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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아 할아버지 Oct 02. 2024

[스토리’n 클래식] 소년 음악가의 꿈

<한여름 밤의 꿈> 세 번째 이야기

로아의 성장 과정에서 할아버지 마음에 생생하게 담긴 모습들이 있구나. 로아가 바이올린을 켜면서 노래까지 부르던 모습은 특히나 생생하단다. 20개월쯤부터 할머니의 도움으로 바이올린을 잡고 활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지. 베이비 바이올린이지만 로아는 선채로 어깨와 턱으로 받치고 있기 벅차했고 곧이어 바닥에 주저앉아 두 발 사이에 바이올린 머리를 끼고 활로 긋곤 했지. 그래도 바이올린에서 나는 소리에 신이 나곤 했어.



활 긋는 것이 조금 익숙해지니, 어느 때부터인지 로아는 바이올린 소리에 맞춰 노래까지 불렀단다. 첫 노래가 ‘섬집아기’였지? 바이올린 소리를 내면서 그 노래를 마지막까지 부르는 모습에 어른들은 당연히 깜짝 놀랐고. 놀란 어른들의 반응에 로아가 보인 표정은 더욱 재미있었구나. ‘거봐, 놀랐지요?’ 이후로 로아는 그런 장면을 연출할 때마다 어른들을 바라보며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무언의 말을 건넸지. ‘이것 좀 들어보실래요?’



‘이것 좀 들어 보실래요?’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을 들을 때마다 할아버지에게 떠오르곤 했던 소년 멘델스존의 표정이란다. 로아의 바이올린 ‘연주’ 사건 이후로는 로아의 모습도 겹치게 되었고. 이 멋진 서곡이 멘델스존이 작곡가로의 꿈을 키우던 17살 때 만들어졌으니, 충분히 긍지를 가질 만했지. 멘델스존은 자신의 꿈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한단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음악적 환상으로 만들게 된 소년 멘델스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팰릭스 멘델스존이고 이제 17살입니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지금은 음악을 더 좋아합니다. 연주도 좋아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것은 더 흥미롭습니다. 제가 셰익스피어라는 분이 쓴 <한여름 밤의 꿈>을 읽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저는 남녀 간의 사랑과 요정들, 숲 속의 마법 같은 세계에 흠뻑 빠져들었어요. 특히, 퍽과 같은 장난꾸러기 요정의 모습이나 사랑을 위해 숲 속으로 도피한 허미아와 같은 멋진 아가씨의 행동, 보텀과 같은 우스꽝스럽고 유머러스한 인물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제 머릿속에는 음악이 펼쳐지는 겁니다. 셰익스피어의 매직 세계를 음악으로 담아내면서 제 마음은 들떴습니다. 제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랄 어른들의 표정을 떠올리면서요. 제가 만든 서곡을 듣고 여러분도 <한여름 밤의 꿈> 속 세상으로 들어가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년 멘델스존이 음악으로 만들 정도로 <한여름 밤의 꿈> 스토리에 빠져든 것처럼, 이 이야기와 멘델스존의 음악은 로아와 같은 어린이들도 많이 좋아할 듯해. 숲 속 요정의 환상 세계와 허미아의 용기 있는 사랑 이야기, 당나귀 머리로 변신하여 요정 여왕의 사랑을 얻는 유머러스한 보텀의 모습이 특히 그렇지. 멘델스존은 스토리에 나오는 인물과 줄거리, 숲 속 분위기를 음악만을 듣고도 떠오르게 만든단다. 소년이 이런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이 대단하지.


멘델스존이 서곡을 쓰던 당시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은 멘델스존의 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 셰익스피어는 1500년대 후반 활동한 영국의 작가로 멘델스존이 살던 독일에 알려진 것은 200년이 지난 1700년대 후반이었지. 당시 독일 최고의 시인이었던 괴테란 분이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읽고 감명받아 본격적으로 독일에 알리거든.

     

“셰익스피어의 작품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 나는 평생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점을 알게 되었다. 작품 읽기를 마쳤을 때, 그의 통찰력과 작품에서 받은 마법 같은 위안을 생각하면, 나는 여전히 앞 못 보는 사람처럼 생각되었다.”


