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걷게 된 길
나는 어릴 적부터 항상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습관이 있었다.
그게 어떤 장르이건, 어떤 소리, 어떤 악기, 어떤 언어 던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들리면
내 귀를 사로잡는 그 무언가가 있으면
내 하루는 그 음악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며칠 후엔
또 다른 새로운 음악으로 하루를 채웠다.
그렇게 다양한 음악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하는, 내 자아가 강하게 추구하던 음악은 항상 클래식 음악이었다.
분명 내가 클래식을 공부하고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내 호기심은 더욱이 클래식 음악을 향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나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과 같은 고전 음악부터 흔히 사람들이 현대 음악이라 알고 있는 프로코피에프, 스트라빈스키와 같은 서양 음악 작곡가의 곡들을 듣고 연주했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야 인터넷이 지금처럼 이렇게 발전되어 있지도 않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찾아 들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클래식 모던' 작곡가 라 부르는 바르톡,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와 같은 음악들 이였다.
그때 당시엔 이 음악들도 충분히 난해하고 특이하게 들렸기에 나에게 현대음악 작곡가 란 소위 말하는 '클래식 모던' 작곡가들에 그쳤었다.
내가 흔히 알던 클래식음악 (고전, 낭만과 같이 일반적으로 듣기에 익숙한 선율과 화성으로 이루어진) 은 19세기 이후로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은 없고
클래식음악 연주자가 연주하는 레퍼토리는 19세기까지 한정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러했기 때문일까?
나에게 '클래식 모던' 작곡가들의 음악들은
새롭고 유니크 한걸 좋아하던 나에겐 아주 재미있는 음악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프로코피에프, 라벨, 쇼스타코비치를 상당히 좋아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디어 매체들이 발달해 갔고
나 또한 점점 성인으로 성장하며 새로운 형태의 '클래식'이라는 음악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현재 살아가는 작곡가들이 이러한 클래식 형태를 가지고 작곡활동을 한다는 것을 알았고, 내가 그동안 알던 것이 아닌 새로운 음악들이 나에게 큰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같은 시대의 음악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음악은 그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음악은 듣기에 아주 단순하고 단조로웠다.
어떤 음악은 내가 이해할 수 있지만 흥미롭지 못했고
어떤 음악은 내가 이해할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흥미롭게 들렸다.
어떤 악보는 알 수 없는 글과 그래픽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떤 악보는 초보자조차 즉석에서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쉬워 보였다.
어떤 악보는 아무런 음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같은 시대의 음악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양한 음악이 존재한다니!
내가 흔히 알던 시대별로 나뉘어 있던 클래식 음악 형식과는 전혀 딴판인 것처럼 보였다.
그 시대별로 존재하던, 고착되어 있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전혀 다른 것들처럼 보였다.
나는 이것들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재미있었고
내가 이미 알고 있는 레퍼토리, 작곡가들보다
새롭게 알아낸 음악들에 더더욱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주관적이지만 내가 느끼기에 정말 흥미롭고 괜찮다!라는 음악들이 내 안에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왜 이렇게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는 걸까?
왜 여느 작곡가들은 대중들이 듣고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을 작곡하는 걸까?
왜 클래식 연주자들은 항상 연주되는 똑같은 레퍼토리만 연구/연주하고 이렇게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음악들에 관심을 두고 연주하지 않는 걸까?
나는 어떤 음악가, 연주자가 되고 싶은가?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모든 연주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질문일 것이다.
예술가는 자신의 자아를 분명히 마주하고 자신이 원하는 길로 나를 잘 인도해야 한다.
자기가 보고 느낀 것들을 주저 없이 어떤 방법으로든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라는 직업일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작곡가가 작곡한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써 살아왔었다.
그러다 무릇, 과거와 지금 현재의 작곡가의 역할에 대해 궁금증들이 생겨났을 뿐이다.
고전음악들을 연습하다 보면 수많은 궁금증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작곡가는 왜 여기에 갑자기 이러한 악상을 썼나?
