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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낫으로 깎은 연필 Feb 05. 2023

아름다운 산과 해, 미인

 키나발루산으로 향했다

  촌에서 자란 나는 산에 간다는 것은 나무하러 가는 곳, 아니면 밤 따러 가는 곳, 어릴 때 친구들과 전쟁놀이하는 곳이 산이고 산에 가는 것이었다. 

  바닷가 마을에서 자란 나는 초등학교 졸업하는 날까지 아침 해를 보고 등교했다. 일출은 내가 맨날 보는 당연한  일상이고 원래 그런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장하여 도시에 살면서 사람들이 해맞이 간다는 말에 나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냥 시간 많은 사람들이 첫 해를 보며 소원을 빌로 가는 단순한 일로 생각했다.     


  내게 해외여행이란, 그 나라 문화와 정서를 느리게 느끼고 싶다. 그렇다. 그래야 내 맘도 편하고 잘 받아들여진다. 단순히 후딱 다녀오는 여행은, 그 나라를 미처 알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오는 아쉬움이 나는 컸다.

뭘 해도 뒤늦게 찾아오는 아쉬움은 나만 그런지 남도 그런지 모르지만 난 차분하게 여행하는 게 좋다. 경마에서 말하는 추입마형이랄까. 초반에는 분위기를 못 타다가 끝나갈 무렵에 힘이 나는, 나는 그런 인간이다.


    키나발루산은 보르네오섬 북쪽 끝에 있다 동남아시아 최고봉인 키나발루산은 4,100m로 하루 입산 인원이 150명으로 제한되고 산 정상에는 눈이 없어 등산인한테는 매력 있는 산이다.

   우리 단체는 키나발루산이 있는 보르네오섬으로 출발했다. 나도 그 안에 들어 있다.

여러 명의 포터와 같이했다 포터들은 무게에 따라 일당이 정해진다. 포터는 남녀 구분이 없고 자유롭게 하는 듯했다. 히잡을 쓴 조금은 젊은 여성도 작은 배낭을 들고 우리 일행과 같이했다. 

  첫날 3,300m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나는 포터들과 같이 이동했다.  더운 나라라서 열대 우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열대 우림 같지 않았다. 원숭이가 뛰어다니고 왕뱀이 나무에 걸려 있을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산행 세 시간째.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막. 나의 단점이 시작된다. 항상 이런 산행이나 여행을 하면 나는 주어진 일이라고 착각하며 목적만울 위해 직진한다. 

  즐겨야 하는 여행인데 목적을 위해 정답만을 찾으려 하는 나. 정작 목적지에 도착하여 목적을 이루고 나면 뜨겁게 끓고 난 후 식어 가는 싱거운 국물이 됨을 알면서도 남들의 작은 행동과 행위들은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고 전투적으로 나는 걷는다.     


  어찌 됐든 포터나 우리나 산을 오르는 목적은 같다. 말없이 가는 것도 익숙해졌다. 중간중간마다 각종 제스처와 머릿속을 다 뒤져 영어 단어를 합치고 그들이 아는 한국어 단어를 더하여 소통했다. 처음은 답답하게 시작했지만, 차츰 우리는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반은 무슨 말인지 알았다. 너와 내가 심각한 이야기는 할 필요 없다. 순간순간 지나는 현장을 말하고 웃는 것이 전부지만, 나는 외국인이라서 신비했고 그들도 호기심에 적극적이었다.     

  누구는 잘 걷고, 누구는 인상이 좋고, 누구는 영어를 잘하고, 누구는 잘 웃고, 등등 우리는 여러 명의 말레이시아 포터들을 보고 서로 걸으며 같이 힘들어하며 때론 손을 잡았다. 


  나는 보았다. 히잡을 둘러쓴 여인의 활짝 웃는 모습을. 그 어떤 치장이나 화장술보다 아름다웠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 같은데 14살 초보 아가씨만큼 소리 없이 크게 웃으며 손뼉 치며 즐거워했다.

     

  산행 다섯 시간째. 우리는 휴식을 했다. 휴식을 하던 중 우리 팀 나이 많은 형님이 노래를 한다. 흔히 말하는 뽕짝이라는 트로트를 애절하면서도 흥이 나게 잘 부른다.

키나발루산 중턱에서 부르는 이 촌스러운 노래는 여기 말레이시아 여인을 즐겁게 헸다.


  내 좁은 생각으로 생뚱맞게 들렸던 노래가 어느 한 사람에게는 흥겹고 즐겁게 들린다는 걸, 즐겁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는 즐거워하는 그 말레이 여인의 눈을 보았다. 아름다웠다. 히잡을 쓴 여자는 머리와 목을 가렸지만 드러난 얼굴 속 큰 눈은, 선명하게, 아름답고, 순수했다.

  ‘말레이시아 여인, 예뻤다. 미인 같았다.’   

    

 

  3300m에 있는 산장에서 자고 담날 새벽, 키나발루산 맨 꼭대기 4,100m 정상으로 출발했다. 내려다 보이는 작은 산들. 구름도 한참 아래 있다. 우리는 아침 해를 기다렸다. 기온은 영상을 겨우 유지하지만 체력 손실로 인해 나는 추웠다. 산 정상은 울퉁불퉁 커다란 돌과 바위들이 막 섞여 있다. 길도 없다.  식물도 나무도 없는 바위투성이다. 


  해가 뜨는 동쪽 하늘이 조금씩 환해지고 있다. 

  붉은 신하가 먼저 어둠을 물리고,  산과 큰 들을 장악하며 구름을 밀어내며 떠오르는 아침 해는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만물의 지존,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내가 뛰어놀던 뒷산이 아닌 높은 키나발루산. 바닷가에서 의미 없이 보던 그런 아침 해. 나는 포터들과 함께해서 행복했다. 해맑게 웃는 말레이시아 여인을 알게 되고, 오르면서 많은 인내와 기다림이 있어 산도 해도 그냥 아름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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