이러한 고백을 들으면, 괴테가 왜 셰익스피어를 독일에 소개하는데 앞장섰는지 이해가 되지. 멘델스존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소개받은 건 괴테를 통해서일 가능성이 크구나. 멘델스존이 12살 때부터 괴테와 자주 만났고, 음악을 좋아했던 괴테 앞에서 피아노 연주도 자주 했단다. 70살이 넘었던 괴테 할아버지도 손자뻘인 어린 멘델스존의 연주를 아주 좋아했다고 해.


어쨌든, 멘델스존은 사람들이 희곡 <한여름 밤의 꿈>을 읽지 않고서도 음악만 듣고도 내용과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을 거야. 그래서 12분 분량의 서곡에 중요한 인물인 장난꾸러기 요정 퍼크와 허미아의 사랑, 보텀의 모습과 행동 그리고 숲 속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요 내용으로 담아내고 있어. 소년 멘델스존의 누나인 훼니의 말처럼.


“팰릭스와 저는 <한여름 밤의 꿈> 스토리에 완전히 매혹되어 흠뻑 빠져들었답니다. 제 동생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등장인물들과 숲 속 분위기를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두 대의 플루트가 4마디의 아련하고 환상적인 소리를 내면서 음악은 시작돼. 마치 바람이 살랑대는 환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무대의 커튼이 열리는 느낌을 주지. 아님, “옛날 옛적에...”하면서 책이 펼쳐지는 장면이 떠오르기도 해. 이후 진행되는 서곡에서 세 개의 주제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숲 속의 요정들이 제1 주제이고, 허미아의 사랑이 두 번째 주제, 마지막으로 보텀이 세 번째 주제야.


요정의 주제가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을 보면 소년 멘델스존에게 요정의 환상 세계가 제일 매력적이었던 것 같아. 바이올린으로 표현되는 (나중에는 플루트가 합세하는) 소리는 마치 요정들이 숲 속에서 가볍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모습과 환상적인 숲 속 정경을 떠오르게 한단다. 멘델스존이 성인이 되어 작곡한 <한여름 밤의 꿈> 부수음악에서는 ‘스케르초’에서 요정 주제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플루트가 요정 퍽을 잘 보여준단다. 연주 영상을 보면 플루트 주자는 퍽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연주를 해. 앉아서 연주를 하지만.


허미아와 젊은이들의 사랑을 다루는 제2 주제는 바이올린과 비올라와 같은 현악기와 목관악기, 호른이 소리를 담당해. 숲 속에서 요정의 장난과 실수로 서로 다툼을 벌이기는 해도 달콤하고 부드러운 멜로디가 아주 아름답단다. 허미아가 화가 난 모습은 커다란 금관악기로 잠깐 표현되기도 하지만, 따뜻하고 부드럽고 하지만 심지 있는 소리를 내는 클라리넷이 허미아의 성격을 그려 보인단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제 사이에 호른과 트럼펫이 주도하는 당당하고 멋진 멜로디가 나오는데 궁중음악이야. <한여름 밤의 꿈> 스토리에서는 왕이 아닌 지방을 다스리는 공작과 그의 성이 나오는데, 스토리에서 중요한 역할은 아니야. 다만, 허미아의 꿈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알려주는 역할에 그치거든. 그런데도, 멘델스존의 서곡에 나오는 이 당당하고 멋진 멜로디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궁중풍의 격조 있고 웅장하고 낭만적 느낌을 준단다. 음악의 비중으로 보면 중요하지.


궁중 음악이 당당하고 격조 있는 음악이라면 제3 주제인 보텀의 음악은 익살스럽고 흥이 저절로 나는 와당탕 음악이구나. 금관 악기와 더불어 베이스나 첼로와 같은 저음 악기들이 모두 동원되어 한바탕 신나게 어우러지는 노래이지. 특히, 바순이라는 악기는 코믹하고 세련되지 못한 소리로 보텀과 그의 일행의 모습을 보여준단다. 제3 주제를 잘 들어보면, 당나귀 머리로 변신한 보텀이 ‘히~하~’하고 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흥이 많은 로아도 이 보텀의 주제를 제일 좋아하지 않을까.



‘이것 좀 들어 보실래요? 놀라실 걸요!’


소년 멘델스존도 이 보텀의 주제를 만들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거야. 그때까지 동물의 소리를 음악에 넣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물론 비발디 사계에서 아름다운 새소리는 음악으로 표현되곤 했지만, 당나귀 울음처럼 동물이 내는 소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은 이 음악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어. 소년다운 발상이구나. 이런 소리를 사람들에게 들려주어 놀라게 할 생각만으로도 소년 멘델스존은 가슴이 뛰었을 것 같아.


