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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성 Dec 19. 2022

고딕성당을, 순례하다-7:
라옹대성당

        

        자애로운 성모의 자태을 닮은 성당: 라옹대성당


    라옹대성당은 초기 고딕 양식 건축의 절정에서 활짝 피어난 꽃이다. 성당은 수직성과 수평성의 균형을 조화롭게 이룬 초기 고딕의 건축 미학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더 나아가, 성당은 초기 고딕이라는 특정한 양식의 벽을 넘어 비로소 ‘이것이 고딕이다.’ 이라고 처음 선언한 고딕 건축 양식의 주춧돌로 자리 매김했다. 성당은 대화재로 전소 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 자리에 1155년 고딕 양식으로 새로운 성당을 시공해, 1240년에 완공했다. 보통 고딕 성당을 짓는데 200년~300년이 소요되는데, 성당의 건축 기간은 불과 90여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다양한 고딕 양식의 영향없이 온전히 초기 고딕 양식으로 완공 할 수 있었다. 초기 고딕 양식 이후에는 고딕 성당들은 수직성과 수평성의 균형보다는 수직성을 추구하는 높은 고딕 양식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라옹대성당이 제시한 ‘고딕 성당은 얼마나 높아야 하는가’하는 문제는 수백 년에 걸친 고딕 건축 역사의 중요한 화두였다. 


라옹대성당 전경

성당 찾아가는 길 

    라옹은 파리에서 북동쪽으로 150 km 떨어져 드넓은 피카디리 평원에 우뚝 솟은 산정 도시다. 산 위 평평하게 펼쳐진 L 모양 지형의 머리 부분에 시 중심이 있고, 그 끝에 성당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산 아래로 신도시가 형성 됐지만 지금도 라옹의 중심은 성당이 있는 산정 중세 도시에 있다. 산정 구도시는 중세 도시의 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라옹은 주민 3 만 정도되는 작은 타운에 지나지 않지만 중세에는 역사적인 도시로 12-13세기 유럽 신학의 중심지였다. 이 시기에 역사적인 성당이 지어졌다. 


성당이 있는 시내 중심에서 바라 본 산정도시 라옹


    10여 년 전 성당을 처음 순례 했을 때는 신도시에 머물면서 이른 아침, 산정의 성당을 찾아 언덕길을 올랐다.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언덕길은 사행천처럼 굽이굽이 올라가는 길이다. 40분 정도 걸어서 로마시대 지은 성채 따라 산정에 오르니 지평선까지 펼쳐진 피카디리 평원이 나타났다. 일망무제, 딱 트인 평원은 온통 5 월의 초록이다. 산정을 에워싼 성벽길 따라 10 분 정도 더 올라가니 성당 앞 넓은 광장이 나왔다. 


성당을 오르는 언덕길

성당의 얼굴, 서쪽 파사드 

    고딕 성당은 동방의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서쪽에서 동쪽을 향해 있다. 성당의 중심 입구인 서쪽 파사드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입구라서 서쪽 파사드는 ‘우리 성당은 이런 성당입니다.’라고 말하는 성당의 얼굴이다. 그래서 고딕 성당을 감상할 때는 우선 서쪽 파사드를 넉넉하게 감상한 다음, 성당에 들어가 성당 내부를 감상하게 된다. 서쪽 파사드 앞 광장에서 서쪽 파사드를 바라본다. 서쪽 파사드는 아래에서 위로 입구층, 장미창층, 첨탑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맨 아래 부분인 성당 입구는 3개 정문으로 되어 있고, 입구층 위의 장미창층은 양쪽 아치창이 딸린 큰 장미창을 지었다. 그 위 양쪽으로 높은 종탑을 세웠다. 성당을 짓는 동안 큰 바위와 아름드리 목재를 마차에 싣고 산정을 오르는 동안 수많은 황소들이 지쳐 죽어갔다. 때로는 성모께서 튼튼한 황소를 내려 보내 성당을 사람과 함께 완성했다는 기적의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죽어간 황소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탑 모서리마다 황소 조각상들을 세웠다. 그런데 묘하게도 장대한 돌탑은 그리 장대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탑이 성당 건물과 하나의 유기체로 조화되어서 가벼운 안정감을 더해준다. 탑은 높지만 팔각 기둥 사이 벽 없이 터진 “벌집” 공간을 넣어 가벼운 느낌을 준다. 물러나 서쪽 파사드를 바라보면 큰 장미창 중심으로 첨탑까지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돌로 지은 장중한 파사드인데도 마치 땅에 얹혀 있는 것 같은 단정한 모습이다. 왜 그럴까? 공간감 때문이 아닐까? 파사드 입구층의 현관, 움푹 들어간 장미창과 아치창, 열주 회랑 공간, 그 위에 벌집 첨탑 모두 층마다 공간 주머니를 만들었다. 그래서 장대한 서쪽 파사드는 무게감을 넘어 가벼운 입체감을 더했다. 서쪽 파사드는 수백 년 동안 고딕 성당들의 모델이 되어왔다. 


