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잡아야 한다 멀어지는 즉시 나는 탈락
오늘 경기는 4km 추발. 사이클 경기장 한 바퀴 333m. 12바퀴를 도는 경기다. 3 종목 중에 가장 힘든 추발경기, 3년 연속 예선 탈락한 나는 오늘 필사의 각오로 출전한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미끄러운 로라 위에서 나는 30분간 준비 운동을 했다. 이마의 땀이 턱을 타고 떨어질 때까지 페달을 돌렸다.
사이클 대회가 열리는 경기장, 관중석 난간에는 각 시도별로 선수단 파이팅을 적은 현수막이 걸려있고 각 부스 에는 선수와 준비를 하는 코치진도 분주하다. 앞쪽으로는 여러 대의 사이클들이 세워져 있다. 또 바퀴를 갈아 끼우고 타이어 공기압과 기어를 정비하는 각 팀, 기술요원들도 바쁘게 움직인다.
트랙을 달리는 자전거는 기어가 싱글이라서 변속이 안 되는 고정 기어다. 힘 전달력을 극대화하고 불필요한 무게와 공기 저항에 특화된, 스피드에 초점을 맞춘 브레이크가 없는 픽시자전거이다.
경기 시작 15분 전
본부석 앞, 심판관에게 자전거와 선수, 배번호를 확인하는 검차를 했다. 추발경기라고 부르는 이 사이클 경기는 트랙 경기장 6시와 12시를 기준으로 그 위치에서 동시 출발하여 서로를 보며 추월하는 기록경기다.
반바퀴 앞 선수를 보고 달리기 때문에 긴장감과 쫓고 쫓기는 스릴 있는 경기이다.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지난해 경쟁 했던 선수를 유심히 보았다. 그때는 도로 경주에서 맞섰던 선수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발주기에 뒷바퀴가 물리고 나는 자전거에 올라 클릿을 끼웠다. 딱 따악, 소리가 나며 힘센 자석에 쇳토막이 붙듯 페달과 신발이 일체가 되었다.
발주기 앞 좌측 5미터 전방에 카운트를 세는 작은 전광판에 15라는 숫자가 멈춰 있다. 옆에선 코치가 파이팅을 외치고 나는 허벅지를 두 손으로 치며 준비 됐다고 손을 들어 신호했다.
멈춰 선 15 숫자가 카운트되고 5초부터는 출발로 가는 소리가 삐, 삐 하며 냈다. 곧 펼쳐질 경기에 액셀을 밟아 rpm을 올리듯. 나는 크게 숨을 뱉고 들이쉬었다. 출발 대기선에 있는 레이싱 경주차처럼.
5, 4, 3, 2. 2초에 엉덩이를 들었다. 1초에 엉덩이를 뒤로 빼고 0초가 되자 발주기가 치잇 소리를 내며 뒷바퀴를 놓았다. 나는 무지 막지 한 힘으로 상체를 전진하며 두 팔로 핸들을 꽉 잡고 왼발과 오른발로 페달을 있는 힘껏 밟아 돌렸다.
발주기를 떠난 자전거는 우리 감독님의 쩌렁쩌렁한 하나, 둘, 하나, 둘 구호 소리와 함께 나는 자전거 위에서 일어선 자세, 댄싱으로 첫 코너를 돌아 중반 지점까지 최대 속도로 끌어올렸다.
2번째 코너가 오기 전 안장에 앉아 본격 페달링을 했다. 탄력을 받은 자전거는 속도를 떨어뜨리면 안 된다. 이대로 이 페이스를 유지하면 최상이지만 갈수록 힘은 떨어지기에, 첫 바퀴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국가대표라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도 끝까지 버티며 가야 한다. 순식간에 두 바퀴를 돌았다. 호흡은 사납게 거칠고 숨은 쉬고 쉬어도 모자라다. 아직 10바퀴가 남았는데 벌써 호흡이 벅차다.
