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신전’ 파리대성당
파리대성당이 없는 파리를 상상할 수 있을까? 성당은 파리이며, 파리의 긴 역사 가운데 성당은 우뚝 서 있다. 성당은 센강에 떠있는 시테섬의 ‘명당’ 자리에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고딕 건축은 몰라도 파리대성당은 안다고 할 만큼 너무나 유명한 성당이다. ‘유럽 최초의 도시’로 불리는 파리는 시테섬에서 시작됐고, 시티라는 어원도 여기서 나왔다. 성당은 파리 관광에서 가장 많이 찾는 명소다. 하루에만 3만5천명 정도 사람들이 성당을 찾는다고 한다. 또한, 성당은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상징이기도하다. 성당 앞 광장이 프랑스 도로의 기점이 된다. 성당은 거의 6백 년 동안 프랑스 왕립 교회로 자리잡았다. 프랑스 대혁명에 성당이 크게 파괴됐지만, 19 세기에 복원됐고, 여기서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올렸고, 1차, 2 차대전 국가 추모예배가 열렸다. 드골 등, 위대한 프랑스 대통령 장례식도 여기서 거행됐다. 이렇게 성당은 ‘프랑스의 신전’으로 프랑스 역사에 깊이 녹아 있다.
초기 고딕 양식에서 높은 고딕 양식으로
파리대성당은 초기 고딕 양식에서 높은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 성당이다. 성당 건축은 200 년 동안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대역사였다. 성당은 1163 년 초기 고딕 양식을 기초로 높게 짓기 시작했다. 하지만 짓는 도중 초기 고딕 양식이 감당하기엔 천장이 너무 높고 안정감이 부족해 성당 외곽에 공중 버팀벽을 건축사에서 처음 세우고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높은 고딕 양식을 따라 성당 전체를 수십년 동안 리모델링했다. 그리고, 리모델링을 한 뒤 백여 년동안 서쪽 파사드와 남쪽과 북쪽 익부는 레요낭 양식으로 확장 개축하고,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측랑을 확장해 레요낭 양식으로 수십 개의 예배소 지었다.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새로운 건축 양식 따라 실험과 실패를 거쳐 시공 한 뒤 200년이 지나서야 마침내 성당을 마무리 했다. 그래서, 한 지붕 아래 다양한 고딕 양식을 어우르는 성당이 탄생했다. 성당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크게 파괴돼 허물어 질 위기에 있었다. 다행히 19세기 중반 성당 복원 운동이 일어나 비올레 르-뒤크의 주도 아래 20여 년 동안 성당을 재건축해 오늘날 지금 우리가 보는 성당으로 다시 태어났다.
비례감이 뛰어난 성당 구조
성당은 파리 도심 센강 가운데 시테섬 끝에 자리잡아 풍광이 뛰어나다. 센강의 투르넬다리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마치 하늘나라로 노 저어 가다 센강에 잠시 노를 내리고 정박한 노아의 방주 같다. 성당의 머리 부분인 후진이 뱃머리, 첨탑은 돛대, 서쪽 파사드는 선미, 활처럼 유연하게 휘어진 공중 버팀벽은 강에 길게 드리운 노... 건축 역사에서 처음 시도한 공중 버팀벽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바라볼수록 다만 감동이 가득할 뿐…
성당은 뛰어난 기하학적 구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특히, 기하학적 구조가 주는 아름다움은 서쪽 파사드와 성당 내부 구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서쪽 파사드는 가로 14 미터, 세로 21 미터의 직사각형 모듈 블럭을 입구층과, 그 위 장미창층에 각각 세개씩, 장미창층 위 양쪽에 두개 블럭을 종탑으로 올리고, 종탑 사이에는 직사각형 빈 공간을 두어 모두 9개의 직사각형 모듈 블럭을 쌓아 올리는 식으로 지었다. 그리고 각 층 사이 열주와 조각층을 둘러 수직성에 수평성을 더해 균형 잡힌 안정감을 이루었다. 그래서 서쪽 파사드 탑 높이가 63 미터나 되지만 압도하는 무게감보다 차분히 다가오는 안정된 느낌이다. 다른 고딕 성당 에서는 찾아 보기 드문 기하학 구조의 미학을 이루었다. 화려한 장식으로 꾸미지 않아 날리는 감성보다 절제된 기하학의 아름다움이 돗보인다. 보고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다. 서쪽 파사드는 레요낭 건축 양식의 대작이다.
입구층 남쪽은 성 안나문, 북쪽은 성모의 문, 가운데는 최후심판문으로 되어있다. 중심 입구인 최후 심판문에 그리스도가 네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사후의 영혼들을 심판하고있다. 그리스도의 눈빛이 단호하고 자태는 엄숙하지만 공포감보다는 권위있는 미남 얼굴에 따뜻한 느낌이 숨어있음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리스도 발 아래에는 죽은 사람들이 관을 비집고 나와 천상과 지옥은 갈림길에서 미카엘 천사장의 심판으로 받고있다. 로마네스크 성당처럼 아주 무서운 공포심보다는 참회하는 슬픔을 강조했다. 인간적인 향기가 스며든 레요낭 양식의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수직의 공간
성당 내부는 높고 길다. 여기서 고딕 건축 역사에서 처음 높은 수직의 공간을 만난다. 십수 년 전 파리 여행 중 성당을 처음 찾았을 때 무심코 높이 떠 있는 것 같은 공간을 올려 보았다. 문득, 내리치는 신성한 경외심에 사로잡혀 저 높은 공간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오랫동안 붙박혀 있었다. 갑자기 내 영혼을 빼앗긴 것 같은 충격이었다고 할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놀라운 감동의 충격이 나를 머나먼 고딕 성당의 순례길로 이끌었다.