성당 서쪽 파사드 


    입구층은 중심 입구인 가운데 정문과 양쪽에 왼쪽(북쪽), 오른쪽(남쪽) 정문으로 되어있다. 성당은 성모 마리아를 모시는 노트르담 성당이다. 그래서 세 개 정문 중 성모가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중앙 정문을 가장 정성스레 지었다. 정문 가운데 문설주에는 성모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양쪽 문설주에 도열한 선지자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중앙 문 팀파눔에 성모가 승천에 그리스도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하늘의 대관식’을 조각했다. 팀파눈 아래 상인방 격자 부분에는 12 제자들이 성모 마리아 죽음을 애도하며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장면, 천사들이 향료를 뿌리며 마리아를 천국으로 모셔가는 장면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고, 구름 위 팀파눔에는 천국으로 승천한 성모가 그리스도로부터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대관식을 그려져 있다. 면류관을 내리는 위엄 어린 그리스도 모습과 면류관을 받으려 수줍은 듯한 미소를 머금은 성모의 모습이 정교하다. 이 하늘나라 대관식 조각은 라옹 성당과 거의 같은 시기에 지은 상리대성당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후 불과 20년 후에 조각 됐지만 세련된 기술과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성당 서쪽 파사드 중앙문
성당 정문 '하늘의 대관식' 팀파눔 


정결한 아우라가 깃든 성당 내부 

    성당 신랑에 들어서면 아주 높지 않아 바라보기 좋은 내진 동쪽 끝 장미창을 마주한다. 그리고 장미창을 감싸며 기둥들이 단정하게 솟아올라 휘어지면서 아치 천장을 만드는 뾰족 아치 곡선들이 품는 정결한 공간을 만난다. 성당 천장 높이는 25 미터, 폭은 11 미터 정도로 높지만 폭이 넉넉한 넓은 공간이다. 신랑이 11 구간, 내진도 10 구간으로 긴 구조지만, 폭이 넓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성당 내부 전경


    벽은 4 층 구조로 아케이드, 갤러리, 트리포리움층, 그 위에 채광창이 있는 전형적인 초기 고딕 양식이다. 아케이드층의 측랑, 갤러리층의 폭 넓은 회랑, 트리포리움층의 좁은 복도까지 위로 올라가면서 차츰 작아지는 공간을 만들었다. 특히 그래서 이 공간들이 층마다 마치 버블 띠처럼 성당 중심 공간을 둘러싸며 점점 작아지는 새끼 공간들을 만든다. 그래서 크고 육중한 내부지만 무게감보다 공간감이 느껴진다. 마치 이 땅을 의미하는 중력의 무게를 넘어 하늘나라를 상징 하는 듯하다. 기둥은 다발기둥으로 아케이드 기둥머리에서부터 다섯 갈래의 복합 기둥들이 아치 천장까지 올라간다. 이 중 가운데 3개 기둥은 아치 천장 늑재와 연결되고, 양쪽 2 개 기둥들은 채광층 틀이 되어 성당을 하나의 통일된 구조로 묶는다. 다발기둥들을 살펴보면 기둥마다 마치 대나무 매듭처럼 드문드문 띠를 새겨 눈길이 기둥을 따라 단번에 천장까지 올라가지 않고 숨을 고르면서 올라가 수직과 수평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감으로 강조했다. 이렇게 기둥과 궁륭 교차 늑재의 직선과 곡선들이 모여 성당의 골격을 이루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아치 곡선들이 리듬을 반복하며 새로운 공간을 열어간다. 1142년 생드니 수도원 성당 후진을 재건축하면서 문을 연 초기 고딕 양식이 80여 년 만에 여기서 초기 고딕 양식의 절정을 이룬다. 


