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공동창업 스토리
아빠와의 공동창업 스토리
우리 아빠는 1959년생, 개띠다. 30년 동안 재봉틀과 함께해 온 테일러. 한때는 1인 테일러샵을 운영하면서 단골손님들의 맞춤 정장을 만들어주던 그 시절이 있었다. 아빠의 손끝에서 탄생한 옷들은 그들의 인생에 녹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은 흘렀고, 맞춤옷을 찾는 사람도, 아빠의 일도 서서히 사라졌다.
내가 아빠의 손기술을 다시 바라본 건, 코로나가 모든 걸 멈춰 세운 그때였다. 우연히 아빠가 만들어준 마스크를 썼는데, 그 촉감과 섬세함이 너무 특별했다. 단순한 마스크가 아니었다. 마치 아빠가 나를 위해 모든 정성을 담아 만든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다.
"아빠, 이거 어떻게 만든거야, 너무 편해"
그때 나는 아빠의 감각이 여전히 시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마스크를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서 웨딩 마스크를 만들어보게 되었고, 점점 입소문을 타고 팔리기 시작했다. 아빠와 나는 그렇게 공동 창업을 시작했다. 아빠가 디자인과 샘플 작업을, 나는 기획과 운영을 맡았다. 그 마스크가 네이버 1페이지에 오르고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을 때, 아빠의 손기술이 처음으로 온라인 세상과 만난 순간이었다.
아빠와 술을 한잔 할 때마다 내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아빠 : 난 하고 싶은 참 많아
나 : 뭐 해보고 싶은데?
아빠 : 작업실을 만들어서 옷도 다시 만들고 싶고,
근데 나이가 들어서 뭘 하기가 겁나네
아빠와 술잔을 기울일 때면 아빠는 '늘 하고 싶은 것이 많다'라고 했다. "내가 아직 건강한데, 뭐라도 해보고 싶다"라고. 그 말에 나는 아빠가 여전히 젊고, 꿈이 가득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항상 핀터레스트에서 리폼 작품들을 보고 구상하셨다.
나는 아빠의 65번째 생일 선물로 새로운 사업자등록증을 준비했다. 직접 이름을 고민하고 상표 등록도 마쳤다. 너무 맘에 드는 이름이었다. 작은 공방이지만 전체 사업 방향을 구상했다. 주택 1층을 리모델링하고 간판을 달아 아빠와 함께 작은 의류 리폼 공방을 열었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2차 리모델링과 재봉틀을 더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곳은 아빠의 놀이터이자 새로운 시작점이었다.
재봉틀 클래스를 열어 아빠의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을 모으는 일을 시작했다.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패션 회사 직장인, 간호사, 은퇴한 선생님, 창업 준비자 등 대부분 직장 퇴근 후 이곳을 찾아오고, 인근 대학교 패션학과 학생들도 과제를 들고 아빠를 찾는다. 공통되게 말한다. '손기술이라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없다고'
상반기 신규 리폼 고객만 500명이 넘었다. 80% 이상 대부분은 재고객이 된다. 신기한건 대부분 20-30대 젊은 친구들! 그들의 의뢰 디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독특하고, 개성이 넘쳤다. 아빠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자신이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빠에게서 단순히 재봉 기술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30년 경험과 옷을 다루는 그 섬세한 감각까지 배워가고 있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은 손으로 만든 것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긴다. 기계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의 감각과 마음이 담긴 작품들. 아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옷을 보고, 그 기술을 배우려는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볼 때마다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인간의 손맛은 결코 대체될 수 없다는 사실을.
지난주 AI 수업에 교수님이 모라벡의 역설(Moravec's Paradox)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에게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쉬워 보이는 일들, 손끝의 감각이나 운동 능력 같은 것은 인공지능과 로봇에게는 오히려 가장 어려운 과제다. 반대로, 우리가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인지 작업은 기계가 오히려 쉽게 해낸다. 이런 역설적인 현상이 바로 모라벡이 말한 그 역설이다. 그래서일까,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빠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섬세함은 대체될 수 없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이렇게 설명했다. "노동력은 점점 희소해지는데다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은 더 좋아지고 있다. 블루칼라 노다지가 터졌다"
우리 공방에는 이렇게 적힌 문구가 있다. "돈 버는 손기술은 평생 남습니다." 이 문구는 그저 가게의 슬로건이 아니다. 아빠의 삶이 담긴 철학이다. 기계로 대량 생산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다시 손으로 만든 것, 정성과 시간,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원하고 있다. 아빠의 손재주는 그런 가치를 담아내고,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 시대에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우리 아빠의 손재주는 그 명확한 증거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작업, 사람의 손과 감각이 필요한 그 작업들이야말로, 앞으로 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지금 아빠는 단순히 일을 넘어서, 새로운 형태의 '생존기술'을 배우고 전수하고 있는 셈이다. 아빠는 그 기술로 평생을 살아왔고, 나는 그 기술이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임을 믿고 있다.
아빠는 종종 내게 말한다. "네가 없으면 나는 못해." 그리고 나도 말한다. "아빠 없으면 나도 못해."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매주 있었던 일을 공유한다. 소위 요즘 친구들의 패션 트렌드를 아빠에게 가르쳐주고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와 용어도 공유해 준다.
이 작은 공방에서 우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빠에게는 더 나은 배움을, 더 큰 경험을 쌓여가고 있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진행한 아빠와의 소소한 창업이 4년차를 지나간다. 이 일은 내게 가장 뿌듯한 과정이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대화가 더 풍성해졌고, 아빠가 일하는 방식을 더 알게 되었고, 사람 그 자체로서의 아빠 모습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깨달았다. AI와 자동화가 아무리 세상을 바꾸어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결코 낡지 않는다는 것을. 기술이 남는다는 것을, 아빠의 손이 그 증거다.
Korea Podcast Expert
18년 라디오, 팟캐스트 PD ・ 오디오 콘텐츠 산업 연구자
정예은 ㅣ 오디어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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