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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훈 Oct 13. 2023

구름이의 진단명

현대전에서 특수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전면전을 벌인다면 엄청난 손해로 승자 없는 전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해서 그날 아내와 내가 벌였던 전투도 정규전이 아닌 특수전이었다.

정확히는 기만작전의 메커니즘을 따랐고, 양동작전의 형태였다.

[기만작전 : 적이 오판하도록 유도하여 적을 유인하거나 적의 기도를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작전]

[양동작전 : 기만작전의 하나로, 적의 경계를 분산시키기 위해 상대의 주의를 끌며 적을 속이는 작전]

해군 UDT를 전역한 내가 특수전에 대해 잘 아는 만큼, 우리의 작전 수행은 군더더기 없었으며 확실했다.

이것은 그 작전에 대한 기록이다.

‘작전명, 구름 납치’


우선 바로 케이지를 내려놓는다면 구름이가 우리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케이지를 눈으로 확인한 즉시 우리의 손이 닿지 못하는 어딘가로 숨어버렸을 테고,

구름이를 병원에 데려가 검진과 접종을 하겠다는 우리의 계획은 그저 이루지 못한 꿈 중에 하나가 될 뿐이었다.

몰래 케이지를 내린 뒤, 구름이를 안아서 잽싸게 케이지에 넣어야 했다.

다만 작은 문제는 놈이 케이지가 놓인 옷장 바로 앞 침대에 누워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린 둘로 나뉘어 움직였다.

우선 와이프가 구름이를 안아주었다.

구름이는 와이프의 안아줌을 사랑으로 알았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건 기만일 뿐이었다.

와이프가 구름이를 안아 이불로 덮으며 이뻐해 주는 척?을 했고, 그 틈에 내가 흔적을 남기지 않는 뤼팽처럼 단 하나의 소리도 남기지 않고 케이지를 내려놓았다.

완벽한 기만을 마친 와이프는 이제 망설일 것이 없었다.

구름이를 그대로 번쩍 들어 케이지에 넣었다.

양동작전의 성공이었다.

크으…

작전을 완료했을 때 맛볼 수 있는 쾌감을 오랜만에 맛볼 수 있었다.


케이지에 들어간 구름이는 내가 들어본 가장 서러운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병원 간다는 사실을 알고 기죽은 모습으로 세상 서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긴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우린 좋은 엄마 아빠이니까 구름이가 더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줘야 했다.

우선 옷으로 위를 덮어서 어둡게 만들어주고 구름이를 달래주었다.

그리고 세상 조심스레 구름이를 옮기기 시작했다.

케이지가 흔들리지 않도록 온몸의 근육을 케이지에 집중하며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조심스레 타고, 조심스레 내리고.

계단은 흡사 계단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도록 부드럽게 내려왔다.

구름이 입장에서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줄 알았을 것이다.

[내 다리근육으로 만든 본격 수동 에스컬레이터.]


그렇게 조심스레 구름이를 차에 태우고 또 차를 운전해 동물 병원에 도착했다.

곧 진료를 받는다는 걸 아는 건지 서러운 울음소리가 극에 달했다.

구름이를 달래다가 이내 진료실로 들어갔다.

사실 나는 그때부터 조금 걱정이 되었다.

구름이는 천식도 있었고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많이 작았다.

그래서 검진 결과 혹시 아픈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 바로 앞에서 바짝 얼어버린 구름이.

선생님이 구름이의 무게를 재고 청진을 시작했다.

청진기를 구름이 여기저기에 갖다 대는 시간이 한참이라 느껴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이 몰려왔다.

’왜 말이 없지?

문제가 없다면 이상 없다고 빨리 말해줄 텐데…

혹시 어디가 안 좋은 건가?

요즘 한쪽 눈을 찡긋거리던데 아픈 거였나?

더 빨리 데려왔어야 했나?’

온갖 걱정이 나를 뒤덮었다.


그 길었던 청진을 끝내고 청진기를 벗어서 내려놓기까지 선생님이 말을 하지 않았다.

순간 겁이 났다.

내려놓고도 잠시 말을 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선생님을 보며, 내 걱정은 확신이 되어갔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그리고선 선생님이 입을 열더니 말했다.

“구름이는 언제 봐도 참… 미묘입니다.”

[진단명 ‘미묘’]

상황에 맞는 말은 아니었지만, 걱정하고 있던 내게는 긴장이 다 풀리는 감사한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긴장이 풀렸을 아내가 구름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겁도 안 나나 봐 떨지도 않네.”

그러자 선생님이 구름이를 쳐다보며 말했다.

“심장은 지금 터질 거 같아요.”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구름이에게 접종을 완료하고, 케이지에 다시 구름이를 넣고 뚜껑을 닫자 신기하게도 구름이가 울음을 뚝 그쳤다.

싫은 일들이 모두 끝났고 이제 집에 간다는 걸 아는 듯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막내가 미묘임을 의학적으로 진단해 주신 대단히 안목 있는 수의사 선생님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모든 부모들이 그렇듯, 자식이 이쁘다는 칭찬을 듣고 대흉근이 웅장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쁜 내 새끼.]


집에 와서는 연장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이에게 심장사상충 약을 발랐기에, 낯선 냄새에 겁먹은 이브[첫째]가 구름이에게 하악질을 하다가 장농 위로 올라가 내려오질 못했다.

우리 ENTJ 부부는 다시 한번 기만작전을 펼쳤는데,

우선 츄르라면 환장하는 이브를 츄르로 유인했고, 이브가 츄르에 집중하는 동안 손수건으로 구름이와 이브를 번갈아 문질러 놈들의 냄새를 희석시켰다.

그리고 확실힌 마무리로 이브에게도 심장사상충 약을 발라버림으로써 모든 작전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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