성당 다발기둥과 늑대 교차 6 분 천장

    성당 실내는 정결하다. 십자가 평면도 따라 천천히 한바퀴 돌면 사위가 고요한 분위기다. 교차랑에 서면 성당 내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밝은 회색 석재 사용해 성당 전체에 밝고 정결한 느낌이 가득하다. 이년 전에 왔을 땐 화창한 봄날이어서 햇빛이 들어와 은은하게 밝은 분위기였는데, 오늘은 날이 흐려서 가라앉은 분위기다. 하늘이 활짝 갠 날과 흐린 날의 분위기가 다르지만 언제나 빛을 품는 조용한 공간이다. 이 고요한 밝음이 성당의 얼굴이다. 특히, 라옹대성당은 교차랑 천장 위에 네 면이 창으로 된 랜턴(lantern)탑 (빛이 들어오는 탑)을 지어, 높은 랜턴탑에서 교차부로 빛이 내려와 성당 중심을 밝힌다. 하늘나라를 앙망했던 중세 기독교 사상이 예술로 승화돼 내 앞에 있다.


성당 교차랑 랜턴탑


먼, 


거친 발바닥 날 선 가시 찔리며 

멀고 먼 길, 맨발로 걸어

발바닥 갈라져 검은 피 흐르며 다시 터져 

걷고 다시 걸어

불타는 갈증 가누려 목 길게 내밀어 

쌍봉우리 낙타 흉내 내며

망망 사막 건너

찬 이슬 내리는 새벽

조각달 우러러

선잠 들면

엄지와 검지 발가락사이 비집고 들어와

집게 꼬리 내리고 곤히 잠드는 전갈 한 마리

동트는 새벽, 벌떡 일어나 

온몸 앞으로 기우려

모래 위에 발자국 남기며

다시 걸어 

산정에 올라 

여기, 

당도해 

누워있는 십자가 가슴 위 

흰 목뼈 드러내며

마른 어깨 내리고 

무릎 꿇어 

기도 하나니 

밝아오는 아침 

먼, 어디서 내리는 

몸 저리도록 따뜻하게 감싸는

빛무리,

은은하게 

눈부시지 않아 은은하게 

내려 

언 몸 녹이는

전갈 서슬 푸른 맹독 

따뜻하게 녹이는

은총 아래 

낮게 엎드린 

변색 도마뱀 한 마리


고딕 성당에서 처음 만나는 장미창 

    성당의 북쪽 익부, 서쪽 파사드, 동쪽 내진 끝에 장미창이 있다. 고딕 건축 역사에서 처음 제작한 북쪽 익부의 장미창은 중심 장미창과 중심 장미창을 에워싸는 7 개 작은 장미창 셋트로 구성되어 있다. 장미창은 가운데 큰 장미창을 에워싸며 작은 장미창들이 피어난다. 교차부에서 북쪽 익부를 바라보면 소담한 장미창을 볼 수 있다. 중심 장미창에는 철학을 상징하는 여신을, 중심창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장미창에는 수사학, 문법, 논증학 등, 학문을 상징하는 여신들을 새겨 넣어 라옹 신학파의 명성을 보여준다. 장식 없이 심플한 디자인이어서 집을 지은 사람들의 순박한 마음이 읽힌다. 



