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응급실 두 번
길섶에 가려진 전동킥보드 핸들이 보이자 나는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잡아 핸들을 틀었지만, 속도를 못 이긴 자전거는 전동킥보드와 부딪치고 자전거는 던져진 걸레처럼 굴렀다.
이런! 왜? 이런 데다! 이해 못 할 황당함에 화가 측정불가 상태로 올랐다.
흑석초등학교 아래 한강 자전거길에서 출발하면 한 시간 내외로 도착하는 거리 26km의 성남. 보통 사람들 퇴근할 때, 출근을 하는 나는 오늘도 운동 겸 자전거를 타고 성남으로 출발했다. 맞바람이 불지 않아 꽤 높은 속도를 즐기며 페달을 밟았다.
잠실 운동장 옆 탄천을 따라 쉼 없이 직진했다. 좌측은 탄천, 우측길 가장자리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군데군데 벤치가 있는 쉼터를 씽씽 지나쳤다. 지난여름 한차례 풀베기를 하던 걸 보았는데 벌써 크게 자라 있다.
속도가 높을수록 자전거는 핸들보다, 몸의 중심으로 방향을 튼다. 코너링은 당연히 속도를 줄여야 하지만 직진 도로에서는 핸들은 흔들림 없이 고정되어 있다. 내뿜는 호흡에 이마엔 땀이 흐르고, 발은 페달을 열심히 돌리고 있다.
그런데! 길섶에 뭔가 있다. 잘못 보았을 리 없다. 사실이다.
“헉, 이건 뭐야” 반사적으로 큰일 났다고 직감했다.
전동킥보드가 길옆 키 큰 풀 속에 반쯤 감춰진 채 서 있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공유 전동킥보드. 황당함은 위험으로 바뀌고 위험은, 최고 위험수위로 올라갔다.
어렸을 때 막 배운 자전거를 타고 가다 황소를 끌고 오는 아저씨를 피하다, 탱자나무 울타리에 처박아 버린 것 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위험상황, 팔 하나쯤 저 세계로 보낼 정도의 위험이 내게 덤벼들었다.
‘비상탈출 레버가 있다면 즉시 레버를 잡아당겼을 텐데, 지금 나는 전투기가 아닌 고물 자전거에 올라탄 상태.’
맞은편에 달려오는 자전거는 없다. 피할 수 있는 충분한 거리가 안 된다. 급브레이크를 힘껏 잡았다.
최상급 욕이 나왔다.
“어떤 씨브랄새끼가! 이런 데다가 세워놨지? 정신이 있는 새낀지! 똘아이 새낀지 모르겠네”
자전거 전용도로에 아무렇게나 길섶에 숨기듯 세워둔걸. 이해할 수 없었다. 전동킥보드 이용자를 막 욕했다.
“우당탕탕 끄그극”
바닥에서 전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 속에서, 번개처럼 드는 생각들. 인생 뭐 없다! 크게 다치겠구나!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비장한 각오마저도 눈 감아 받아들였다.
우측 핸들과 전동킥보드 핸들이 살짝 부딪쳤지만, 충격은 굉장히 컸고, 중심을 잃은 자전거는 사정없이 던져버린 걸레짝 되어 길바닥을 긁고, 나는 튕겨 나가 굴렀다.
왼쪽 팔꿈치와 이마와 눈 윗부분을 크게 부딪쳤다. 숨이 막히게 아팠다. 인도를 걷고 있던 여학생이 뛰어와 자빠진 자전거를 길옆으로 세우고 떨어진 헬멧과 안경을 가져다주었는데 심한 고통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학생이 고마웠지만 말 못 할 정도로 아파 입이 열리지 않았다.
“후 하 후 하” 바닥에 엎드린 채로 통증의 괴로움을 참아냈다.
인대가 짱짱한 나는 유연성은 없지만 뼈는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나 보다. 지금 그 덕을 본 것일까. 팔과 다리도 뼈는 부러진 것 같지 않다. 기분은 길바닥을 닦은 걸레 같았지만 다행이다. 바지가 닳아 찢어지고 무릎과 팔꿈치도 피가 났다.
