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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진석 Oct 04. 2022

대한민국 정통사관, Saint

건국신화 제7장(2편)

 빼놓을 수 없는 김재익경제수석의 업적으로, 정보혁명의 씨앗을 뿌린 것이 있다. 경제기획국장으로 있던 시절, 남덕우장관 겸 부총리에게 전화기보급 적체를 해소하기위해 ‘기계식 교환방식’을 ‘전자식 교환방식’으로 교체하자고 건의했고, 기존 제조업체의 강력한 반발에도 77년에는 ‘한국통신기술연구소(KTRI)’를 설치하였으며, 78년에는 가입 전화가 187만대 였으나 82년에는 400만대로 증가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1]

 또한, 김재익은 80년 9월 전자공학박사 오명(과학기술부 장관 겸 부총리)과의 대화를 통해 정보산업의 중요성에 공감하여, 그를 2급 경제과학비서관으로 임명하게 하고 81년 ‘전자공업 진흥 기본계획’에서 3대 집중 과제로 전자교환기 혁신, 반도체, 컴퓨터 산업의 진흥을 지목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오명이 시분할 방식 교환기(TDX, time division exchange)를 개발하려고 할 때, 당시로는 막대한 금액인 240억(당시 10억짜리 프로젝트도 전무)의 예산을 김재익은 강력히 후원하여, 대한민국을 86년 세계에서 10번째로 TDX를 자체 생산하는 국가로 만들었다.[2]

 이 모든 성과의 바탕은 김재익이 해외 경제, 과학 잡지를 탐독하여 세계경제의 흐름을 가장 앞서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Saint 


 운명의 83년, 김재익이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은 사상 유례없는 정부 예산동결이었다. 사실 이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다. 제로 베이스(zero base)를 기반으로 한 그 전해 예산도 43%의 증액예산이었는데,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예산동결은 삭감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85년은 김영삼, 김대중 두 거물이 복귀하는 선거가 기다리고 있는 해였으므로, 84년도 지역구 사업을 할 수 없게 된 의원들에게서 ‘김재익이 미쳤다’, ‘누굴 죽이려고 이러느냐’는 격앙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이번에도 키(key)는 절대 권력자 전두환에게 있었다. 그는 ‘선거에서 불리하더라도 물가는 잡아야 하고 재정 적자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김재익의 말을 신임하고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공무원 임금동결, 보리 수매가격 동결, 6월말 예산동결조치를 차례대로 발표했다.  그 결과 여당인 민정당은 선거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었다. 

 김재익의 물가안정과 시장개방에 따른 국산 산업경쟁력 강화라는 80년대 정책방향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져, 80년대 후반 3저 호황을 맞아 한국경제는 사상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46억 달러, 86년)를 기록하였고 97년까지 고공비행을 계속하였다. 

 

 한편, 김재익이 죽음을 맞이한 ‘아웅산폭탄테러’에 대한 루머 중에, 전두환대통령이 버마(현재 미얀마)를 방문한 이유에 대한 것이 있다.

 친북국가였던 버마를 급하게 추가한 것은 당시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권력을 가지고 있던 네윈 장군의 노하우를 배우러 갔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고, 북한과의 치열한 제3세계 비동맹국가에 대한 외교경쟁에 따른 전대통령의 결정이었다는 주장이 그 하나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방문 5개월 전에 이미 현지 공관에 훈령을 내려 교섭을 지시하였고, 81년 필리핀 방문에서도 암살음모가 이미 발각이 되었으며, 6개국 순방에서 굳이 위험한 버마를 부가적인 목적을 위해 첫번째 방문지로 정한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3]

 결국, 장기집권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버마를 방문했다는 주장은, 극악한 북한의 테러까지도 독재자 전두환에게 덮어 씌우려는 누군가의 음모일 것으로 추측된다. 

 아웅산묘소에서 북한의 폭탄테러로 순국한 한국 최고의 인재 17분의 성함은 다음과 같다.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김동휘 상공부장관, 서상철 동자부장관, 함병춘 대통령비서실장, 이계철 주 버마대사,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하동선 해외협력위 기획단장, 강인희 농수산부 차관, 김용한 과기처차관, 심상우 민정당 총재비서실장, 민병석 대통령 주치의, 이재관 대통령 공보비서관, 이중현 동아일보 사진기자, 한경희 경호원, 정태진 경호원, 이기욱 재무부차관. 


 김재익은 결국 내가 죽음의 길로 안내한 꼴이 되었다. 차라리 그가 원하는 학자의 길을 가게 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을…… 유족들을 뵐 낯이 없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재익은 비록 짧은 인생을 살다 갔지만 꽃다운 청춘을 바쳐 이 나라 경제를 바꾸어 놓았다. 그가 보여 준 공복(公僕) 정신과 경제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원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삼가 명복을 빈다. 

                                      남덕우, <80년대 경제개혁과 김재익 수석>, 57쪽 


          

[1]남덕우, 위의 책, 144~149쪽 

[2]고승철.이완배 공저, <김재익 평전>, 219~224 

[3]전두환, 위의 책, 495~4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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