이곳을 어떻게 표현하면 더 효과적일까?
내가 이해한 이 악보가 맞게 쓰인 악보일까?
악보마다 다 다른 아티큘레이션들 중 무엇을 선택할까?
내 교수님은 이러이러하게 연주하는 게 맞다고 하는데 내 느낌은 달라!
도대체 작곡가가 의도한 음악은 무엇일까?
이러한 수많은 궁금증과 고뇌로 인해 이 세상엔 똑같은 음악에도 다양한 해석들이 존재한다.
당장 유튜브에 '베토벤 월광소나타' 만 검색해 봐도 셀 수 없이 많은 피아니스트가 각자 다 다른 뉘앙스로 이 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해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난 작곡가들의 묘비에 노크하며 ‘무엇이 당신이 의도한 해석인가요?‘라고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고음악은 작곡가 본인이 곡에 대해 설명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연주자들은 곡 해석에 앞서, 작곡가에 대한 연구들과 그가 살던 시대적 배경 그리고 곡의 탄생과정에 대해서 조사를 한다.
클래식 음악 연주 시 가장 중요한 점은 작곡가가 의도한 바를 바탕으로 곡을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연주자들은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성질도 다르고 생각하는 법, 표현하는 법도 다 다르다.
각자 알고 있는 지식의 폭이 다르고 그 음악과 작곡가에 대해 느끼는 결이 다 다르며, 그에 따른 그들만의 주장하는 해석이 있고 아름다움과 고통이 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일은 아주 매력적이다.
이러한 재미에 클래식 고음악 레퍼토리만을 연주할 수 있었겠지만
나의 질문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시대에 초점이 맞춰져 갔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이다.
왜 이렇게 현대음악은 어렵고 난해 한지.
지금 현재의 음악, 문학예술들은 무릇 이 시대의 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떠한가?
수많은 세계갈등이 세상을 휩쓸었던 지나갔던 시대보다 현시대는 비교적 안락해 보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갈등 안에서 살고 있다.
툭하면 전쟁과 폭력을 일삼는 인간의 본성은 바뀌지 않았다.
이 시대의 끝나지 않는, 보이지 않는 갈등의 소음이
지금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일단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지금 현시대에서
창작자들에겐 너무나도 방대한 선택권들이 주어진다.
지금까지 써 내려진 우리 세상의 역사는 길고
그 길 위로 생겨난 수많은 문화와 가치관, 이념을 바탕으로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거기에 전자기기, 미디어,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정보들을 너무나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심지어 불필요한 정보들까지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도 나에게 쉽게 노출이 된다.
정보 과부하, 재료 과부하의 세상에서 창작을 한다는 것은 사실 생각만큼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복잡해지고, 그만큼 작품 또한 복잡해질 수 있다.
지금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예술가들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현재 내가 근대 음악을 주로 다루고 있는 사람으로서 주변을 보면 정말이지, 이 세상에 작곡가들은 넘쳐나고 새로운 음악은 매 순간, 매 초마다 탄생한다.
각자 표현하고자 하는 개성과 아이디어들이 넘치다 보니 개개인 모두 다 특별하다 못해
특별함의 기준점이 모호해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마치 가까이서 보면 예쁜 행성이지만 멀리서 보면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인 것처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말은 이 작업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그들이 세상에서 느낀 스릴과 찾아낸 독특한 감성이 담겨있다.
누구에게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런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감각이 그들에게는 존재하고, 그것을 그들의 방식으로 차분하게 구성해 낸 것이 그들의 음악이다.
왜 그것이 그들에게 아름다울지 궁금하지 않은가?
질문을 던져보자.
이것은 비단 음악에만 관한 이야기는 아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이해하고 공감하려고 해 본 적이 있는가?
해 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태도는 아주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작곡가들은 절대로 그들만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는 연주자로서 그들을 이해하길 원했고,
그들의 음악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길 바랐다.