이만하면 다행으로 생각했다. 고통이 잦아들자 일어나 끽끽 소리 나는 자전거를 타고 회사에 도착했다. 사투를 벌인 얼굴과 행색을 보고 실장은 무슨 일 있었냐며 눈썹 아래가 찢어졌다며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거울을 보니 조금 찢어졌는데 흉측하게 살이 튀어나와 있다.
동네 병원이나 피부과를 가려고 검색을 했지만, 오늘은 일요일. 문 연 병원은 없다. 가까운 분당 차병원으로 택시를 불러갔다. 응급실을 찾아 접수하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젊은 의사 선생님이 와서 하는 말,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피부 담당 선생님이 안 계십니다.”
얼굴의 상처는 외과 소관이 아니고 피부과 담당이라며 여기서 치료할 수 없다고 했다.
담당 의사가 없다니 황당했다. 아프기도 했고 강제로 찢어진 바지와 초췌한 얼굴은 내 마음 같았다. 번거롭게 또 다른 곳을 가야 한다니 오늘이 더 싫어지는 날이었다.
서울대병원으로 갔다. 병원 앞이라 택시는 잘 잡아탔지만 여간 내키지 않는다. 혼자 응급실을 또 간다는 것을 두고 나는 투덜대며 택시를 탔다.
병원에 갔는데 치료할 수 없어 서운하고, 길옆에 아무렇게나 내버려 두고 간 킥보드 이용자도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내 말은 들은 택시 기사님도 화를 냈다.
공유 전동킥보드 탈 때는 요리조리 잘 타고 다니다가 아무 데나, 아무렇게나 버려두고 가버려 보행자와 차, 다 불편하다고 소리쳤다. 말이 오가자 정치인들이 잘못했다고 나왔다. 말이지만, 속 시원하게 욕하는 택시 기사가 오히려 내 속을 어르고 있었다.
얼마나 신랄하게 욕하던지 같이 “하하하” 크게 웃었다.
분당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갔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다. 그냥 꿰매고 가면 될 것 같은데, 병원 매뉴얼인지 응급실 수칙인지 모르지만, 치료비 항목이 추가되는 검사를 마구마구 했다.
머리를 부딪쳤으니 ct도 찍자고 했고 다른 질병은 없는지 다 캐물었다. 사고 난 직후 기억난 것까지 다 말해보라고도 했다.
머리를 다쳐 인지능력이 떨어지는지 차트를 들고 조목조목 표시하며 묻는다. 빨리 꿰매고 가고 싶은데, 일요일인 오늘은 바쁘게 해야 하는 일도 많은데 시간을 버리고 있는 난 마음이 조급했다.
그리고 가면서 기다리라더니.
하안참, 뒤에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왔다. 8 바늘 꿰맨단다. 수술실도 아닌 응급실 침대에 그대로 걸터앉아 고개를 기울여 쳐든 채 바늘로 꿰매는데, 마취 주사와 바르는 마취약도 발랐다는데 바늘로 찌르고 당기는 것처럼 아팠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30분은 걸린 듯하다. 얼굴은 피부과 의사 담당이라서 흉 안 지게 꼼꼼하게 해 주나라고 난 믿었다. 뭐 별수 있어! 그렇게 생각이 들면 좋은 방향으로 믿어야지. 마지막 소독약을 적셔 닦을 때는 최상급 쓰라림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의사와 간호사도 내가 얼마나 아픈지 알고 있겠지. 말은 많이 아프죠? 하면서. 자기 살 아니라고 소독약을 막 문질렀다.
‘완마 되게 아프네’
거즈를 대고 반창고를 붙이고 나니 한결 편해지고 마음이 진정되었다. 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험했던 오늘이 가고 있다. 전동킥보드 이용자는 안전한 곳이 아닌 길섶에 아무렇게나 내 버린 게 문제였지만, 마냥 킥보드 이용자만 탓하고 싶지 않다. 솔직히 내가 과속을 한 잘못도 크다. 과속하지 않았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을 거라고 믿는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 잊지 못할 일요일의 응급실 진료비 38만 원은 덤으로 준 강력한 경고로 인정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