성당 북쪽 장미창


    동쪽 내진 끝의 후진에는 긴 뾰족 아치창과 그 위에 있는 장미창이 하나의 세트로 성당 동쪽 벽 전체를 채우고 있다. 직경이 10 미터나 되는 큰 장미창에는 그 중심원에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안고, 오른손에는 장미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성모가 정좌하고, 중심원이 파문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가면서 천사들이, 12 제자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24 장로들이 성모를 에워싸고 있다. 진한 코발트 배경에 붉은 띠를 두르고 동심원 안에는 흰, 붉은, 노란, 초록빛으로 다양한 형상을 새긴 색유리를 넣었다. 장미창 앞에서 마주보면 형상마다 다른 빛깔로 우러나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부분 장미창들은 저 높이 있어 자세히 감상할 수 없지만, 여기선 내진 뒤 후진 회랑에서 바로 올려다 볼 수 있어 자세히 경험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고딕 성당의 심불 마크인 장미창을 처음 만난다.

성당 동쪽 장미창


성당은 수많은 문화재를 보관하고 있지만, 아주 중요한 유품은 천년 가까이 된 ‘라옹의 신성한  자화상 (The holy face of Laon)’인데, 길이가 44cm, 너비가 40cm 정도 되는 나무판을 얇게 파서 그 안에 황금을 입히고 그 위에 그리스도를 그린 성상이다. 작은 성상이지만 뛰어난 비잔틴 예술의 내공이 느껴진다. 교황 우르바노 4세 (Urban IV(1260-64))이 1249년, 트로아 대주교였을 때 시토회 수도원에 기증했고, 시토회 수도원에서 보관해오다가 1795년부터 라옹대성당에 이전하여 보관해왔다. ‘사람이 그리지 않은 성화’라고 불리는 이 성화는 기적의 힘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기에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이 성화를 찾아 방문했다. 이 성화 앞에는 언제나 촛불이 타오르고 있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신성한 잘화상


안개비 내리는 광장에서

    아침 일찍 산정에 올라 성당을 감상한 뒤 성당 앞 광장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안개비가 내리고 있다. 인적 없는 월요일 아침, 낮게 깔린 안개에 잠겨 있는 광장. 조용하다. 재작년 5월 하순에도 성당을 순례했다. 성당을 감상한 뒤 라옹 구도시를 돌아봤다. 앤티크 오토쇼가 한창이었다 (해마다 5월이 되면, 유럽 3대 안티크 모터 쇼 중 하나가 여기서 열린다.). 각양각색의 앤티크 차들이 광장 뿐 아니라 길거리와 골목까지 전시되어 있었다. 오토쇼 감상한 뒤 폭스바겐 무당벌레차를 운전하며 신도시로 내려와 다음 행선지인 랭스로 가려고 차도로 들어섰다. 차도 양쪽에 남녀노소들이 깃발을 들고 빈틈 없이 있었다. 안전 바리게이트까지 쳐져있었다. 무슨 퍼레이드가 있나? 싶었는데, 백미러로 뒤를 보니, 앗! 그 앤티크 차들이 앞 다투어 내 꽁무니를 쫓아온다. 가속으로 달아나니. 아뿔싸! 앞에도 앤티크 차들이 줄지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졸지에 앤티크 차 퍼레이드 사이에 샌드위치가 됐다. 아니 도대체 어찌된 거야. 결국, 차창을 활짝 열고 크게 팔을 휘저으며 “랭-스 래-앵스” 크게 소리쳤다. 얼마가 지났을까. 마침내 경찰이 연락을 받았는지 바리게이트를 열어놓고 나가라고 손짓하며 소리친다 (사진 19). 다행히 골목길로 들어와 랭스로 가는 안내 화살표를 따라 큰길로 들어서니 또 다시 안티크 괴물들이 사이에 끼였다. 저 괴물들이 또, 도대체 왜?  내 인생도 언젠가 한번쯤 주목 받고 싶다는 소망은 있었지만 이건 아니지. 차장을 열고 광폭하게 화살표 손짓을 하며 “랭스, 랭스” 외치며 따라붙는 괴물들을 가까스로 따돌렸다. 서너 불럭 지나서야 랭스 방향 표지판를 만났다. 라옹 외곽길로 나오니 밀밭이 펼쳐진다. 랭스로 가는 국도다. 그 날, 앤티크 차 몰며 나를 쫓아오던, 내가 쫓아가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처럼 현재에 있겠지. 내가 있는 현재는 적막하다. 이슬비 빗살이 굵어진다. 빗살이 따뜻하다. 

라옹시 앤티크 카 퍼레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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