<한여름밤의 꿈> 스토리를 17세의 나이에 환상적인 음악으로 멋지게 재현한 것을 보면 소년 멘델스존은 상상력이 아주 뛰어났던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즉각적으로 음악으로 스토리를 구현해 낼 수 있었겠어. 소년 멘델스존도 꿈꾸는 일을 자주 했을 것 같아. 그 습관이 음악 창작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보텀의 꿈’이란 글에서 공상하거나 꿈꾸는 일은 변화된 상황에서 마음 다스림에 필요하다는 점을 살펴보았지. 그런데 꿈꾸는 일이 창의력을 기르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점은 오히려 잘 알려져 있지. 현실과는 다르게 상상이나 공상하는 예술가를 초현실주의자라고 부르지.


살바도르 달리라는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가 있어. 달리는 낮잠을 잘 때 쇠숟가락을 손에 들고 잤다고 해. 자다가 숟가락이 손에서 빠져나와 바닥에 떨어지면서 내는 “땡그랑” 소리를 듣기 위해서였어. 자다가도 그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나 방금 꾸었던 꿈을 그림으로 옮겨 놓기 위해서였지. 꿈이란 깨어나면 바로 기억에서 사라지니 말이지. 달리의 그림은 실제로 꿈속에서나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많거든.


아인슈타인 같은 위대한 과학자도 공상을 즐겨했다고 해. 아인슈타인은 그 공상을 세상과 우주를 이해하는 데 적용하기까지 했단다. 당시에는 그의 주장이 과학계에서는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무시당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공상’은 과학적인 진리로 밝혀지게 되거든.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까지 남기지.


“상상은 지식보다 더 중요합니다. 지식은 제한적이지만, 상상은 온 세상을 담아내기 때문이죠.”


소년 멘델스존이 바로 그랬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의 환상 세상을 음악적 상상으로 담아냈지. 그래서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등장인물들의 모습과 숲 속의 요정 세계를 떠올릴 수 있었고.

        


멘델스존은 분명 신동이었어. 그의 어려서의 음악적 재능은 모차르트와 비견될 만큼 훌륭했지. 하지만, 멘델스존에게서 배울 점은 재능은 타고나는 것 못지않게 노력해서 키워야 한다는 점이란다. 멘델스존이 음악가로서 꿈을 키워가는 데는 타고난 재능 못지않게 환경과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했단다.


멘델스존이 어려서부터 그의 집에서는 매주 일요일마다 유명한 음악가들의 연주회가 열리곤 했다고 해. 연주회 말고도 독서 토론과 강연도 있었고. 멘델스존이나 그의 누나도 어렸지만 어른들의 음악회와 토론회, 강연회에 열심히 참석했단다. 소년 멘델스존은 자신이 만든 곡을 이들 모임에서 직접 피아노로 연주도 했고. 이런 기회를 통해 음악적 재능만이 아니라 지적인 성장을 키울 수 있었겠지. 문화와 학술 현장에 어른과 아이를 구분하지 않았던 어른들의 배려도 배울 점이구나.


멘델스존의 음악적 성장에 환경 못지않게 배움도 중요했단다. 멘델스존은 10살 때부터 음악가 스승의 가르침을 혹독하게 받았어. 칼 프리드리히 젤터라는 분인데,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방식의 철저한 음악 교육을 강조했던 분이야. 멘델스존의 음악이 상상력이 뛰어남에도 탄탄한 구조와 형식을 갖춘 것은 젤터의 가르침 덕분이지. 어린 멘델스존을 지적인 세계로 안내했던 괴테를 만나게 된 것도 젤터를 통해서였고, 성인이 되어서 멘델스존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작곡가인 바흐의 작품을 널리 알린 것도 젤터의 영향 때문이었단다. 바흐가 누구냐고? 이제는 세상의 모든 음악가들이 가장 존경하는 음악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지.



사실, 어려서의 멘델스존은 예외적인 소년이었던 점은 분명해.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으면서도, 음악가로서의 꿈을 키우는데 유리한 좋은 집안 환경과 훌륭한 스승을 만났으니 말이야. 누구나 음악적 재능을 타고나는 것도, 좋은 가정환경과 훌륭한 선생을 만나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겠지.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나름의 타고난 재능이 있으며, 그 재능을 발견하여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도 많이 있단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꿈을 소중히 간직하고 꿈꾸기를 즐겨하고 꿈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겠지.



‘저 좀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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