 스캔했다. 며칠 후 문자를 받으면 창구로 와서 찾아가라 한다.
여권은 나를 증명하는 외국 전용 수첩, 국내에선 주민 등록증이 있다. 주민 등록증은 소지하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 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다르다. 여권이 없다면 체포가 될 수 있고, 증명을 위한 조사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항 입국장부터 출국하기 전까지 여행사 직원의 신신당부하는 여권 챙기기, 간수 잘하기 잃어버리면 아주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며, 단단히 일러준다
처음 가는 외국여행. 호텔을 나설 때마다 화장실이나 식당등 옷을 벗거나 가방을 내려놓을 때도 옆구리에 찬 힙백 속 여권을 자주 만진다.
여권을 만들면서 생각난, 지난 두 번의 해외여행 중 기억나는 건 여권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 하나, 키나발루산 정상에서 본 말레이시아 여인의 아름다운 미소. 두 개가 있다
문자가 왔다. 동작 구청 민원여권과 투명막 아래로 뻣뻣한 신식 전자 여권을 받아 들었다. 언젠가 10년이 지날 테고. 그때가 되면 여권 사진을 또 찍어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