여기서 고딕 성당 건축사에 처음 수직성을 강조한 높은 궁륭이 등장한다. 아케이드 기둥머리에서 3 개의 복합기둥이 솟아 궁륭 교차 늑재 이음새에서 곧장 교차 궁륭 늑재와 연결되고, 반대쪽에서 똑같이 올라오는 늑재와 만나 높이 솟은 공간을 완성한다. 궁륭 높이가 33 미터 넘어 성당 구조의 중심이 높은 수직성을 강조했다. 대부분 고딕 성당들은 신랑과 신랑 양쪽 회랑의 3랑식이지만 파리대성당은 신랑 양쪽 각 2개 측랑으로 되어있어 5 랑식 구조이며 더 나아가 바깥쪽 측랑을 확장해 구간마다 예배소를 지어 높고, 길고, 넓은 성당이 되었다. 성당을 둘러싸고 있는 예배소가 모두 37 개나 된다.
성당 내부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서쪽 파사드처럼 기하학의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성당 내부는 서쪽 파사드처럼 직육면체 기본 모듈을 블럭처럼 길게 3층으로 쌓아올리는 식으로 디자인했다. 신랑의 아케이드층 양쪽에 각각 2 개씩 직육면체 블럭을 놓은 식으로 두겹 측랑을 짓고, 그 위에 직육면체 모듈로 갤러리층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직사각형 채광창으로 얹어 3층 구조으로 이루었다. 이렇게 성당 내부는 수평과 수직으로 통제된 기하학적 질서 아래 격자형 불록으로 마치 공간을 그물처럼 짜나가는 식으로 지은 콤팩트한 구조다. 절제된 기하학의 조화가 이루는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하지만 샤르트르대성당 같은 높은 고딕 양식의 성당들처럼 부분의 공간들이 서로 통하면서 전체 공간을 만들기 보다는 나누어진 격자 공간들이 모여 있는 듯 그래서 막혀있는 느낌을 주고, 성당 내부가 어둡다. 성당은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융합해 통일된 하나의 공간을 이루는 높은 고딕 양식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다.
레요낭 양식으로 빚은 장미창
성당의 하이라이트인 북쪽과 남쪽 장미창을 감상하자. 양쪽 익부 파사드 벽의 윗 절반은 장대한 장미창이 차지한다. 직경이 15 미터나 되는 큰 창이지만 창 틀이 가늘고 정교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이 가벼운 느낌을 준다. 레요낭 양식으로 지은 양쪽 장미창은 빅뱅처럼 우주로 폭발하는 천국의 빛을 채색 유리에 담아 냈다. 레요낭 양식이라는 용어도 빛이 사방으로 퍼진다는 뜻이다. 북쪽 장미창은 아기 성모자상이 중심이며 하늘의 빛이 팽창하는 에너지를 강조했다. 남쪽 장미창은 그리스도 구원의 빛이 중심이다. 이 창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려고 북쪽 창보다 따뜻하고 우아하게 붉은색과 진한 코발트색을 배경으로 깔고, 창 둘레를 울긋불긋한 장미잎 무늬로 장식했다. 이 두 장미창은 레요낭 양식의 장미창 중 으뜸으로 꼽힌다. 무색의 빛이 장미창을 통과하면서 오색으로 채색돼 어둑한 성당의 공간을 하늘의 빛으로 수놓는다. 19 세기 파리대성당을 재건축한 비올레 르-뒤크는 8 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성당을 처음 방문 했을 때 장미창을 보며 소리 질렀다. “엄마, 저기 봐, 장미창이 노래를 불러!” 이 체험이 씨앗이 되어 그는 훗날 고딕 건축 부활의 주춧돌 뿐 아니라, 고딕성당 복원의 중심이 됐다. 남쪽 장미창은 19 세기에 르-뒥이 불안전한 창을 해체해 15 도 각도를 돌려 지금 모습으로 재건축했다.
부활절을 며칠 앞 둔 2019 년 4월 15일 저녁, 800여 년의 프랑스 역사가 녹아 있는 성당이 대화재에 휩싸였다. 지붕은 전소되고 성당이 무너지는 아슬아슬한 위기에 처했지만 특공대 소방대원들의 사활 건 진화 작업으로 다행히 건물은 허물어지지 않았다. 성당은 가장 빠른 거북이 걸음 속도로 재건축하고 있다. 2025년 파리 올림픽 이전에 새로운 성당 희망을 품으며… 새롭게 태어난 성당 앞 광장에서 환희의 아침 종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