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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니 Apr 01. 2020

어디서 오셨어요? 우리 집이요.

런던에서 살아남기#4


"Where are you from?"


아마 영국에 온 이후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아닐까. 카페 혹은 마켓을 가거나 학교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당연하게 묻는 질문. 특히 이 질문에 'South Korea'라고 대답할 사람이 50명 중 딱 나 한 명뿐인 우리 과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책임감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정보보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먼저 대답을 해야 하는, 그들의 눈에 당연히 이방인으로 비칠 내가 온 그곳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일.


전공 교수님들과 워크숍을 진행하던 중에 강의실에 있는 책상을 전부 치우고 다 일어나서, 교수님이 서 있는 강의실 정 가운데를 영국으로 하고 그 기준으로 자신이 온 나라가 어느 쯤에 위치 해 있는지 가서 서보는 활동을 한 적이 있다. 모두들 자신의 나라가 있는 서쪽 혹은 동쪽으로 흩어졌고, 가까이에 있는 친구들에게 어느 나라냐고 물으며 각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갔다. 큰 무리로 모인 중국 친구들은 방향을 찾는 나에게 웃으면서 동쪽을 가리켰고 나는 일본에서 온 친구에게 나보다 더 동쪽에 서라고 위치를 알려줬다.


'내 나라로 내 위치 찾기'의 의미는 이랬다. 모두 자리를 찾아간 후에 자신과 가장 멀리에 위치한 사람과 말을 해보라는 것,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 머무르지 말고 내가 평생 서 있어보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있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와 먼 곳에 서 있었던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일은 흥미로운 만큼 어려웠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물어오는 '어디서 왔니?'라는 질문에 거듭해서 대답을 할수록 나와 다른 곳에서 온 상대방을 이해하기보다 질문에 대한 대답,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됐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에 담긴 의미에 대해 처음 생각해 봤던 건 20대 초반, 첫 배낭여행으로 뉴욕을 다녀온 후였다. 그곳에 가본 사람도, 가보지 않은 사람도 상상할 수 있듯이 뉴욕은 화려함으로 가득 찬 도시였다. 알록달록 정신없이 들어찬 전광판과 화려한 가게들, 바쁘게 돌아다니는 차들과 사람들, 크고 푸른 나무들이 있는 공원들, 무엇보다 정신을 쏙 빼놓았던 브로드웨이까지.


그 도시에서, 그것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여행을 처음으로 경험하고 온 나는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동네를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이 것이었다. '뉴욕에 비해 서울은 너무 못 생겼어, 내가 왜 여기를 좋아해야 하지?'. 무의식적으로 생겨난 이 문장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살아왔던 곳이라고 꼭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이전에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야구장에 가는 일에 거의 중독되어 있었는데 (물론 과거형만은 아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처음으로 야구장에 가려고 집에서 나와 버스를 타면서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낸 그 순간, 몸 안에서부터 어떤 행복감이 밀려왔다. 그러고는 바로 깨달았다. 화려하고 새로웠던 여행지 대신 '내가 온 곳'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이 곳이 더 좋아서라던가 더 멋있어서가 아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것들과 사람들이 이 곳에 있고 결국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멀리 떠나와보고 나서야 내가 왜 '집'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우리의 삶을 객관화하는 일은 어렵다.

늘 내 삶의 한가운데에는 스스로가 놓여있기 때문에 그곳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려고 해도 자꾸만 주관적인 의견들이 개입해 눈 앞을 막는다. 그런데 그 일을 짧지만 간단하게 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여행이다.


사람들은 매일 같이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지칠 때 즈음 여행을 떠난다. 휴가를 내고, 퇴사를 하고, 방학을 틈타 익숙한 공간으로부터 조금 혹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을 향해 간다. 매일 같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작되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맞춰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던 일상에서 멀어져, 눈과 마음에 익숙지 않은 곳을 바라보다 보면 자연스레 원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어떤 이는 그로 인해 해방감을 느끼고 어떤 이는 오히려 그리움을 느낀다. 여기서 여행을 좋아하는가, 아닌가가 결정되는데 이 결과와는 상관없이 일상에서 떨어져 나와 마치 다른 사람의 일처럼 돌아볼 수 있다는 것이 여행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고작 20일 남짓이었던 여행에서도 집의 의미를 궁금해했던 내가 삶의 위치를 바꾸어 낯선 도시에 두 번째 집을 가지게 된 후 고민하게 된 집의 의미는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누군가 계속해서 "어디서 왔어?"라고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기숙사 건너편에는 아파트가 하나 있다. 독채형 혹은 일열로 붙어있는 주택형의 집이 많은 영국에서는 아파트를 보는 일이 드물고 몇 개 없는 아파트 역시 우리나라의 아파트와는 구조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층이 낮고 세대수가 적은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점은 영국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외관은 거의 비슷하지만 집마다 문의 모양과 색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술에 취해서 정신없이 집에 들어갈 때 문 색깔 보고 자기 집 찾아가겠네, 라는 농담이 농담보다는 진담으로 느껴질 정도다.


기숙사 창에서 보이는 아파트. 아파트인데도 문이 다 다르게 생겼다.


내 방에서 밖을 내다보면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 뒷면이 보인다. 그리고 매일 밤 이렇게 문마다 불이 들어온다.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 저 풍경이 무대 세트처럼 느껴졌다. 관객이 무대 앞에 위치한 무대 구조의 특성상 무대 디자인은 입체적이기보다 평면적으로 연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면에서 문만 보이는 이 모습은 묘하게 무대를 연상시켰다. 세트에 문이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 문을 열고 나와 이야기가 시작되는 공연들처럼 저 알록달록한 문 안에는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새삼스럽게도 우리 집 안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어디서 왔냐는 간단한 질문에 '내가 어디서 왔는지' 고민 해 보게 된 이유는 아마 매일매일 열던 그 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이지 않을까. 그 이야기에는 내 삶 전체 뿐만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담겨 있고, 그 모든 것들을 돌아보는 일은 단순히 여행을 떠나거나 다른 곳에서 살아 본다고 해서 파악이 되는 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처음 고민했었던 집의 의미처럼 불현듯 깨닫게 되기란 불가능할 것이고, 평생 동안 그 이야기의 의미를 정확하게는 찾지 못할 수도 있지만 이것 하나는 알 수 있다.


우리 집 안에 담긴 이야기로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졌고, 그 이야기에 더 나은 이야기를 엮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그렇게 언젠가는 "Where are you from?"이라는 간단한 질문에 더 이상의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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