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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도훈 Oct 31. 2022

신상스크래처와 나비효과

어딜 가서 무얼 했던 날인지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집으로 가는 길에 거제 지하철역을 지나쳤는데,

거제역 건너편에 반려동물용품샵[굉장히 크고, 반려동물을 안 키우는 사람도 가보고 싶게 생긴]이 보였고,

“저기 한번 가봐야 하는데” 라고 그냥 해본 너의 말에,

내가 “가볼래?” 라고 답하면서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가끔 살다 보면 별거 아닌 작은 선택이 너무 큰일을 빚어낼 때가 있는데,

그때 미리 알았더라면 돌이킬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경우가 그랬다.

우린 그날 그곳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샵에 들어서서 우선 규모에 놀랐다. 강아지 용품, 고양이 용품, 장난감, 간식, 사료, 화장실, 모래, 강아지용 휠체어 등등.

많은 것들에 눈을 빼앗겼지만, 우린 소파 모양 스크래처[고양이들이 발톱 관리, 영역 표시 등을 위해 긁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용품]앞에서 멈춰 섰다.

“이거 사다 주면 애들이 정말 좋아하겠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 채 기뻐할 아이들의 모습에 우리는 설렜다.


집에 들어가자 이브가 튀어나오길래, 어떤 기대를 가지고 스크래처의 비닐을 살짝 뜯어 바닥에 내려줬다. 놈은 안쪽 깊숙이 침투해 발톱 파편을 흩날리며 스크래처를 온몸으로 쥐어뜯기 시작했다.

역시 놈은 기대에 부응하는 고양이였다.

기뻐하던 이브… 하지만 난 거기서 멈췄어야만 했다.


잠시 뒤 포장을 다 뜯고 이브가 정식으로 소파 스크래처에 올라왔다.

뒤에서 아내가 그대로 들어주면 좋아한다고 했다.

놈이 좋아하는 걸 참을 수 없던 나는 이브가 올라간 스크래처를 통째로 들고 안방으로 이동하며 흔들어줬다.

실제로 이브가 굉장히 좋아했고 몸을 부르르 떨면서 공중에서 스크래처를 뜯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개찌릉내가 코를 찔렀다.

혹시나 해서 이브 꼬리 쪽 냄새를 맡아봤는데,

“어우 냄새야!!!”

몸을 떨었다기보다는 지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신상스크래처, 공중스크래처, 나갔던 인간들의 집 복귀.

이 중 하나만이라도 극흥분인데 그 셋이 동시에 이루어졌으니 이브로써도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뭐 여튼 그렇게 놈은 냥빨을 당했다.

[이브가 절규하며 냥빨을 당하기까지, 구름이는 그 모든 광경을 캣타워에서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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