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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Mar 17. 2020

'퇴사하고 유학갑니다'에 담긴 것들.

런던에서 살아남기#1


'저 퇴사하고 유학갑니다.'


이 문장이 나를 설명하는 말이 될 줄은 몰랐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해 보였고, 엄청나게 멋있어야만 가능할 줄 알았다.

전자는 맞았지만 후자는 틀렸다.

엄청나게 멋있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을 해낸 지금의 나 역시 그렇게 멋있지 않다.


살면서 한 번은 내 인생의 방향을 예상할 수 없는 곳으로 틀어보고 싶었다.

나만 만들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얼마만큼 과감한 선택인지도 모르고 저질렀다.

그러나 홧김에 한 선택은 아니었다.

원래 있던 자리를 좋아했고, 그 자리를 위해서 오랜 시간 꿈꾸고 노력해 왔었으므로 많이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결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고 힘들었다.

이미 떠나고 싶다고 정해버린 나와 그렇지 않다고 머무르라고 말하는 내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이런 대부분의 경우 새로 생겨난 내가 이긴다. 새로이 생겨난 의지는 그 힘을 다 해버린 의지를 이길 수 없다.


그렇게 원래의 자리를 떠났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축하를 받으며 나 스스로 칭한 '내 꿈의 첫 종착역'에 하차했다.  

그러고 나서 새 자리를 찾기까지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생이 늘 그렇듯이.




받아줄 곳도 기약도 없는데 대체 왜? 이래도 되는 걸까? 지금 이 시기 이 나이에 이런 도전을 해도 되는 걸까? 가능하기는 한 걸까? 만약에 나를 받아 주는 곳이 없다면, 그렇다면?


수많은 물음표들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머릿속에 쑤셔 넣어야 하는 것은 영어 단어임에도 그 안을 채우는 건 이런 질문들이었다. 어쩌면, 아니 당연한 질문들이었고 의구심이었다. 눈 앞에 놓인 불안함에 태연하게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런 와중에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온 마음을 다 해 좋아했던 공연장이 너무 그리웠지만 지금 이 상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그곳을 마주하기 전까지 손톱만큼이라도 더 성장해 있기로 스스로 약속했으니까.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한 채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했다. 울퉁불퉁한 길이었고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가 나를 숨 막히게 했지만 그냥 걸었다. 그래도 무엇이든 되겠지, 무언가는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막연하게 희망을 가지면서.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서류를 작성하고, 인터뷰를 보고, 수시로 메일 확인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나를 위한 새로운 자리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게 런던에서의 일상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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