나는 그들과 소통작업을 하며 그들의 음악이 세상에 이곳저곳 처음 선 보이게 때 나타나는 신비로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음악, 소리의 진정한 의미는 라이브로 연주되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본래 소리라는 것은 매우 추상적인 것이다.
한번 들려지고- 그것은 곧바로 일정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진다. 작곡가는 이러한 소리들을 결합하여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해 낸다.
사실 지금에야 녹음 기술이 발달해서 모든 소리를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만
내가 말하는 음악, 소리의 특별한 의미란,
즉석에서 존재하게 되는 순간의 것을
우리는 결코 두 번 다시 똑같이 시연할 수도, 따라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한번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초연되는 음악이란 나에게 특별하다.
작곡가들과 직접 소통을 하며 그들에 대해 이해하고
연주자와 작곡가로서 서로 간의 아이디어 조율을 하고 곡을 시현하게 되면 그 음악은 그 순간으로써 특별하게 존재하게 된다.
이것은 작곡가 그리고 연주자, 관객에게 모두 특별하게 작용된다. 그리고 이것은 매번 연주될 때마다 순간순간 변화한다.
연주되는 공간의 울림의 다름, 악기의 다름, 연주자의 컨디션, 각자 다른 개성과 이해도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변화 등등.
매번 다르게 초연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는 작곡가가 아니라서 그들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연주자로서 이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는 것은 그들과 같은 마음 일 것이다.
이 무수히 많은 실현의 탄생 속에서 과연 어떤 음악이 계속 연주가 될 것이고 후대에 전달이 될지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베토벤 또한 베토벤이 살던 시대에선 ‘현대 작곡가’였다. 그 또한 당시 초연실패들을 겪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초연 당시엔 관객들이 너무 끔찍하다며 야유를 퍼부으며 공연 도중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작품은 전 세계 무대에서 현재까지 활발하게 오르며 인정받는 작품이 되었다.
그들 뒤로 무수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들과 같은 시대에 살던 작곡가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도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창작자들과 함께 살아간다.
미래에 고이 남을 선별된 작품이 아닌, 아직 걸러지지 않은 작품들의 홍수에서 우리는 아직 허우적 대는 중인 것이기에 현대의 창작곡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어렵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알아간다면
이 창작품들이 결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들 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의 음악은 고음악과 전혀 다른 음악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과거의 것을 끌어다가 현재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니까.
바흐가 없었다면 비틀스 또한 달라졌으리라.
지금 현재 끔찍하게 들리는 음악조차
어떠한 시대의 흐름으로 인해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고 나면 또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또한 오늘의 환상적인 연주가 다음 공연 때 또다시 환상적일 것이란 보장은 없다.
나는 현대음악을 연주하며 이러한 무대에서 빚어지는 우연적인 결과들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빚어지는 결과 또한 또 하나의 과정 이랴.
한날 한치 앞길 모르는 우리의 인생과 다를 게 무엇인가.
나는 결과를 중시하기보다 함께 무언 갈 만들어가는 이 과정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현장에 빠져들었고
계속해서 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가 느끼는 영감을 공유하고 그들 또한 우리를 통해 영감을 받을 때, 그만큼 만족스럽고 보람찰 수 없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발굴해 나가는 스릴. 내 삶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에 나쁜 음악은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이 있을 뿐.
나는 이 일을 통해서
음악을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이 어떤 것인지
악보란 무엇이고 연주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연주하는 그 순간을 어떻게 즐길 것인지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너무 많고
음악에 대한 유연하고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무엇을 연주하던! 그 무대를 더욱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생겼다.
나는 개인적으로 연주자들이 적어도 한 번쯤은
작곡가와 직접 작업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비록 처음엔 낯설고 어렵게 다가올지라도
이 과정 자체가 나는 상당히 값어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이 작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래도 아직 드물다.
이해를 바라는 건 아니지만
한 번이라도 현대 창작자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음악에 임하는 자세는 매우 다를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