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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틴팍 Oct 30. 2023

팀장님 퇴사하겠습니다.

#18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다.

약 18여 년의 여정을 마치고, 최근 나는 나의 첫 직장에서 퇴사했다. 마지막 1년여는 육아휴직으로 회사를 떠나 있었지만,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되었던 나의 직장생활은 어느덧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직장에서만 계속되어 왔다. 미국이라는 머나먼 곳에서 퇴사 직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지라 나에게 퇴사는 그저 서류상의 절차였을 뿐, 그다지 큰 감정적인 소용돌이는 없었다. 그래도 막상 퇴사 절차가 마무리되고, 페이스북에 내 예전 사원증 사진과 함께 퇴사 소식을 올리고 나니 다양한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아쉽기도 하고,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수많은 전 직장동료들과 지인들의 격려와 축하(?) 메시지 덕분에 아주 쓸쓸하지는 않았다. 서울이었다면 바로 여러 명과 어울려 작별의 소주 한잔을 했을 테지만, 시카고에서 나의 퇴사를 같이 기억해 줄 친구는 없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회사 정원

다행히 나의 마지막 팀장은 나의 오랜 선배이자 동료였던 분이었다. 내가 2005년 겨울에  입사하고, 한 달간의 합숙 연수를 받을 때 조교 같은 분이기도 했다.(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그때만 해도 대부분의 기업들이 약간 군대식의 합숙 연수를 신입사원들에게 필수로 요구하였다.) 내 18년여의 직장생활의 시작과 끝을 함께해 주는 느낌이라 무언가 기분이 묘하기도 했다. 이런 게 바로 수미상관 구조라 했던가. 미국에 있어서 서류에 사인하는 것들이 불편하고, 2차 상사와 인사팀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어려웠는데, 현재 팀장인 그 선배가 직접 모두 처리해 주었다. 어찌 보면 나는 퇴사할 때도 운이 좋은 편인가 보다.


퇴사 절차는 생각보다 심플했다. 퇴직서 양식에 내용을 기재하고, 1차 상사, 2차 상사의 사인을 받고 나면 끝이었다. 퇴직연금을 수령할 계좌를 만들어야 하고, 계좌 사본을 제출하는 것만 추가하면 된다. 한 회사를 들어오려면 서류, 1~3차 면접, 인성검사까지 봐야 하는데, 나가는 건 이렇게 쉽고 간단하다니, 허탈하기도 했다. 그동안 앞서서 그만두는 수많은 선, 후배 사우들을 지켜보며, 나도 언젠간 퇴사하며 모두에게 메일을 쓸 일이 있겠지 상상만 했었는데, 현실이 된 것이다. 며칠 뒤 약 18년 간의 근무 후에 수령한 퇴직금을 지켜보자니, 그동안 한 회사에서 일했던 나에게 주는 약간의 위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직장생활의 '낭만'을 경험한 운 좋은(?) 세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요즘 시대에는 그 '낭만'이 '열정페이'나 '직장 내 부조리' 등으로 여겨지면서 많이 없어지기도 했다. "예전에 우리 시대에는 이랬다."라고 말을 꺼내는 순간 '꼰대', '라테', '틀딱', '고인 물'로 공격받기 쉬운 세상인 것이다. 선배들의 일은 막내라는 이유로 모두 도맡아 챙겨야 했고, 수많은 부서 회식에 끌려다니기도 했다.(그 끝은 항상 노래방에서의 장기자랑이었다.)  야근 수당, 휴일 근무 수당이란 게 존재하는지 알게 된 것도 2010년대 중반이나 되어서였다. 한 회사에서 꾸준히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당연시 여기고,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온 그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팬데믹 이후, 세상은 이른바 '대퇴사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한 회사에 오래 다니는 것은 미련한 일일 뿐, 그게 커리어 든, 사람 네트워크 든 간에 본인이 원하는 것을 빨리 얻고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직하거나, 창업을 하는 게 미덕인 세상인 것이다. 나야 뭐 개인적인 이슈로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퇴사하고, 심지어 다른 나라에 와서 살고 있게 되었지만.. 요즘 세상에 이런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에 뭔가 안도감이 생긴다. 하지만 그만큼 퇴사 후의 생태계에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자주 들어가 보던 회사 이메일이 정지되고, 사내 어플도 먹통이 되고 나니, 이제야 퇴사했다는 사실이 몸으로 느껴졌다. 이제 나는 00 회사 팀장, 부장이 아니고, 계급장 뗀 그냥 일반인 아무개 씨가 된 것이다. 미국에 와서 지내면서도 그동안은 휴직상태였으므로 무언가 '회사'라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일종의 보험을 든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정말이지 광야에 홀로 선 느낌이 든다. 미국 땅에서는 특히나 나는 영어가 서툰 영주권도 없는 외국인이며, 한국에서의 학력, 커리어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과거가 된 것이다. 앞으로 또 어떠한 미래가 내 앞에 펼쳐질 것인가. 그래 어디 한번 잘 지내보자 인생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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