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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Mar 17. 2020

세상의 끝이 온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 될까요.

읽고 보고 쓰기#1. <해가 지는 곳으로>, 최진영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덮었다. 예고 없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 바이러스는 우리 일상의 모습을 한 번에 바꾸어 놓았다. 외출 시에는 늘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사회적 거리'를 둘 것을 권고받았다. 서로에게 가까이 갈 수도 서로의 표정을 읽을 수도 없게 되었다. 누가 누구를 만났을지 몰라 긴장하고 때로는 서로를 의심해야 하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책 리뷰를 정리하려고 지난 글들을 살펴보다가 자연스럽게 요즈음 우리의 일상이 투영된 이 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에 눈이 갔다. 





당신은 한국을 아는가?
한국은 아직 그곳에 있는가?
-9p.


한국을 '아는지', '아직' 한국이 그곳에 있는지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우리는 우리 주변의 많은 요소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내 주변의 사람들, 공간들, 환경 그리고 국가까지. 그런 당연한 것들 중 하나인 한국의 존재를 묻는 질문에서 이 책은 시작된다.


길 위에서는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었다. 병이 얼마나 퍼졌는지, 인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각 대륙의 도시가 얼마나 파괴되었는지. 눈앞의 추위와 황폐만이 현실이고 그것이 바로 이 세계의 전 부인 듯했다. 우리보다 앞서 떠난 이들은 영영 멀어졌고 돌아오는 자는 없었다.
-46p.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는 전염병에 휩싸였다. 병이 사람을 죽이고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병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아이의 간을 찾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점점 망가지고 세계는 어둠으로, 영원한 겨울로 하나가 된다.

살기 위해 한국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어디 있을지 모를 봄을 찾아 헤맨다. 그 여정에서 등장하는 류, 도리, 지나, 건지 네 사람. <해가 지는 곳으로>는 네 인물의 이야기를 옴니버스식으로 풀어낸다.


한 아이를 잃고 남은 아이와 남편과 함께 한국을 떠난 류, 어린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여정을 이어가는 도리, 거대한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색을 잃지 않는 지나, 따뜻한 바다와 지나를 바라며 어둠을 헤쳐나가는 건지.

소설은 이 네 사람의 시선과 이야기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 찾아온 거대한 어둠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당연하기만 했던 일상을 한 순간에 삼켜버린 어둠과 누구의 의지와도 관계없이 파괴된 그 당연함에서 떨어져 나와 어둠을 헤쳐나가는 사람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그 상황을 돌파해 간다.






아버지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었다. 그 꿈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커다래서, 눈앞에서 내가 잠시만 사라져도 이름을 연거푸 부르며 걱정하던 아버지를 짓눌러 버렸다.
-143p.


권력을 얻음으로써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찾는 지나의 아버지는 가족들을 헤치려는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쫓아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한다. 결국 지나가 군인들에게 당했을 때도 그는 충격을 받거나 마음 아파하지도 않은 채 지나에게 버티면 나아질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어느 밤 고백 성사라도 하듯 건지가 말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아빠도 없고,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한 지금이 차라리 홀가분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고. 적어도 지금은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37p.


꿈이 생긴 지금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하는 건지.

일상이 가능했던 한국에서 오히려 꿈도 희망도 없었던 건지는 '모두가 공평하게 불행한 지금'이 낫다고 말한다. 그리고 건지는 어디에 있을지 모를 '1년 내내 따뜻한 바다'를 꿈꾼다.


이렇듯 전 세계를 삼켜버린 어둠을 대하는 인물들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결국 그들을 삶으로 이끄는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이다. <해가 지는 곳으로>가 도리와 지나의 이야기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도리와 미소가 주고받는 눈빛과 미소의 깨끗한 표정 속에서 마치 내가 보호받는 기분이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공기가 달라졌다.
... 온갖 나쁜 것 속에서도 다르게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 붙잡을 손이 있었다.
-165p.






금방 사그라들 줄만 알았던 바이러스가 우리나라 전체를 덮었고 상황이 급격히 심각해졌던 시기에 나는 짧은 휴가를 가지기 위해 런던에서 서울로 날아간 참이었다. 매일 같이 울리는 재난문자와 하루 종일 확진자 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뉴스,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메시지들, 무엇보다 쉽게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은 모두의 일상에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을 만들었다. 따분하다 싶을 정도로 똑같이 돌아가던 일상의 굴레가 틀어져 예상치 못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요즈음 우리의 삶과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만일 소설처럼 우리의 일상이던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면. 먹고 자고 숨 쉬는 일이 어느 하나 당연하지 않다면. 비정상적인 일이 정상처럼 느껴진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을까?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요소는 결국 무엇일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이 되겠는가. 만약 그 당연한 일상이 당신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면 어떤 삶을 이어나갈 것인가.


지나와 도리처럼 '온갖 나쁜 것들 속'에서 '다르게 존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르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르게 행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그만큼의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나쁜 것들' 안에 그대로 존재하려는 사람들은 늘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와 도리는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어떤 상황이던 가장 최선의, 가장 긍정적인 태도를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원해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떠났고, 어떤 사람들은 작은 도움을 모으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들은 본인이 할 수 있는 배려를 베풀었고, 우리 모두는 적어도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모든 어려움의 해결책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결론을 좋아하지 않고 이 소설도 마냥 그런 메시지만을 던지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예상치 못하게 생겨난 거대한 어둠 앞에 '붙잡을 손'이 있음을 잊지 않고 조금이라도 밝은 곳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이 세계는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우리의 따분하고 당연했던, 이제는 그리워진 일상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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