쫓고 쫓기는 경기, 뒤쳐지면 탈락의 폭풍이 나를 강타할 것이다. 기록은 냉정하고 입상은 화려하다. 패배는 반겨주지 않는다. 나조차도.
생각할 힘마저도 가져다, 이 순간 1초, 1초에 집중했다. 지난 시합에 쉽게 봤다가 고배를 마신적이 여러 번. 적당히란 없다. 입상이라도 하려면 죽지 않을 만큼 힘을 끌어모아야 한다. 탈락이라는 것은 지금의 안간힘보다 더 아프고 쓰리기에 나는 상대선수와 싸우고 내 고통과 싸우고 있다.
오늘따라 바람소리가 크다. 바람의 저항이 심하면 속도가 떨어진다. 속도와 기록이 낮다 하더라도 힘든 건, 나나 상대 선수나 같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나 얄미운 바람이 내게 만 부는 것 같아 나는 싫었다. 공간의 조건도 동일하다. 체력도 키도 나와 비슷하다. 이번승부는 정신력과 인내심의 싸움 같다.
스타트를 한 첫 번째 바퀴 27초, 탄력을 받은 두 번째 바퀴 22초에 최고 속도를 내고, 현재 10바퀴쯤 되었을까. 지금은 26초로 내려갔다. 매회마다 코치는 큰소리로 초를 불러준다. 선수들은 한 바퀴마다 몇 초에 돌았다는 걸 알고 페이스 조절을 극대화한다.
7바퀴쯤 되었을 때, 내가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대 선수도 지쳐가는 것을 보았다. 10바퀴쯤에는 확연히 30미터까지 좁혔다. 탈락은 없다.
딸랑, 딸랑딸랑, 마지막 바퀴라고. 종이 울렸다. 나의 몸과 정신이 절규했다. 다리에 힘을 써야 하는데, 허리, 몸, 머리까지도 흔들어 페달을 돌렸다. 온몸으로 용쓰는 나. 자전거마저도 나와 같이 비틀어 짜낸다.
"와마, 미쳐버리겠네." 내 현재의 상황과 인내심을 채직하는 욕이 나왔다.
쫓고 쫓기는 승부가 이런 걸까. 어쩌면 잔인한 승부처럼 보이기도 한 추발 경기. 거리가 정해진 규칙에서 죽을 만큼 달린다. 만약 혼자 달린다면 이만큼 세게 달리진 않을 것이다.
이종목에서 예선 탈락만 내리 3년 연속했던 나.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중요한 건 난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를 따라잡고 있다.
심박수 189 최대속도 60 평균속도 47. 심장과 폐는 최대출력을 내고, 마지막 코너를 돌아 직선 구간으로 들어섰다.
최후의 버티기, 발악, 오기가 총동원했다. 본선행 열차를 따라잡기 위해 성냥개비 하나 들 힘까지도 불 질렀다. 흔들리는 나 흔들리는 자전거.
"와마, 돌아버리겠네."
모르는 사람이 마지막을 보았다면 나는 간발의 차이로 2등이다. 그렇지만 보이는 2등은 반바퀴를 잡았다는 사실.
예선전 경기가 종료되었다. 경사면으로 올라가며 속도를 늦췄다. 가쁜 숨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내 가슴은 쿵쿵 뛰었다.
폭풍 같은 엔도르핀이 냇물처럼 흘러 나를 씻겼다. 지난여름 뜨거웠던 훈련이 행복한 순간으로 확 바뀌었다.
예선 통과와 동시에 나는 본선에 올라갔다.
끝났다. 시원했다. 후련하다. 긴장감이 사라졌다. 후회 없다. 만약 탈락 했다 해도 나는 괜찮다. 모든 힘을 아낌 없이 사용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오늘 같이한 상대 선수에게도 잘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고싶다.
그동안 예선탈락만 했던 나. 다른생각이 든다. 탈락이 중요한것이 아니고, 얼마나 열심히 탔느냐가 중요했다. 훈련없이 등수만 바라본 내가 조금은 바보였던 지난날이 문득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